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설정한 조사 지역은 96번 국도 중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에서 서부면 궁리를 걸쳐 서산시 부석면까지 연결되는 도로의 일부 구간인 '천수만로' 였습니다. 천수만로 바로 옆에는 매년 수많은 철새들이 머무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인 천수만과 드넓은 농경지, 호수, 하천, 바다, 갯벌, 산 등이 존재하며 각각의 환경에 적응하고 서식하는 수많은 야생동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로드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한 그 어떠한 장치나 노력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사 대상인 천수만로의 위성지도 입니다. 대규모 간척에 의해 생성된 농경지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수많은 야생동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다름아닌 '천수만로' 입니다 |
조사는 2014년 7월~11월까지 5개월 동안 진행되었으며, 조사방법은 16km의 도로를 왕복하며 로드킬 개체 발견 시 날짜, 종명, 발생위치, 주변 환경, 도로 상황, 날씨 등을 기록하고 사진촬영을 실시 했으며, 발생위치는 GPS 수집 어플리캐이션을 이용해 수집한 후 Google 지도에 기록했습니다.
이제 조사 결과를 말씀드릴 차례겠죠... 5개월 동안 86차례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총 171건의 로드킬 발생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성급한 결론이긴 하지만 하루에 2마리의 야생동물이 이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셈입니다.
겨우 16km의 도로에서 하루 평균 2마리의 야생동물이 로드킬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인지 이제 좀 와 닿으실까요? 아직 와 닿지 않으신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각각의 도로마다 환경이 다르고, 교통량이 다르고, 여러 가지 조건이 다를 테니 적절하지 않지만,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여 우리나라의 10만km 도로에 이 결과를 대입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하루에 12,500마리의 동물이 도로 위에서 차에 치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그 죽음의 결과는 실로 비참한 먼지가 되어 바람에 날리웁니다.
조사기간 동안 발견한 동물들의 처참한 모습입니다. 사진은 조사 동안 발견한 동물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171마리 동물들 하나하나의 모습과 표정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동물들의 소리없는 비명을 들어주시고, 이들이 겪었을 끔찍한 고통에 대해 함께 가슴아파 해주시길 바라고 싶습니다 |
아래에는 본문에서 처음 보았던 천수만로의 위성사진에 로드킬에 의해 희생된 동물들을 발견한 지점의 GPS를 한데 모아 입력한 결과가 있습니다. 좌표들의 값을 입력해 한 장에 담아봤더니 점이 아니라 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은 제가 조사한 도로 구간을 뚜렷이 나타내는 하나의 길이 되어있었습니다. 조사를 시작하기 이전엔, 그래도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구간이 있을 테고, 그 부분만이라도 로드킬을 줄일 수 있는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면 조금이라도 로드킬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게 사실입니다. 허나 어느 곳 하나 안전한 장소는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도로 전체가 동물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죠.
로드킬 발생 지점의 좌표들을 입력한 후 종합했더니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선은 제가 조사한 천수만로 전체를 덮고있었습니다. 도로 전체가 동물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죠 |
171건의 로드킬 발생 흔적 중에는 당연히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동물도 포함되있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 324-2호, 멸종위기야생동물 Ⅱ급의 수리부엉이
천연기념물 제 324-3호의 솔부엉이
멸종위기야생동물 Ⅱ급의 삵
생명에 경중을 메길 순 없지만, 지금 당장 보호받아야 할 정도로 위험에 처해있는 동물들 역시 로드킬의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생명에 경중을 메길 순 없지만, 지금 당장 보호받아야 할 정도로 위험에 처해있는 동물들 역시 로드킬의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
특히나 천수만로는 서산 버드랜드, 홍성 조류탐사과학관 등 자연과 생명을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곳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연과 생명을 만나러 가는 이 길 위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자연과 생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연과 생명을 배우고 체험했던, 하려 했던 많은 이들이 동물을 지켜주기 위한 그 어떠한 것도 없는 이 도로를 지나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그들이 이 도로를 지나 만난 자연이 진정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천수만의 여러 교육기관에서는 천수만에 도래하는 많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이 동물들이 정작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이러한 현실에도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주셨으면 합니다.
매년 겨울이 되었을때 서산 천수만에 흑두루미가, 황새가 도래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허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동물들이 겪고있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입니다 |
앞서 로드킬이 얼마나 야생동물을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이젠, 로드킬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합니다. 알아야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기존에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생태육교나 생태통로가 있습니다!! 운전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생태육교나 생태통로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생태육교와 생태통로가 정말로 로드킬을 줄일 수 있는 정답이 될까요?
(380억 들여 만든 ‘위험통로’ 고라니는 겁이 납니다) 해당 링크로 이동하시면 아실 수 있듯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설치되어있는 생태통로나 생태육교는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이는 해당 서식지에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태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거나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등의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생태통로의 잘된 사례, 잘못된 사례 (출처 : 국립공원관리공단·환경부) |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생태통로와 역시 마찬가지로 운전을 하다 보면 종종 발견할 수 있는 야생동물 출몰지역 표지판도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에서 알려주는 "야생동물 출몰 지역입니다. 주의하세요." 라고 알려주는 것도 표지판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는 운전자에게 야생동물 로드킬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는 안내를 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허나 앞서 얘기한 방안들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마음가짐 입니다. 도로 위에서 의미 없는 죽음을 당하고 있는 야생동물들을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가짐 말이죠. 그리고 그 마음가짐을 운전습관에 고스란히 담아낸다면 그 무엇보다 뛰어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로드킬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로의 건설이지만, 가장 위협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과속' 입니다. 야생동물은 자신이 서식하는 지역 인근의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는지 알고 있습니다. 즉 해당 도로의 '제한속도'를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도로를 건널 때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리고 건너게 되는데,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은 채 과속을 해서 오는 자동차가 있다면 당연히 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시야확보가 어려운 밤이나, 야생동물이 나올 법한 지방의 도로를 다닐 때에는 표지판이 없더라도 항상 로드킬을 의식하고 조금 더 속도를 줄여 운전을 해주셔야 합니다.
"설마 내가 로드킬을 하겠어...?"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로드킬은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까요? 조사 전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해주신 100분 중 38분이 로드킬의 가해자가 되었거나, 로드킬이 발생하는 순간을 목격하였거나, 로드킬로 인해 발생되는 크고, 작은 2차 사고를 목격했다고 응답했습니다. 100명의 운전자 중 38%에 해당하는 인원이 직, 간접적으로 로드킬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일까요?
여러분께서 로드킬에 의해 희생되는 수많은 동물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주시고 이들을 지켜주고 싶으시다면 꼭!! 운전하실 때 제한속도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여유 있게 더 낮은 속도로 운전해주세요. 속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제동거리도 짧아지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야생동물이 나타났을 때 치지 않고 멈출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제한속도 정도는 지키는 여유를 가져주세요. 당신의 마음가짐과 운전습관이 의미없는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
조사기간 동안 필자는 도로 위에서 울려 퍼지는 동물들의 소리 없는 비명을 듣고 수없이 많은 야생동물의 사체를 봤지만, 도로 위에서 사체를 발견한다는 건 여전히 익숙해지지를 않습니다. 어떤 동물의 사체인지 확인하기 위해 동물의 사체를 들추다가 혹은 2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체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미처 감지 못한 그 눈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언제까지 도로 위에서 희생되어진 동물들의 눈빛을, 그들의 이야기를 무시해도 되는 걸까요...
부디 이 동물의 소리없는 외침을, 눈빛을 잊지 말아주세요 |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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