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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7일 화요일

부러지고, 치이고, 구르고, 빠지고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삶의 무게

어느 한적한 도로에 고라니가 차에 치인 채 쓰러져있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다친 고라니가 계속 도로 위에 머물 경우, 다른 차량에 의한 추가적인 충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죠. 신고자에게 적어도 고라니를 갓길로 옮겨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녀석을 포획할 도구를 챙겨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신고자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고라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약간의 혈흔을 발견할 수 있었고, 적어도 고라니가 차에 치어 얼마 전까지 이곳에 있었을 거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어디에도 고라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아픈 몸을 이끌고서 어딘가로 이동했거나, 도착하기 전 또 다른 누군가가 고라니를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전자와 같은 이유를 고려해 주변에 고라니가 있는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도로 양쪽에는 작은 건물들과 농토가 곳곳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의심되는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고라니를 찾을 수 없었고, 심지어 흔적조차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마지막 남은 곳은 경사가 급해 위험할 수 있어 접근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보통의 고라니라면 뛰어넘기에 그리 높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차량에 치인 상태로 이 펜스를 넘어가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던 곳이었습니다. 

도로 옆 펜스 너머에 있는 농수로. 설마 고라니가 펜스를 뛰어넘어 저곳으로 갔을까요?


고라니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펜스를 넘어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경사를 따라 내려가니 농경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 부근에는 작은 수로가 존재했습니다. 무심코 수로를 살피는데, 아니나 다를까요... 수로 바닥에 고라니의 발자국이 떡하니 찍혀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수로 바닥에 찍혀있는 고라니의 발자국


이 고라니 발자국이 정말 우리가 찾던 녀석의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녀석의 것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만약 녀석이 맞다면 포획해 상태를 살피고, 필요하다면 구조센터로 데려가 치료를 해야 했죠. 수로 내부로 이어지는 발자국을 따라 들어가기로 합니다.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과정은 무엇보다 구조자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그만큼 중요한 것은 고라니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겠죠.


수로 내부의 구조가 어떨지는 들어가기 전엔 알 수 없습니다. 갑자기 물이 깊어질 수도 있고, 어두운 곳이니 내부의 구조물로 인한 사고 역시도 조심해야 하죠. 장화를 신고, 라이트를 들고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갑니다.

고라니의 발자국을 따라 수로 내부로 계속해서 들어갑니다.
부디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한참을 들어가자 인기척이 들려왔습니다. 라이트를 비춰보니 저 멀리에 고라니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녀석을 추적한 결과, 다행히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죠. 사고를 겪고, 낯선 환경에 놓여 예민해졌을 녀석을 포획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많이 지쳤는지 녀석은 그다지 힘껏 저항하지 못했고, 결국 포획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어두운 곳까지 다친 몸을 이끌고 힘겹게 와야 했던 녀석이 딱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수로 내에 갇혀있던 고라니를 포획하는 현장 영상입니다.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시죠!


아마 이러했을 겁니다. 차에 치이는 사고를 겪은 고라니는 불행 중 다행인지 충돌 자체가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현장을 제대로 벗어나는 것 까지는 어려웠겠죠. 도로 옆 펜스를 넘은 후 불시착하면서 경사로를 데구르르 굴러갔을 것 입니다. 그러다가 수로에 떨어졌고, 빠져나오기 위해 헤메던 중 자신도 모르게 더 깊이 들어가 어두운 곳에 갇혀버린 것이죠.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고라니가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녀석의 상태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오른쪽 뒷다리에 골절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다리의 골절은 차량충돌 사고를 겪은 최근이 아닌 조금 더 오래전에 생긴 상처였습니다. 살아가다가 어떠한 사고를 겪어 사실상 다리를 잃은 상황이었고, 세 다리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았는지 꽤나 수척하고 마른 상태였습니다.

다리를 다친 것도 서러운데... 또 차에 치이고, 경사로를 구르고, 수로에 빠지고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무엇보다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도 꼭 도로를 건너야만 했는지, 그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여실히 느껴져 안타까웠습니다. 

오늘의 사고 이전에 이미 오른쪽 뒷다리를 잃는 사고를 겪었던 고라니였습니다.


고라니는 조금 더 안정을 취한 후, 며칠 뒤 오래 전 부러진 다리를 제거하는 적출수술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고라니가 세 다리로 나마 다시금 힘차게 일어나 박차고 나가는 모습을 또 다시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보다 오늘 하루를 고단히 보냈을 고라니에게 많은 응원을 부탁드릴게요!!

어두웠던 터널을 지나 온 고라니의 삶에도 빛이 비추길 응원해주세요!!!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5년 8월 11일 화요일

도로 위에서 구조한 흰뺨검둥오리와의 인연이 남긴 숙제

2015523일 토요일 이른 아침, 필자는 차에 올라탔습니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였죠.
이른 아침이지만 하늘도 파랗고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는 상쾌한 아침이었습니다.
30분 정도 흘렀을까요? 창 밖으로 야생동물의 사체 하나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실 필자는 도로 위에서 희생되는 야생동물의 로드킬 실태를 조사한 경험이 있어 운전 중에도 쉽게 야생동물의 사체를 찾아내곤 합니다. 이미 명을 다한 것이 확실했고, 딱히 조처를 취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굉장히 긴박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운전을 하던 당시엔 거의 스쳐 지나가다시피 했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 늦지 않은, 구해내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 급하게 갓길에 차를 세우고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확인해보니 역시나 아직 살아있는 흰뺨검둥오리 새끼였습니다. 이들을 발견하기 이전에 앞서 스쳐 지나갔던 사체는 새끼들의 어미였던 것이죠. 흰뺨검둥오리는 보통 하천 주변의 야산이나 풀밭에서 알을 낳아 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새끼는 바로 어미를 따라 강가로 이동합니다. 이때는 아직 날지 못하기 때문에 어미의 뒤를 따라 열심히 걸어서 이동하게 되죠.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하천 주변의 야산이나 풀밭에서 알을 낳은 후,
부화한 새끼를 데리고 강으로 이동해 길러래는 습성을 지닌 흰뺨검둥오리


부화 후 어미는 새끼들과 앞으로 함께 지낼 강으로 이동하기 위해 앞장 서 걸었을 것이고, 새끼들은 어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강으로 가기 위해선 매섭게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해 이 도로를 건너야만 했겠죠.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의 중앙까지 왔는데 앞에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끼들이 이 높은 중앙분리대를 넘을 수 있을 리 만무하지요.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빠르게 달려오는 자동차가 계속해서 이들을 몰아세우고 있었을 겁니다.

도로 중앙분리대 부근에서 위태로이 발견된 새끼 흰뺨검둥오리 9남매 


어미는 얼마든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을 겁니다. 새끼들을 포기했다면 말이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자리를 뜨지 못하며 함께 도로 위에 머물렀고,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 차량에 치어 생을 달리했을 겁니다.
그렇게 남겨진 새끼들은 도로 가운데 위치한 중앙분리대를 벽 삼아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거센 바람과 굉음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혹여 사람이 갑작스럽게 다가가면 새끼들이 놀라 뿔뿔이 흩어질까 걱정되어 몸을 낮추어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가까이서 마주한 새끼들은 서로가 서로의 몸에 기댄 채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정말 작고, 아직은 나약한 생명이지만 집어 삼킬 듯이 달려오는 자동차를 마주하고도 살기 위해 버텨주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결국 9마리의 작은 생명을 모두,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미는 지켜주지 못했지만, 그 어미가 목숨을 고스란히 내 놓고서라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새끼들은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구조 후에도 이들은 계속해서 서로의 품에 파고들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렇게 구조된 새끼들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올해의 첫 흰뺨검둥오리 새끼 구조가 되었습니다. 구조가 되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태어나자마자 직면해야 했던 크나큰 두려움과 어미를 잃어버린 슬픔을 이겨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처지를 잘 알기에 구조센터 직원들 모두가 정성과 노력을 쏟아부었고, 이를 아는지 흰뺨검둥오리 새끼들 역시 꿋꿋하게 잘 버텨내고 무럭무럭 자라주었습니다.

한시라도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흰뺨검둥오리 9남매 
 

구조된 지 약 2개월이 조금 지난 8월 초부터는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고, 다소 높은 위치에서 뛰어내리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가에 서식하는 특성에 걸맞게 수영도 곧 잘했고, 잠수실력도 뽐냈습니다. 처음 30g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작은 생명이 어느덧 1kg이 넘어 그들의 어미를 쏙 빼 닮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어느덧 멋진 흰뺨검둥오리가 되어갔습니다.
 
제법 많이 성장한 새끼 흰뺨검둥오리의 모습


810일 월요일.
흰뺨검둥오리 남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흰뺨검둥오리들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털 고르기로 분주했습니다. 그들을 하나하나 포획하면서 눈을 맞추고 부디 잘 살아달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흰뺨검둥오리의 방생 예정 장소는 충남에 소재한 어느 저수지입니다. 군데군데 자라나있는 수초와 연꽃그곳에는 이미 원앙, 쇠물닭, 해오라기, 백로 등 다양한 물새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이는 다양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만큼, 흰뺨검둥오리에게도 적당한 서식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도로 위를 지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어미와 함께 더 일찍 이런 멋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흰뺨검둥오리를 구조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고대하던 자연과의 만남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상자의 문이 하나씩 열리고, 안에 있던 흰뺨검둥오리들이 조심스럽게 상자 밖으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채로 구조되어 그 동안 사방이 철망과 벽으로 둘러싸인 계류장에 머물고 있었으니 넓디넓은 야생이 낯설기도 하겠지요. 이런 모습을 보여 자신의 어미를 빼앗아가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이 세상이 혹여 무서운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그런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멋진 야생동물이었습니다.
 
이송 상자에서 나와 드디어 자연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 흰뺨검둥오리 


자연으로 돌아간 흰뺨검둥오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넓은 저수지에 힘차게 몸을 맡기고 수영을 즐기는 친구, 꽥꽥 소리를 지리며 물장구를 치는 친구, 그 동안 느낄 수 없었던 바람을 느끼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친구그들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노라니 잘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제 정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뒤돌아 가려는데 한 친구가 저희의 머리 위로, 그것도 아주 가까이 다가와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구해줘서, 그 동안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잘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인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우리도 고맙다. 다치지 말고 부디 잘 살아라
 
머리 위로 지나가는 흰뺨검둥오리, "그래, 우리도 고맙다. 부디 잘 살아라." 


흰뺨검둥오리와 저희의 인연은 3개월에 걸쳐서 그 첫 번째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허나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무척이나 빈번하지만 너무나 위험한 사고, 사람과 야생동물 그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로드킬이들의 위태로움과 고통을 흰뺨검둥오리를 통해서 보았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로드킬의 위험에 처해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지켜주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흰뺨검둥오리들이 어미가 되었을 때, 그들의 새끼를 데리고 안전하게,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줘야 하니까요.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5년 4월 27일 월요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교육동물 – ② 너구리 ‘클라라&데이비드’ 下

서산 버드랜드 내에 위치한 야생동물치료센터에는 여러 교육동물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고로 인해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대중에 대한 교육, 즉 야생동물 보호의 중요성과 야생동물을 위협하는 요인을 알리고 동물의 전반적인 특징 등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감에 있어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버드랜드 내에서 운영이 되고 있어 그 이름과 취지에 걸맞게 교육동물의 대부분은 조류입니다. 허나 유일한 포유류로써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바로 너구리 '클라라&데이비드' 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데이비드'를 소개시켜 드릴까 합니다.

너구리 '데이비드' 는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요...?


데이비드를 소개시켜드리기 전에!! 야생 너구리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너구리는 우리나라 전역의 높지 않은 산림이나 평야(초지, 논밭), 하천 근처에 주로 서식하며 민가나 도심지 주변에도 살고 있습니다. 허나 아무리 개체수가 많고 다양한 곳에 살고 있는 너구리라 할지라도 야생동물의 흔적을 이용해 그들의 뒤를 쫓을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전문조사원이 아닌 이상 야생 너구리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야생 너구리를 만나고 싶으신가요? 가능합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자동차에 올라타 시내를 벗어난 외곽 지역의 도로 위로 나가보세요. 장담 컨데 너구리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이 말씀을 안 드렸네요. 그게 설령 '주검' 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말이죠.

야생너구리를 만나고 싶으신가요? 지금 당장 운전대를 잡고 도로 위로 나가시면 됩니다.
그게 설령 '주검'이라도 괜찮다면 말이죠.


데이비드는 2013년 7월의 마지막 날, 저희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우연찮게도 클라라와 같은 해, 같은 달에 구조가 되었네요. 예상하셨겠지만 데이비드 차량에 충돌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구조 당시 양측 대퇴골에 골절이 확인되었고, 머리에는 출혈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좌측 안구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죠. 이 역시도 차량에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임이 분명했습니다.

접수 당시 촬영한 방사선 사진, 양측 대퇴골에 골절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차량과의 충돌에서 받은 충격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좌측 안구의 모습 


그래도 데이비드는 나은 편입니다. 목숨은 지켜냈으니까요.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는 모든 분들이 아시다시피 굉장히 위험합니다. 충돌한 동물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정말 소수의 동물만이 목숨을 부지합니다.

그런데 그 소수의 동물들이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이 꼭 희망적인 상황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소수의 동물들 중에서도 아예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평생 불편한 신체를 지니게 되는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데이비드처럼 말이죠.
데이비드는 결국 영구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도저히 이 불편한 신체를 지니고서는 자연에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목숨은 지켜냈지만 그에게 있어 어쩌면 목숨보다 소중한 자연에서의 삶은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너구리는 국내 서식 포유류 중 행동반경이 작은 편에 속합니다. 때문에 다른 포유류에 비해 그 행동반경에 도로가 포함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긴 합니다만, 그것만으로 위안을 삼기엔 우리나라의 도로 사정이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10만km가 넘은 우리나라의 도로는 모든 야생동물의 삶에 포함되어있습니다. 너구리 역시 마찬가지이죠. 도로를 피해 살래야 살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첫 구조 당시 데이비드의 모습입니다. 충돌과정에서 받은 크나큰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아주 위급한 상태였습니다.


2015년 4월 25일을 기준으로 하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개소 이후 총 3,407건의 구조접수가 있었습니다. 그 중 차량과의 충돌이 677건, 전체 구조의 약 20%를 차지합니다. 데이비드의 안타까운 사연은 677건의 사고 중 단 한건의 사고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677건의 사고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생하는 로드킬 사고의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선 달려오는 차량을 피하지 못한 동물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대비 도로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손꼽을 정도로 많은 도로가 건설되어있으며 전국의 도로는 이미 10만km를 훌쩍 넘었습니다. 도로는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우리 삶에 많은 편이를 제공하지만 반대로 야생동물에겐 서식지 단절,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 등을 일으켜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대로 도로는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고, 차선 확장공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도로를 통해 닿지 못할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포화상태인데도 말이죠. 사실 국내에는 이미 버려지다시피 한 도로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생겨나는 도로들이 지금도 궁지에 몰려있는 야생동물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행동반경이 작다고 알려진 너구리조차 도로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결국 너구리 데이비드는 끝내 자연으로 돌아가진 못했지만, 클라라와 함께 교육동물로 활약하며 많은 대중에게 현 시대를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삶과 길죽음(로드킬) 그리고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야생동물들이 자기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은 정말로 불가능한 이야기일까요? - 로드킬)


처음 우리에게 왔던 데이비드는 사람을 굉장히 무서워했습니다. 뭐, 정상적인 야생동물이라면 사람을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긴 합니다만, 데이비드는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겪어서인지 더더욱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습니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마음의 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예전보다 경계를 덜하기도 하고, 종종 스스로 다가와 냄새를 맡거나 옆에 있어도 무심하게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데이비드는 야생성이 남아있고, 사람을 그다지 따르지 않기에 클라라처럼 놀아주거나 산책을 시켜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무료함을 달래주기위해 되도록 자주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새로운 자극을 주곤 합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클라라와 달리 물에 들어가 있는 것을 즐기는 데이비드.
사실 너구리는 물을 좋아하는 동물이랍니다 :D


보통 동물이 어떤 사고를 겪거나 자연사하게 되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땅에 거름이 되어 집니다. 비록 생을 다했지만, 에너지가 되어 다시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죠. 허나 로드킬은 그러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도로 위에서 계속해서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지고 흩어지면서 먼지가 되거나, 물에 씻겨 하수구로 흘러들어 갑니다. 


죽은 동물의 에너지가 제대로 순환되지 못한다는 점, 사람과 동물이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는 점, 살기 위해 도로를 건너야만 했던 동물들이 영문도 모른 채 당하는 이유 없는 죽음이라는 점에서 로드킬은 어쩌면 인간이 야생동물에게 가하는 가장 비윤리적인 영향일지도 모릅니다.


'클라라와 데이비드' 이 친구들이 왜 이곳에 머물고 있는지 오랫동안 기억해주세요.
여러분이 그래주신다면 클라라와 데이비드는 비록 자연을 잃었다한들

야생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위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5년 3월 12일 목요일

맘 편히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저희 센터 소식을 보신 분이라면 아마 충돌로 야생동물들이 구조되는 이야기를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실제 작년 한해만 해도 여러 구조원인 중 미아를 제외하고는 충돌원인(전선/건물과의 충돌 23.08% +차량과의 충돌 18.49% = 41.57%)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선 및 건물과의 충돌은 대부분이 조류에게 발생하고 차량과의 충돌은 조류, 포유류 모두 포함해서 발생합니다.
 



날아다니는 새들이 왜 부딪히는 걸까요?


진짜 숲일까요?
출처 : wordsandphotographs.com

건물 유리에 비친 구름 모습입니다.
출처 : mn.audubon.org

 바로 유리창에 반사된 모습이 새들에게 착각을 일으켜서입니다.
 사람은 건물 밖의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투명하고 실내를 외부환경과 단절시켜 안락함을 제공해주는 유리창의 기능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들은 이 자연스럽지 못한 인공구조물을 이해하긴 어렵기 때문에 유리창이 비춰진 하늘과 숲이 진짜 인줄 알고 부딪히는 것이죠.
무척이나 강하게 충돌 한 듯합니다.
출처 : www.flap.org
 이외에도 도로에 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돌풍이 발생하여 주변에 있던 새가 빨려 들어가면서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고 시야확보가 잘 되지 않는 흐린 날씨이거나 안개가 낀다면 전선을 보지 못한 새들이 부딪히거나 엉켜버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풍력발전기는 때론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충돌은 어떤 특정 종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닌 불특정다수의 새들에게 일어납니다. 그나마 덩치가 큰 동물이면 사람에게 발견되어 구조할 수 있지만 작은 동물이면 발견하기 쉽지 않아 안타깝게도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행히 구조할 수 있었던 한 친구를 소개할까 합니다.

충돌로 인해 날개가 다친 말똥가리


 작년 말 충남 계룡시의 어느 도로 변에서 날지 못하고 퍼덕이는 말똥가리 한 마리를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하고 구조신고를 해주셨습니다. 센터로 온 말똥가리는 곧 진료를 보았고 진단 결과 왼쪽 날개 완전골의 오래된 개방 골절에 몸이 매우 마른 상태였습니다. 다친 날개 부위로 강한 충격을 받아 골절이 발생하여 날 수 없게 되면서 먹이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되었지요. 발견된 장소의 환경 요소를 보아 차량이나 주변 인공물과 충돌하여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접수 당시 말똥가리 모습
새는 깃으로 몸이 덮혀 있기 때문에 깃만 봐서는 새가 마른지는알 수 없습니다.
직접 근육상태를 육안확인 또는 촉진하고 체중을 확인해야 합니다. 
왼쪽 날개의 다친 모습
피가 흥건합니다.

 골절은 폐쇄 또는 개방, 단순 또는 복합 골절과 같은 골절유형, 골절이 발생한 부위, 경과된 시간 등에 따라 예후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골절이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고 그 부위가 단순히 금이 가고 개방이 되지 않았다면 회복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예후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똥가리는 모든 것이 반대인 상황이었습니다. 특히나 골절부위가 완전골 이었는데 이 뼈는 새가 비행할 때 가장 많은 힘을 받는 곳 중에 하나로 근육보다는 인대와 골격으로 이뤄져있고 다른 부위에 비해 혈관발달이 잘 되지 않은 곳입니다. 다시 말해 이 부위가 다치게 된다면 부종과 함께 혈행 장애에 따른 괴사가 잘 일어나 회복이 쉽지 않은 곳입니다.

말똥가리 방사선 사진
 좌측 완전골 골절이 보입니다. 

 예후가 매우 좋지 않았지만...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가여운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먼 시베리아 동부, 몽골, 아무르, 만주 등지에서 지내다가 추운 겨울을 좀 더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을 겁니다. 나이가 좀 있는 것으로 봐서는(말똥가리의 홍채는 어릴 때는 밝은 갈색이다가 나이가 들수록 진한 암갈색으로 변합니다) 치열한 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한 그리고 말똥가리다운 삶의 기술을 터득하며 살아왔을 거구요. 그러던 중 변을 당한 겁니다.
 
자! 그럼 치료를 시작해볼까요!!

말똥가리 회복기 


2014년 12년 09일~2014년 12월14일
▪ 최대한 안정 취할 수 있도록 하기!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ICU 안에서 회복기간을 갖습니다. 골절이 발생하면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하여 잘 붙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와이어로 골절부를 고정하고 날개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포대를 감지요. 그리고 ICU는 일어설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랍니다. 갑갑하겠지만 회복하려면 참아야합니다. 또한 그 동안 먹이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먹이 급여가 중요합니다. 스스로 먹지 않는군요..직접 먹여야겠습니다.
 
2014년 12월 15일
▪ ICU에서 실내장으로 이동하기
 활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굳이 ICU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실내장으로 옮깁니다. 여전히 먹지 않는 군요.
 
2014년 12월 22일
▪ 골절부 상태 확인!
 아직 골절부가 미약하게 움직입니다.
 
2014년 12월 26일
▪ 포대법 변경
 조류에게 특별히 하는 포대법이 있습니다. 8자포대라고 하는 건대요. 이게 짧은 기간 사용할 때는 유용하지만 오랫동안 포대를 한다면 매우 위험한 포대법입니다. 새의 날개 구조 중 날개막인대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포대를 걸치기 때문에 장기 포대 시 이 날개막의 탄력을 잃어 굳어 버리게 되고 결국 날개를 제대로 못 펼쳐지게 만들어 날지 못하게 만들어버리죠. 그러면 안 되니깐 골절부 부분적으로만 포대 해주었습니다.
 
8자 포대
출처 : www.justanswer.com
2015년 1월 2일
▪ 골절부 상태 확인
 완전유합은 안되었군요.
 아직도 스스로 먹이를 먹지 않습니다. 고집이 아주 똥고집입니다. 계속 직접 먹이를 먹여줍니다.
 
2015년 1월 19일~2015년 1월 27일
▪ 물리치료 합시다!
 골절부위에 가골로 덮여지고 있는 상태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동안 뼈가 잘 붙어야 하기 때문에 강하게 운동을 제한했었는데요. 가골이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운동을 하지 않게 되면 근육이 위축되고 관절부의 운동이 제한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확실히 뼈는 붙이기 위해 제한된 공간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땐 수동적 물리치료가 필요할 때입니다. 이때 한 방법은 Active assisted range-of-motion(AAROM)을 했는데요. 이 방법은 새의 다리를 잡고 부드럽게 올렸다가 내리면서 새가 날개를 펼쳐 움직일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근육강화, 연부조직의 신축성, 관절의 가동범위 및 혈액순환을 촉진시킵니다. 이를 매일 하루 2번씩 해주었지요. 
 끝까지 먹이는 먹지 않습니다. 하하하하 계속 직접 먹여줍니다.
 
2015년 1월 28일
▪ 야외장으로 가자!
 드디어 야외적응 단계로 갑니다. 이때부터는 자유로이 비행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두어 운동에 더욱더 박차를 가합니다. 야외장으로 간 말똥가리는! 아직은 비행이 서툽니다. 바닥을 달려가네요. 하지만 높이 있는 횃대에 올라가는 모습이 확인 되었으니 좀 더 지켜보기로 합니다. 먹이는 스스로 먹었을까요? 하하하하 계속 직접 먹여주었습니다.
 
2015년 2월 10일
▪ 비행테스트
 그 동안 야외장에서 어느 정도 비행하는 모습이 확인 되었습니다. 좀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야외 운동장으로 나가 비행테스트를 해보았지요. 간만에 밖에 나오니 얼떨떨한가봅니다ㅎ '이봐..좀 날아봅시다ㅋㅋㅋ' 
 약간 기울어서 날기는 하지만 돌풍에 대응하거나 바람을 타는 모습이 확인 되었습니다. 


 
2015년 2월 12일~2015년 3월 4일
▪ Aviary training
 완전한 대칭 비행은 아니지만 말똥가리에게는 아주 정교한 비행 기술을 요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무리 없을 거라 판단됩니다. 심지어 야생에서 다른 동물이 사냥한 먹이는 낚아채는 약은(ㅋ) 영리한 동물이니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거라 봅니다. 대신 말똥가리에겐 다시 먼 여행을 앞 둔 시기이기 때문에 지구력을 키울 필요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계류장에서 매일 왕복운동을 하지요. 아...넓은 계류장이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다시 돌아갈 그 날을 위해!!


 
2015년 2월 14일
▪ 먹이를 먹다!!ㅠㅠ
 그간 먹이 종류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봅니다. 마우스는 먹는 군요ㅠㅠ 가기 전까지 마음 껏 먹으라고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마우스 수량이 부족하여 많이는 못 줄 것 같습니다ㅠㅠ 말똥가리들은 초봄이 되면 다시 윗쪽 지역으로(시베리아, 아무르 등) 이동합니다. 그 곳이 번식지역이기도하고 한국에서 여름은 이 동물이 지내기에는 너무 덥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맞추어 방생을 해야하는 시점이라 체중을 올리고 운동도 해야 하니.... 다시 직접 먹이를 먹여줍니다.....



2015년 3월 5일
▪ 드디어 방생!!!
 힘차게 날아 올라가 인근 나무 위에 앉아 주변을 둘러봅니다. 




3개월을 함께하며 정도 들고 걱정도 되고 했지만 저렇게 시원스레 날아가 주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무사히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ㅎ
 바이바이~


한 동물을 치료하기 위해선 이렇듯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친 야생동물들이 모두 치료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예초에 예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충돌 예방 방법은 아래 글(클릭클릭~)을 참고해 주세요^ㅂ^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문정

2014년 12월 21일 일요일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은 정말로 불가능한 이야기 일까요? - 로드킬 下

필자는 로드킬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직접 도로 위로 올라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수많은 야생동물의 소리 없는 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로드킬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설정한 조사 지역은 96번 국도 중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에서 서부면 궁리를 걸쳐 서산시 부석면까지 연결되는 도로의 일부 구간인 '천수만로' 였습니다. 천수만로 바로 옆에는 매년 수많은 철새들이 머무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인 천수만과 드넓은 농경지, 호수, 하천, 바다, 갯벌, 산 등이 존재하며 각각의 환경에 적응하고 서식하는 수많은 야생동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로드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한 그 어떠한 장치나 노력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사 대상인 천수만로의 위성지도 입니다. 대규모 간척에 의해 생성된 농경지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수많은 야생동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다름아닌 '천수만로' 입니다


조사는 2014년 7월~11월까지 5개월 동안 진행되었으며, 조사방법은 16km의 도로를 왕복하며 로드킬 개체 발견 시 날짜, 종명, 발생위치, 주변 환경, 도로 상황, 날씨 등을 기록하고 사진촬영을 실시 했으며, 발생위치는 GPS 수집 어플리캐이션을 이용해 수집한 후 Google 지도에 기록했습니다.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갓길도 없는 도로에 비상등을 켜고 내려
좌표와 정보를 수집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옆을 스쳐지나가는 자동차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저를 집어삼킬 듯 무섭게 달려옵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사람인 저도 이렇게 무서운데 동물들은 어땠을까요...
괴상한 빛을 내뿜고, 무섭게 소리지르는 그 자동차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리고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이 도로와, 사람을 얼마나 원망 했을까요...


이제 조사 결과를 말씀드릴 차례겠죠... 5개월 동안 86차례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총 171건의 로드킬 발생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성급한 결론이긴 하지만 하루에 2마리의 야생동물이 이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셈입니다.
겨우 16km의 도로에서 하루 평균 2마리의 야생동물이 로드킬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인지 이제 좀 와 닿으실까요? 아직 와 닿지 않으신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각각의 도로마다 환경이 다르고, 교통량이 다르고, 여러 가지 조건이 다를 테니 적절하지 않지만,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여 우리나라의 10만km 도로에 이 결과를 대입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하루에 12,500마리의 동물이 도로 위에서 차에 치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그 죽음의 결과는 실로 비참한 먼지가 되어 바람에 날리웁니다.

조사기간 동안 발견한 동물들의 처참한 모습입니다. 
사진은 조사 동안 발견한 동물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171마리 동물들 하나하나의 모습과 표정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동물들의 소리없는 비명을 들어주시고,
이들이 겪었을 끔찍한 고통에 대해 함께 가슴아파 해주시길 바라고 싶습니다


아래에는 본문에서 처음 보았던 천수만로의 위성사진에 로드킬에 의해 희생된 동물들을 발견한 지점의 GPS를 한데 모아 입력한 결과가 있습니다. 좌표들의 값을 입력해 한 장에 담아봤더니 점이 아니라 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은 제가 조사한 도로 구간을 뚜렷이 나타내는 하나의 길이 되어있었습니다. 조사를 시작하기 이전엔, 그래도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구간이 있을 테고, 그 부분만이라도 로드킬을 줄일 수 있는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면 조금이라도 로드킬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게 사실입니다. 허나 어느 곳 하나 안전한 장소는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도로 전체가 동물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죠.

로드킬 발생 지점의 좌표들을 입력한 후 종합했더니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선은 제가 조사한 천수만로 전체를 덮고있었습니다. 도로 전체가 동물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죠


171건의 로드킬 발생 흔적 중에는 당연히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동물도 포함되있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 324-2호, 멸종위기야생동물 Ⅱ급의 수리부엉이
천연기념물 제 324-3호의 솔부엉이
멸종위기야생동물 Ⅱ급의 삵
생명에 경중을 메길 순 없지만, 지금 당장 보호받아야 할 정도로 위험에 처해있는 동물들 역시 로드킬의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생명에 경중을 메길 순 없지만, 지금 당장 보호받아야 할 정도로
위험에 처해있는 동물들 역시 로드킬의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천수만로는 서산 버드랜드, 홍성 조류탐사과학관 등 자연과 생명을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곳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연과 생명을 만나러 가는 이 길 위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자연과 생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연과 생명을 배우고 체험했던, 하려 했던 많은 이들이 동물을 지켜주기 위한 그 어떠한 것도 없는 이 도로를 지나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그들이 이 도로를 지나 만난 자연이 진정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천수만의 여러 교육기관에서는 천수만에 도래하는 많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이 동물들이 정작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이러한 현실에도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주셨으면 합니다.

매년 겨울이 되었을때 서산 천수만에 흑두루미가, 황새가 도래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허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동물들이 겪고있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입니다


앞서 로드킬이 얼마나 야생동물을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이젠, 로드킬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합니다. 알아야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기존에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생태육교나 생태통로가 있습니다!! 운전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생태육교나 생태통로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생태육교와 생태통로가 정말로 로드킬을 줄일 수 있는 정답이 될까요?
(380억 들여 만든 ‘위험통로’ 고라니는 겁이 납니다) 해당 링크로 이동하시면 아실 수 있듯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설치되어있는 생태통로나 생태육교는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이는 해당 서식지에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태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거나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등의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생태통로의 잘된 사례, 잘못된 사례
(출처 : 국립공원관리공단·환경부)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생태통로와 역시 마찬가지로 운전을 하다 보면 종종 발견할 수 있는 야생동물 출몰지역 표지판도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에서 알려주는 "야생동물 출몰 지역입니다. 주의하세요." 라고 알려주는 것도 표지판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는 운전자에게 야생동물 로드킬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는 안내를 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허나 앞서 얘기한 방안들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마음가짐 입니다. 도로 위에서 의미 없는 죽음을 당하고 있는 야생동물들을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가짐 말이죠. 그리고 그 마음가짐을 운전습관에 고스란히 담아낸다면 그 무엇보다 뛰어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로드킬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로의 건설이지만, 가장 위협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과속' 입니다. 야생동물은 자신이 서식하는 지역 인근의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는지 알고 있습니다. 즉 해당 도로의 '제한속도'를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도로를 건널 때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리고 건너게 되는데,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은 채 과속을 해서 오는 자동차가 있다면 당연히 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시야확보가 어려운 밤이나, 야생동물이 나올 법한 지방의 도로를 다닐 때에는 표지판이 없더라도 항상 로드킬을 의식하고 조금 더 속도를 줄여 운전을 해주셔야 합니다.

"설마 내가 로드킬을 하겠어...?"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로드킬은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까요? 조사 전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해주신 100분 중 38분이 로드킬의 가해자가 되었거나, 로드킬이 발생하는 순간을 목격하였거나, 로드킬로 인해 발생되는 크고, 작은 2차 사고를 목격했다고 응답했습니다. 100명의 운전자 중 38%에 해당하는 인원이 직, 간접적으로 로드킬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일까요?
여러분께서 로드킬에 의해 희생되는 수많은 동물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주시고 이들을 지켜주고 싶으시다면 꼭!! 운전하실 때 제한속도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여유 있게 더 낮은 속도로 운전해주세요. 속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제동거리도 짧아지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야생동물이 나타났을 때 치지 않고 멈출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제한속도 정도는 지키는 여유를 가져주세요.
당신의 마음가짐과 운전습관이 의미없는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조사기간 동안 필자는 도로 위에서 울려 퍼지는 동물들의 소리 없는 비명을 듣고 수없이 많은 야생동물의 사체를 봤지만, 도로 위에서 사체를 발견한다는 건 여전히 익숙해지지를 않습니다. 어떤 동물의 사체인지 확인하기 위해 동물의 사체를 들추다가 혹은 2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체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미처 감지 못한 그 눈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언제까지 도로 위에서 희생되어진 동물들의 눈빛을, 그들의 이야기를 무시해도 되는 걸까요...

부디 이 동물의 소리없는 외침을, 눈빛을 잊지 말아주세요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