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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3일 금요일

새끼오리의 여행... 자동차 괴물, 보도블럭 덫, 집수정 함정을 조심해!

바야흐로 야생동물의 번식기가 한창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먹이를 물고 자신을 기다리는 새끼에게 바삐 돌아가는 어미동물과 그들의 노력에 움틀 대는 새 생명의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시기이죠. 새 생명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정작 야생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겐 매순간이 위기이고, 치열함 그 자체입니다.
때문에 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매년, 야생동물의 번식기가 도래하면 새끼 동물의 구조신고 빈도가 높아집니다. 이 과정에서 충분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구조를 진행해 본의 아니게 '납치'를 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정말로 구조를 필요로 하는 위험에 놓이는 경우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많이 구조되는 동물이 다름 아닌 '오리류' 입니다. 국내에서 번식하는 대표적인 오리과 조류로는 '흰뺨검둥오리'와 '원앙'이 있습니다. 흰뺨검둥오리는 보통 하천 주변의 야산이나 초지에 알을 낳아 품습니다. 원앙 역시 마찬가지로 하천 주변의 나무구멍 등에 들어가 알을 낳아 품습니다.

좌 : 흰뺨검둥오리 / 우 : 원앙
선호하는 둥지는 다르지만, 부화 후 새끼와 이동해 강가, 하천에서 살아가는 특성은 같다.


문제는 지금부터 입니다. 이들은 '조성성 조류' 입니다. 부화와 동시에 눈도 뜨며 온 몸에 털도 나있습니다. 심지어 곧바로 기립 및 보행이 가능하죠. 이렇게 태어난 새끼들은 어미를 따라 앞으로 살아갈 강가로 이동합니다. 녀석들의 첫 여행은 눈을 뜨는 순간 시작인거죠.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무리 태어나자마자 이동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연약하고 체력적으로 부족하며, 날 수 없으니 여러 위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이를 회피하는 능력 역시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녀석들의 이러한 번식생태는 특히 오늘날에 매우 위태로운 상황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인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거주지 확대, 특히 하천주변에 생겨난 건물과 정비공사로 인해 하천과 가까운 곳에서는 번식을 위해 적합한 환경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도심에서 번식하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잠재되어있는 위험이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죠.

녀석들에게 어떤 위험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을까?


가장 먼저 도로와 자동차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오직 두 다리로 열심히 걸어서 강가로 이동해야 하는 녀석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입니다. 우리나라는 도로의 밀도가 매우 높고, 특히나 도심지에서 도로를 마주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차에 치어 폐사하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도태되기 십상이며,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를 건넜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중앙분리대나 보도블럭 등으로 더 이상 이동할 수 없어 결국 도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의 중앙까지 왔는데 앞에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새끼들은 이 높은 중앙분리대를 넘을 수 있을 리 없다.


두 번째는 건물의 옥상에 조성된 작은 정원이나 텃밭 등에 번식을 하는 경우입니다. 최근 도심 속에서도 자연의 향취를 느끼고자 옥상의 잉여공간을 이용해 정원이나 초지, 텃밭을 가꾸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흰뺨검둥오리와 같이 풀밭에 번식을 하는 새에게 그런 공간은 번식을 하기에 꽤나 유혹적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높이가 있다 보니 천적의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막상 새끼가 부화하고 나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강가로 가기 위해선 건물에서 뛰어내려야 하는데, 높이가 높아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간혹 심각한 외상이나 폐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건물 옥상은 추락의 예방과 같은 안전을 위해 담이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우, 부화하더라도 그 담을 덤어 뛰어내릴 수 없다보니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는다면 고립되어 서서히 죽어갈 수 있습니다.

건물 옥상에 조성된 인공초지에서 태어난 흰뺨검둥오리 새끼
건물을 뛰어내려야 하지만, 높은 난간으로 인해 뛰어내리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는 곳곳에, 눈에 띄지 않지만 정말 수없이 널려있는 인공구조물인 '집수정' 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맨홀뚜껑이나 사각으로 짜여진 그물모양의 철제구조물이 빗물이나 오수를 모아내는 집수정입니다. 어미의 뒤를 졸졸 따라 이동하는 새끼오리들에게 집수정은 치명적입니다. 어미야 덩치도 크고, 발바닥도 크다보니 대부분의 집수정에 빠지는 사고를 겪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미에게 자신의 새끼가 매우 작고, 충분히 집수정 구멍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새끼들을 데리고 집수정 위를 유유히 걷다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한 마리의 새끼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곤 하니까요.

집수정에 빠진 새끼오리들


집수정에 빠지는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수도 내부가 좁아 사람이 들어가 구조할 수 없거나, 하수도가 너무 길고, 복잡하게 이루어져있는 경우 구조가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또, 하수도 내부는 좁고 어두워서 여러 오염이나, 외상을 입힐 수 있는 구조를 미처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때문에 단순히 작고 낮은 집수정에 빠진 것이 아니라면, 직접적인 구조를 시도하기 보다는 전문가에게 요청해 구조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새끼오리의 구조를 위해 집수정 내부의 하수도 구조를 살펴보고 있다.


좁고 긴, 어두운 하수도 내부에서 다행히 총 8마리의 새끼오리 모두 구조할 수 있었다.


새끼오리들의 삶이 이렇게 처음부터 순탄치 않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당장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로를 없앨 수 없고, 누군가가 애써 조성해 놓은 옥상 위 정원을 금지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전국에 수없이 존재하는 집수정을 다른 형태로 바꿔놓는 것 역시 막대한 예산과 인력,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번식기의 오리들을 위해 이를 요구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리라 기대하기도 쉽지 않겠죠.
현재로서는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오리들이 어딘가에 고립된다면, 그 환경이 물리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울 수 있고, 이는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위험할 수 있기에 보다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끼오리들이 조난된 원인과, 현재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야생동물을 전문적으로 구조할 수 있는 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면, 최대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구조를 시도하거나, 오리가 안전하게 강가로 이동할 수 있게끔 주변의 위험요소를 통제(차량, 집수정 접근 등)해주는 것 역시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매년 위와 같은 이유로 구조된 새끼 오리들이 구조센터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강가에서 유유하게, 한가로이 헤엄치던 녀석들이 이런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지 미처 몰랐던 분들도 많으시겠지요. 차라리 몰랐으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우리가 녀석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로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면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동차 괴물, 보도블럭 덫, 그리고 집수정 함정은 결국 우리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요.
도로를 건너는 오리 가족을 위해, 스스럼없이 달리는 자동차를 멈춰주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준 누군가의 행동이 많은 이에게 미담으로 다가와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가끔씩 들려오는 미담이 아니라, 누구라도 선뜻 녀석들의 첫 여행을 도와줄 수 있는 행동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욕심일까요?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7년 6월 22일 목요일

2017년 5월 야생동물 구조/치료 결과 분석

1. 종별 개체수 분석


지난 5월에는 총 164개체 (조류 29종 140개체(85%), 포유류 4종 24개체(15%))의 야생동물이 구조되었습니다. 한번에 여러 마리가 함께 들어오는 흰뺨검둥오리가 가장 많이 구조되었습니다.


2. 구조 원인 분석


여름이 다가옴에 따라 자연적 혹은 인위적으로 미아가 되어 들어온 새끼동물의 수가 급증하였습니다.


3. 구조 지역 현황


5월에도 천안시에서 가장 많은 구조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기타 지역으로 분류된 카테고리는 프로그램 소팅(sorting)과정에서 잘못 분류된 것으로 모두 충남지역으로 확인되었습니다.


4. 구조 및 치료 결과


5월 한 달간 구조되어 치료받은 164마리 중 49마리(30%)가 자연으로 돌아갔으며, 40마리(24%)는 현재 치료 및 재활 중에 있습니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진료수의사 이문희

2017년 6월 19일 월요일

존재에 대한 감사

집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면 어떤 야생동물을 볼 수 있을까.
참새, 까치, 비둘기, 다람쥐 흔하디흔한 동물들이지만 이들도 야생동물이다.
야생동물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보호해야하는 귀한 동물만이 야생동물인 것도 아니다.
야생에서 자유로이 살아가는 모든 동물이 야생동물이다. 하물며 작은 들쥐나 개구리, 민물고기도 야생동물이란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늘은 어떠한 이유들로 인해 홀대 받는 생명이 된 '그들'을 위한 이야기자 그들을 대하는 '우리'를 돌아보는 이야기다.

야생을 자유로이 살아가는 모든 동물이 야생동물이다.
늑대나 호랑이처럼 특별한 동물, 멧돼지나 두루미처럼 큰 동물, 황새나 저어새처럼 보호받아야 할 동물.
그들뿐만 아니라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모두 야생동물이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자주 접하는 것들에 대한 감정이 빠르게 퇴색된다. 부모님의 사랑을 매일 새로이 되새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고, 출근길 만나는 참새를 보며 매일 가슴 벅찬 사람도 없지 않을까. 드물고 귀한 것은 오래 기억되지만 흔한 것은 금방 잊혀진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검은머리물떼새를 처음 만난 날의 날씨, 주변 풍경과 소음까지 기억나지만 큰고니를 처음 촬영한 날이 언제인지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처음엔 그렇게 벅찰 수가 없었지만 수차례 반복될수록 그 감정은 점점 무뎌졌다. 어찌 보면 짧은 세월을 살아가는 인간에겐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그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 소위 말해 '야생동물 전문가' 에겐 반드시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모습이다.

감사하고 벅찬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좌)검은머리물떼새, (우)큰고니


여행비둘기 혹은 나그네비둘기라 불리던 새가 있었다. 한 때, 하늘을 뒤덮으며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고 이동하는 무리를 일컬어 비둘기 구름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 많은 개체수 때문인지 멸종에 대한 경계심 따윈 없었고 그들을 사냥하는 것은 일종의 인기 스포츠가 되어 수만 마리가 희생됐다. 결국 1914년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마지막 한 마리가 죽으며 지구상에서 살아 숨 쉬는 여행비둘기를 다시 볼 순 없게 됐다.

마지막 여행비둘기 'Martha'
(출처: http://onwisconsin.uwalumni.com)


우리 주변에도 여행비둘기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를 동물이 있다. 살아있는 모습보단 싸늘한 주검으로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고라니다. 고라니는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의 적색목록에 VU(Vulnerable, 취약) 등급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국내엔 개체수 조절이 필요할 정도로 많은 고라니가 서식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고라니에 대한 연구는 다른 종보다, 심지어 개체수가 훨씬 적은 중국고라니보다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개체수 조절이라는 명목으로 매년 많은 수가 수렵, 밀렵으로 희생되고 로드킬하면 떠오르는 동물이 고라니일 정도로 많은 수가 사고를 당하지만 개체수의 변화가 어떤지 알 길이 없다.

도로에서 만난 고라니와 야생에서 만난 고라니.
유해조수로 미움 받는 그들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사진 출처 : 김봉균, 이준석)


고라니 외에도 까치, 오리, 꿩, 비둘기 그리고 야생동물의 범주에 속하진 않지만 거리를 배회하는 개, 고양이까지 많은 종들이 흔함을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 작아서인지,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없어서인지 가벼운 생명으로 취급받는 양서류, 파충류, 어류, 인간에게 피해를 주던, 주지않던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재미로 잡고 죽이는 곤충.
파리와 모기까지 사랑하라는 것도, 존중하며 살생을 멈추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이 어떻든 그들 또한 한 생명이란 사실은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이 작은 사실은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 가슴에 쉽게 새겨지지 않으며, 이 작은 사실이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 주변을 살아가는 수많은 야생동물들.
그들의 생명에 가치를 매겨선 안 되지만 자신도 모르게 차별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한데 정말 그런가.
이 말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의 가치가 평등하다는 말도 그리 느껴져 안타깝다. 인간의 세상이 생겨난 이래 사람 사이에서도 생명의 가치가 나뉘지 않은 적이 없는데 하물며 동물들은 오죽할까.

태어날 때부터 가격이 매겨지는 동물들.
인간의 욕심은 사그라질 기미가 없다.


유해조수인지 아닌지, 개체수는 어떻고 생태적 가치는 어떤지 그러한 이유들을 막론하고 한 마리, 한 마리가 우리처럼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임을 잊어선 안 된다. 특히나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이 매긴 그들의 가치가 어떠하든 그들을 대하는 자세에 다름이 없어야 한다. 물론 어찌할 수 없는 날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애써야만 한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지만 나무가 있기에 숲이 있고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야생, 생태계가 있다. 우리가 야생의 많은 것들을 누려오던 오랜 시간동안 그들의 존재에 대해 한 번이라도 감사해 본 적이 있었던가.

깊이 생각할수록 고민만 깊어지더라도 생각을 멈춰선 안 된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이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