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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야생조류 잡는 버려진 그물, 이대로 괜찮을까...?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 회색빛 건물과 유리창이 즐비하고, 눈부신 빛과 굉음을 내뿜으며 내달리는 자동차와 도로 역시 곳곳을 누비고 있다. 녀석들은 가던 길을 갔을 뿐인데 무언가에 의해 이동에 방해를 받고, 심할 경우 목숨을 잃는 큰 사고를 겪기도 한다. 녀석들을 가로막는 위험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한다. 하물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밭그물'도 그렇다.

과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밭그물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보니, 저 멀리 밭그물에 무언가 얽힌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천연기념물 제323-4호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에 지정된 법정보호종 맹금류 '새매'였다. 녀석은 거꾸로 매달린 채 입을 벌리고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법정보호종 새매가 밭그물에 몸이 얽힌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몸부림칠 수 없도록 포획한 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얇고 날카로운 줄이 발과 날개, 몸통에까지 어지럽게 감겨있었다. 녀석이 스스로 줄을 풀어내고 탈출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했다.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서서히 목숨을 잃어갔을 녀석이지만, 녀석을 쉬이 지나치지 않은 신고자의 노력으로 다행히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밭그물에 걸린 새매를 구조하는 모습



녀석을 구조한 후 주변을 살펴보았다. 밭그물은 약 100m가 조금 넘을만한 길이로 과수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거리의 그물에서 법정보호종 맹금류 3구, 까치/물까치를 비롯한 참새목 조류 6구, 그렇게 총 9구의 사체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작 100m의 밭그물을 딱 한 번 관찰했을 뿐인데, 살아있는 새매까지 총 10마리의 새가 걸려 있는걸로 보아 잠재적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이 이와 같은 피해를 겪을지 예상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해당그물은 너무 얇아 시안성이 좋지 않았다. 사람에게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물며 그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새들에겐 몸이 엉키고 나서야 장애물이 있었다고 인식할 정도가 아닐까.

또 다른 새매는 이미 명을 달리한 상황이었다.


그물에 걸린 채 죽은 새들의 모습은 처참하기를 넘어서 섬뜩했다. 이미 명을 다한 새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넘어서 사체를 먹기 위해 접근할지 모를 또 다른 야생동물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실제로 그랬을 수 있다. 과수를 먹기 위해 접근한 참색목 조류가 먼저 그물에 걸려 피해를 입고, 이후 이 새들을 먹이원으로 생각한 상위 포식자가 접근했다가 미처 그물을 파악하지 못하고 엉켜버렸을 수 있다는 합리적 추측도 가능하다.
또한, 사체가 소비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할지 모를 질병의 전파까지도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사체는 자칫, 또 다른 2차 사고를 야기할지 모른다.


밭그물은 기본적으로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아 농작물, 과수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설치한다. 하지만 해당 과수원에 설치된 밭그물은 사실상 그 명목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된 듯 한 모습으로 그물 곳곳이 찢어지거나 말려 올라가 침입 방지의 역할이 사실상 불가해보였다. 오히려 폐그물처럼 너저분하게 널려있어 불특정 다수의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과수피해를 우려하는 농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법정보호종의 야생동물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생물이 무차별적 피해를 겪고 있다면, 또 관리/감독의 소홀이나 더 이상 과수원을 운영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설치 목적과 역할이 유명무실하다면, 이 밭그물은 제거함이 마땅하다. 

밭그물의 하단부가 거의 다 말려 올라가 사실 상 효용성이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농작물 피해를 우려해 설치한 시설물에 대해 철거나 보수, 교체를 지도/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게 몇몇 관련부서의 입장이다. 사실상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폐그물이지만, 그마저도 철거를 권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물의 사용 및 선택에 부분적 제한을 마련하거나,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점검 혹은 신고에 따라 적어도 폐밭그물의 철거나 수거를 진행할 수 있다면, 농민들에게 관련 내용을 주기적으로 교육해 권고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현재로서는 농민들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물의 두께를 굵은 것으로 사용해 시안성을 높여 야생동물이 쉽게 그물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거나 부드러운 재질을 이용해 신체가 걸리더라도 조금은 더 쉽게 빠져나가고, 신체에 손상이 덜 가해지도록 배려하는 것. 그리고 밭그물의 필요가 없어지면 깨끗하게 철거해 불필요한 희생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이다. 

밭그물의 설치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야생동물로 인해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 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이동권, 생존권 만큼이나 중요하게 헤아려야한다. 밭그물을 설치한 농민을 탓하기 보다는 동물의 접근을 보다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를 불러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밭그물의 설치가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지, 자신의 농작물과 과수에 피해를 끼치는 야생동물을 죽여 없애고 분풀이를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피해를 겪는 농민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구조한 새매의 몸 구석구석에서 그물을 어렵게 풀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피해 당사자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농작물의 생산자와 야생동물의 갈등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농작물을 소비하는 우리와도 결코 뗄 수 없는 문제다. 피해를 겪는 농장에 대한 예방책 지원,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에 걸맞는 투명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먹을 농작물의 가격이 다소 상승할 수밖에 없다면, 이를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심을 우리는 갖춰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되어왔다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들에게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들이 행한 것이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야생동물이 사람들의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단지 그들은 그들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길...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7년 12월 21일 목요일

구조센터 야생동물의 겨우살이, 결국 더부살이!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굉장히 뚜렷한 나라입니다. 봄에는 포근하고, 여름에는 덥고, 가을에는 서늘하며, 겨울은 춥습니다. 물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진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각 계절에 따라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갈 정도로 각 계절의 특징이 뚜렷하죠.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야생동물의 삶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 여름, 가을, 겨울을 살아가는 각각의 삶의 모습이 다를 겁니다. 그렇다면,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물들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겨울이 되면 센터의 하루는 눈쓸기로 시작합니다.
즐겁게 눈을 쓸다보면 어느새 추위도 달아납니다. 아하하하...

 
우선 겨울이 오기 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를 '월동준비' 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겨우내 사용할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해야하고, 동물들에게 해줘야할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것은 역시 '추위'겠지요. 다친 야생동물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야생동물보다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면역기능도 떨어져 질병감염에 더 취약해질 개연성도 존재합니다. 필요하다면 동면이라도 취하겠지만, 인위적인 공간에 있는 동물에겐 동면 역시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 자칫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해야 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체온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되도록 웅크리고, 노출되는 피부의 면적을 줄이려는 등의 모습을 보이죠.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첫 번째 방법!! 바로 은신처나 바닥재를 제공하는 것 입니다. 사실 은신처나 바닥재는 겨울 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제공해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동물이 불필요한 자극에서 벗어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특히 겨울에는 조금 더 따뜻할 수 있는 재질로 바꿔주거나 자주 교체를 해주는 등 더 신경을 써야하죠

겨울에 머무는 포유류들에게는 낙엽이 굉장히 많이 필요합니다. 계류공간 내에 낙엽을 깔아놓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을 줄여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연환경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야생동물에게 익숙하고 안전하니까요.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센터 직원들은 낙엽을 마구 긁어모아옵니다. 잘 보관해두고 겨우내 요긴하게 사용하지요. 낙엽 이외에 두꺼운 담요 등을 추위를 피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열심히 쓸어담으면, 겨우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직접적으로 열을 제공해 추위를 줄여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열등이나 온열기 등을 계류공간에 제공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추위를 줄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이야말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은 화상을 입을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죠. 계류공간 내에 열등을 설치할 때에는 동물의 몸에 직접적으로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놓아줘야하고, 특정한 위치에만 제공해 동물이 열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합니다. 너무 더우면 열등이 없는 시원한 곳에 가서 체온을 내리고, 다시 추워지면 스스로 열등 근처로 다가오게끔 말이죠.
 
직접적인 열을 제공할 경우 위험성이 따르니 신중에 신중을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등을 제공해준다면 필히 계류공간 내의 온도와 습도를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열등으로 인해 온도가 너무 높아지지는 않았는지, 너무 건조해지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해야하죠. 만약 너무 건조하다싶으면 물이 담긴 접시나 물에 적신 수건 등을 놓아 조절해줄 수 있습니다.
 
추위만 대비한다고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역시 ''입니다. 눈이 흩날리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일단 쌓이기 시작하면 이보다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특히 야생동물은 눈이 쌓이면 먹이활동에 지장을 받아 탈진으로 이어지는 등의 큰 위협이 되기도 하니까요. 자연생태계에서 눈이 내리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맞지만 구조센터에게 눈은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닙니다.

눈이 제법 많이 왔습니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변한 환경에 호기심을 갖는 걸까요?


일단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계류공간의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충남센터의 경우 일부 계류공간의 천장이 그물망으로 되어있는데, 많은 눈이 쌓이면 무거운 나머지 아래로 축 처져 버립니다.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지만, 어쩌면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지요. 그럼 내부에 머물고 있던 동물이 눈에 깔리거나 그물에 엉키는 등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눈의 양을 확인하고, 천장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늦은 밤에도 쉽사리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캡션 추가
 

천장에 눈이 쌓이는 문제 외에도 눈 자체가 계류공간 전체를 덮어버리면 그곳에 머무는 동물들이 힘겨울 수 있습니다. 때문에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하지요. 충남센터의 경우 천장 중 일부는 완전히 덮여있어 눈이나 비가와도 맞지 않고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간이 없다면 몸이 젖어 체온이 떨어질 수 있으니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류공간의 깊숙한 안쪽은 부분적으로 지붕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눈과 비과 들이닥치지 않는, 동물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죠. 


물론 겨울이 구조센터의 동물들을 힘겹게만 만드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눈이 내리면 동물들에게도 특별하고 신선한 자극이 되니까요. 어떤 동물은 눈 위에 신나게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 놀기도 하고, 또 어떤 동물은 눈을 먹어보거나 헤집어 놓는 등 기존과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왜 우리 사람도 그렇잖아요. 눈이 오면 괜스레 차가울 걸 알면서도 만져보고 싶고, 발자국도 남겨보고 싶고... 

교육동물 너구리에게 눈을 이용한 행동풍부화를 해주었습니다.
눈으로 만든 케이크를 선물받고 호기심에 가득찬 모습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구조센터에 머무는 동물에게 겨울은 춥고 고달플 것 입니다. 가뜩이나 상처입고 아픈데 추위가 몰아치니 말이죠. 그건 야생에 살아가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이 척박한 환경에 가뜩이나 살아가기 어려운데 몰아치는 추위가 그들을 더 몰아세울 겁니다. 부족해진 먹이에 위협을 무릅쓰고 민가를 어슬렁거릴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쫓기고, 도망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삶일 지도요. 하지만 그들 역시 저마다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이 겨울을 견뎌내고 힘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겨운 겨울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봄이 올 테고, 조금만 더 지나면 무더운 여름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겨울을 기다리겠죠? 마치 우리처럼.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으니까. 우리의 겨우살이는 야생동물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더부살이니까.

흰꼬리수리 앞에 놓인 눈사람의 운명은...?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7년 12월 12일 화요일

2017년 11월 야생동물 구조/치료 결과

1. 종별 구조 개체 수



11월에는 조류 21종 29개체(55%), 포유류 3종 24개체(45%)로 총 53마리의 동물이 구조되었습니다. 이 중 조류에서는 수리부엉이가 4마리로 가장 많았으나 11월에는 비교적 다양한 종이 구조되었고, 포유류에서는 고라니가 19마리로 가장 많이 구조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구조된 고라니의 경우 번식기가 다가오면서 활동성 및 이동거리가 증가함에 따라 그만큼 많은 수가 구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류의 경우 독수리, 말똥가리, 멧도요, 쇠기러기, 큰소쩍새, 상모솔새처럼 겨울철새 혹은 겨울에 잘 볼 수 있는 종들이 구조되기 시작했습니다.




2. 구조 원인



구조 원인으로는 차량과의 충돌이 18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총상과 함께 가을-겨울에 많이 일어나는 사고로 농약/납 중독이 있습니다. 주로 농약이 묻은 볍씨를 먹거나 총상을 입고 죽은 물새류(기러기류)를 독수리나 상위 포식자가 먹고 2차적으로 중독되어 들어오게 됩니다. 11월에 발생한 중독사고 역시 중독물질에 2차적으로 노출되어 구조된 독수리 2마리였습니다.



3. 구조 지역



11월에는 아산시와 예산군에서 가장 많은 구조 접수가 들어왔습니다. 



4. 구조 결과


11월에 구조되어 치료받은 개체 53마리 중 14마리가 자연으로 돌아갔으며 6마리는 치료 및 재활 과정 중에 있습니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진료수의사 이문희





2017년 10월 야생동물 구조/치료 결과

1. 종별 개체수


10월에는 조류 13종 28개체(65%), 포유류 2종 15개체(35%)로 총 43마리의 동물이 구조되었습니다. 이 중 조류에서는 멧비둘기가 11마리, 포유류에서는 고라니가 8마리로 가장 많이 구조되었습니다. 






2. 구조 원인


구조 원인으로는 전선이나 건물, 차량과의 충돌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을-겨울 시즌에 수렵 혹은 밀렵행위로 인하여 발생 건수가 증가하는 총상도 1건 있었으며 태안에서 구조된 고라니였습니다. 이 고라니는 몸에 박힌 여러 총탄 중 하나가 척추 사이에 끼어 척수를 손상시키면서 뒷다리의 운동능력이 소실되어 기립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3. 구조 지역


10월에는 우리 센터가 위치한 예산군에서 가장 많은 수의 야생동물이 구조되었습니다. 





4. 구조 결과


10월에 구조되어 치료받은 개체 43마리 중 8마리가 자연으로 돌아갔으며 1마리는 치료 및 재활 과정 중에 있습니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진료수의사 이문희





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움직이는 돌덩이로 변해버린 너구리가 흘리는 눈물

살아 움직이는 돌덩이가 있다면 누가 믿을까? 메두사의 눈을 마주하거나, 마법사가 나타나 살아있는 존재에게 돌로 변하는 마법을 부렸다는 신화 속에나 나올 이야기일 테니 당연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직접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돌덩이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움직이는 무언가가 마치 돌덩이를 닮은 것이다. 그리고 이 무언가는 분명 살아있기에 움직인다.
움직이는 돌덩이... 녀석의 정체는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이다.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의 모습은 마치 돌덩이 같기도, 소보로빵 같기도 하다.
어쨌든 야외에서 녀석을 마주한다면 흠칫 놀랄만한 모습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상적인 상태의 너구리
개선충 감염 너구리와 비교해보면, 과연 같은 종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개선충증(Scabies, Sarcoptic mange)은 외부기생충인 Sarcoptes scabiei가 원인체이고, 대다수의 포유류가 이 기생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지만, 국내 야생동물 중에는 단연 너구리가 감염에 취약하다.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한결같다. 대체로 안쓰럽다, 무섭다, 징그럽다, 더럽다, 꺼림칙하다 정도이다.

이 녀석이 바로 너구리를 위협하는 '개선충'이다.


너구리가 개선충에 취약한 것은 녀석이 가진 생태적 특성이 크게 한몫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굴과 같은 곳을 은신처로 이용하는 너구리는 이를 공유하는 배우자나 새끼와 같은 가족들에게 전면적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 또, 공동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주변의 다른 개체들과 의사소통 등의 교류를 나누는 특성상 개체 간 접촉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으로 판단된다. 뿐만 아니라, 개선충은 어떠한 이유에 의해 면역력이 낮아진 것이 아닌, 건강한 개체라도 얼마든지 감염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위협적이다.

개선충에 감염된 새끼 너구리 남매. 너구리는 대체로 배우자 혹은 가족
단위의 무리로 생활하기에 개체 간 접촉에 따른 질병전파 가능성이 높다.


개선충에 감염되면, 보통은 귀와 겨드랑이, 복부, 다리에서 시작되어 몸 전체의 털이 빠지고, 심한 가려움증, 표피박리, 만성피부염 등을 유발한다. 갈라진 피부에 상처가 발생하면서 2차 감염에도 취약해진다.
심한 가려움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해지기에 먹이를 취식할 수 있는 기회 역시 감소한다. 이는 당연히 체중의 감소, 탈수로 이어진다. 궁극적으로 심각한 영양결핍과 면역력 저하, 저체온증에 따른 폐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너구리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인 셈이다.

개선충에 감염되어 정상적으로 먹이활동을 할 수 없게 된 너구리 형제가 녀석들을 불쌍하게 여긴 누군가가 놓아준 음식을 먹으며 허기를 체우고 있다.


개선충 감염은 너구리의 개체군을 조절하는 폐사원인 중 차량과의 충돌과 더불어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 판단된다. 실제로 일본에 서식하는 너구리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중 일부에 따르면, 개선충 감염이 너구리의 가장 지대한 폐사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너구리의 개선충 감염은 특히 겨울철에 더 발생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낮아지는 기온과, 먹이활동의 제한 등 겨울은 정상적인 너구리조차도 살아남기 가장 힘든 계절이다. 그만큼 몸의 면역능력이 떨어져 더욱 잘 감염될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개선충은 사람에게도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감염되더라도 사람의 몸에선 생활사를 이어갈 수 없어 증식하지 못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적으로 없어진다. 다만, 한동안 가려움증으로 인한 고생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야생동물과의 접촉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만큼 질병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예방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매년 한, 두 명이 개선충에 의해 잠시나마 가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뭐... 모두 잘 살아있다.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를 다루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최대한 직접 접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항상 뜻대로 될 수는 없는 법...


개선충에 걸린 너구리가 무조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조기에 발견해 구조할 수 있다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다. 빠져버린 털로 인해 떨어질 체온을 유지해주면서 수액처치를 통해 탈수 및 전해질을 교정한다. 동시에 항생제와 항기생충제 같은 약물투여를 병행한다면 치료가 가능하다.
다만, 감염 초기에는 활동성이 떨어지기 전이므로 보통의 너구리처럼 마주할 가능성이 낮고, 설령 마주하더라도 경계반응과 운동성 남아있는 상태라 구조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중증으로 번지고 나서야 그나마 눈에 띄어 구조가 이루어지니 구조센터에 들어오는 너구리의 대다수는 이미 치료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서야 발견된 너구리의 모습.
몸에 붙어있는 노란 것은 '파리알'이다. 파리를 쫓을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개선충의 치료가 끝났다고 바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다시 어느 정도 털이 자라나 보온능력을 갖출 때까지 구조센터에 머물게 된다.


개선충 치료가 끝난 너구리의 모습
털이 다시 자라 체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질병이나 전염병이라면 기겁을 하고, 마냥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자연생태계에서의 질병은 꽤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과거부터 존재해오면서 특정 개체군이 과도하게 증가하는 것을 조절하면서 생태계를 유지하는 균형자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오늘 날,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점차 줄어왔다. 그 결과, 단위 밀도 당 특정 개체군이 과밀해져 전염 가능성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거나, 사람이나 인가의 가축과 야생동물의 접촉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문제다. 
질병이 생태계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 해도, 질병에 걸린 동물을 발견했을 때, 마냥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하고 모른 척 지나가는 것도 썩 바람직하지 않다. 치료가 가능하다면 치료의 기회를, 치료가 불가하면 최소한 안락사를 통해 고통을 줄여주거나 다른 개체 간의 전파 가능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는 먹이를 이용한 포획틀로도 충분히 쉽게 구조가 가능하다.
다만, 보온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포획틀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머무는 동안 추위를 덜 느낄 수 있도록 비닐이나 이불 등을 이용해 보온에 신경 쓰는 것이 좋다. 


돌덩이처럼 변해버린 야생동물을 갑작스레 마주한다면 누구나 걱정이 앞설 것이다.
'혹시나 나에게 감염되면 어떡하지? 위험하지 않을까?', '저게 뭐야... 징그러워...', '더러워...'
같이 말이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질병에 감염된 야생동물과 그들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이 접촉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꼭, 직접 녀석을 만지고, 구조해야 도움을 주는 건 아닐 것이다. 녀석들을 살피고, 야생동물구조센터와 같은 전문 구조기관에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장 포획하지 않을 시 위험할 상황이라면 장갑을 착용해 피부와 직접 접촉하는 것을 방지하고, 포획용 채나 담요/이불 등을 이용해 덮어 잡은 후 상자(너구리는 종이상자를 뜯고 나갈 수 있으므로 플라스틱 케이지를 이용하자)에 넣어 보호하면 된다. 추가적으로 약간의 물을 제공하거나, 따뜻한 곳에 두어 체온유지를 돕는 것 역시 필요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익숙하지 않고 징그러운 겉모습 때문에 혐오와 편견의 대상이 되거나 외면당한다면 그만큼 안타까운 것이 또 있을까? 녀석들은 처절하리만큼 힘을 내어 버티고 있고, 지금 바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마법사의 저주에 걸려 돌덩이로 변해버린 너구리를 구해주는 신화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쩌면 여러분일지 모르는 것 아닐까? 부디 외면하지 말고, 함께 해피엔딩을 써내려가 주길 당부 드린다.

생명의 끈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녀석에게도 햇빛은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녀석들은 처절하리만큼 힘을 내어 버티고 있고, 지금 바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부디 외면하지 말아주길 당부 드린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2017년 9월 야생동물 구조/치료 결과 분석

1. 종별 개체수 분석


9월에는 조류 14종 39개체(72%), 포유류 3종 15개체(28%)로 총 54마리의 동물이 구조되었습니다. 이 중 조류에서는 멧비둘기가 14마리, 포유류에서는 고라니가 8마리로 가장 많이 구조되었습니다. 9월이면 여름철새가 아직은 관찰이 될 수 있는 시기이므로 솔부엉이, 검은등뻐꾸기, 파랑새, 큰덤불해오라기, 쏙독새 같은 조류가 구조되어 들어옵니다.





2. 구조 지역


9월에도 마찬가지로 인구가 많은 아산시, 예산군, 천안시와 당진시 순으로, 주로 큰 도시에서 많은 수의 야생동물이 구조되었습니다.





3. 구조 원인


구조 원인으로는 전선이나 건물, 차량과의 충돌이 가장 많았으며, 바이러스 감염과 기생충 중감염으로도 들어온 개체가 늘었습니다. 이는 비둘기류에서 가을 즈음부터 많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폭스바이러스 감염증과 너구리의 개선충 감염증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4. 구조 및 치료 결과

9월에 구조되어 치료받은 개체 54마리 중 9마리가 자연으로 돌아갔으며 7마리는 재활 및 치료 과정 중에 있습니다. 9월에는 안락사를 고려해야 하는 개체가 많아 수의업무를 담당하는 저도 마음이 무거운 한 달이었습니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진료수의사 이문희



2017년 10월 3일 화요일

농사나 축내는 그깟 놈 뭐 하러 구조하냐고요? 생명에 겨우 그깟 놈이 어디있나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저 멀리 갈대숲에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괜스레 오싹한 느낌이 들었지만 누구일까 궁금한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날카롭고 긴 송곳니가 눈에 들어온다. 역시 녀석은 무시무시한 존재일까? 그런데 그 순간! 녀석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두려웠던 마음도 잠시, 마주한 녀석의 눈망울은 참으로 맑고, 선함 그 자체였다.
이처럼 주로 밤에 활동하며, 긴 송곳니를 지니고 있는 동물을 밤에 갑작스럽게 마주한다면 제 아무리 사람이라도 깜짝 놀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보다 몇 배는 더 화들짝 놀라 줄행랑을 칠 것이 분명할 만큼 겁이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녀석이다.
 
녀석의 이름은 고라니이다.

바로 이 녀석이 '고라니' 이다.
(출처 : 이준석)


고라니는 한반도에서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포유동물 중 하나이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라니 개체군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이다. , 국내에 서식하는 사슴과 동물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다. 게다가 높은 산에도 서식하지만 저지대를 더 선호해 습지나 농경지 주변, 평지와 산이 만나는 경계지역에 살아가는 특징 때문에 우리는 고라니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고라니는 사슴과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슴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만한 특징은 단연 ''일 것이다. 하지만 고라니는 뿔 대신 송곳니를 지니고 있다. 이 송곳니는 수컷의 경우 보통 4~5cm, 길게는 7cm에 이르는 길이로 자라며, 암컷은 그보다 훨씬 작은 1cm 이내의 길이로 자란다. 만약 고라니를 마주했는데, 기다란 송곳니가 입 밖으로 삐죽 나와 있다면 녀석이 수컷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단언하긴 어렵다. 대게의 암컷은 송곳니가 짧아 윗입술에 덮여 보이지 않지만, 간혹, 수컷에 견주어도 결코 짧지 않은 수준의 길이로 자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녀석은 암컷일까, 수컷일까?


고라니는 이 송곳니를 다른 수컷 고라니와 경쟁하는 무기로 사용한다. 뿔이 무겁고 강력한 무기라면, 송곳니는 가볍고 날카로운 무기인 셈이다. 송곳니를 앞으로 당겨 상대를 위협하며, 이러한 경쟁의 과정에서 송곳니가 부러지거나, 귀나 피부가 찢어지는 등의 부상을 입기도 한다. 그렇다고 고라니의 송곳니가 싸움과 경쟁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송곳니를 이용해 나무줄기 껍질을 벗겨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등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도 사용한다. 


때로는 매우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는 고라니의 송곳니


이런 특징 때문일까우리나라에서 고라니를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라니를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고라니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 역시 거의 없다.
 
실제로 고라니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의 정도에 따라 지정하는 적색목록(IUCN RED LIST)에 취약(VU, Vulnerable) 수준으로 등재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나마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포유동물인데,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셈이다. 현재 고라니가 살고 있는 지역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과거 전시나 사육의 목적으로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야생화 되어 영국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살아가는 일부 개체군이 있긴 하지만, 고라니가 토착종으로 서식하는 나라는 오직 우리 한반도와 중국, 두 지역뿐이다.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 제공하는 멸종위기 동물의 서식 분포를 담은 위성지도.
자세히 보면, 한반도와 중국에만 주황색의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IUCN) 


중국 양쯔강 남부의 일부 지역에 서식하는 고라니는 과거 남획의 결과로 개체군이 많지 않아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고, 일부에서는 복원사업까지 진행 중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실제로 전 세계에서 고라니의 서식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한반도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고라니가 사라진다면, 고라니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멸종위기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멸종위기 수준이 높아 적색목록에 까지 등재되어 보호를 필요로 하는 고라니지만,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라니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우리에게 고라니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이기 이전에 유해 야생동물혹은 유해조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가에 나타나 애써 가꿔놓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왜 우리는 고라니가 유해 야생동물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토착종이고,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해있으며, 만약 우리나라에서 고라니가 사라진다면 정말 절멸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없었을까?

고라니는 사람에 의한 포획, 차량과의 충돌, 콘크리트 농수로 추락,
질병감염 등에 의해 개체수가 조절되고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아마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 일 것이다. 고라니의 처지를 돌아보기에 앞서, 고라니로 인해 피해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우선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대부분 고라니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를 접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고라니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농작물이나 축내는 성가신 녀석’, ‘너무 많아 마구 잡아내도 상관없는 녀석’, ‘어차피 잡아낼 거,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사치인 녀석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고라니로 인해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생존권 만큼이나 중요하게 헤아려야한다. 동물의 접근을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만을 불러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물들이 꺼려하는 초음파를 발생시키거나 포식자의 소리배설물을 농장 부근에 뿌려두는 방법전기 목책폭음탄 등 이미 시행되고 있는 예방의 방법도 다양하다물론 필요하다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직접 포획하는 방법도 사용해야 하겠지만사전에 피해의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예방의 노력을 우선적으로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고라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정작 고라니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고라니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주를 이룬다.
(출처 : MBC)


단순히, "고라니가 불쌍하니 죽이지 말자." 라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고라니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 부정적 시선, 왜곡된 정보가 난립하고, 이 과정에서 고라니에 대한 가학적 처치가 만연하게 이루어지거나 무분별하게 포획되는 현 상황을 돌이켜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고라니가 많다고는 하지만 정작 얼마나 많은지, 조절해야 한다면 그 적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수 있는 연구결과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나 세계적으로 희귀한 유전자원은 개체수가 많더라도 유전자 다양성이 감소할 수 있음을 고려해 인위적인 조절에 조심해야 한다. 지금처럼 무분별한 조절과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갖는 시선의 왜곡과 편견은 위험할 수 있으니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눈에 많이 보인다고해서 괜찮을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한다과거에 우리와 부대끼며 살아왔던 동물들이 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고라니가 처한 상황 역시 매우 심각한 위기의 연속이다. 이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축적한 고라니의 조난기록을 통해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 기록을 살펴보면 구조된 전체 야생동물 4,898개체 중 고라니는 1,053개체로 전체의 약 21.5%를 차지한다. 이중 조류와 양서/파충류를 제외, 포유류 1,623개체 중 1,053개체로 전체 포유류의 약 64.88%에 육박한다. 이는 우리나라에 고라니 개체군이 많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고라니가 여러 위험요소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거나, 위험압력이 높게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6년간 구조한 고라니의 조난원인을 분석해보았다.
차량과의 충돌이 과반을 넘을 정도로 높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라니를 위협하는 요인 중 가장 높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역시 차량과의 충돌이다. 전체 구조 빈도 중 과반을 차지할 정도이다. 우리나라가 국토면적과 대비해 도로의 밀도가 높기도 하고, 저지대를 선호하는 고라니의 특성상 도로와 자동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밖에 유해조수 구제를 위한 수렵과 합법적 범주를 벗어난 밀렵 역시 고라니 개체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해 우리나라에서만 10~15만 개체의 고라니가 인위적인 포획에 의해 사라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밖에 번식기에 사고로 어미를 잃거나, 어미를 잃었다고 오해해 발생하는 납치의 영향으로 구조되는 새끼 고라니의 경우가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콘크리트로 건설된 농수로에 빠진 후 고립되거나 밭에 설치한 그물이나 펜스와 같은 인공구조물에 몸이 끼이는 사고 등에 노출되고 있다.

굳이 우리가 보내는 편견 그득한 시선이 아니더라도,
고라니의 삶은 치이고, 빠지고, 구르고... 고난의 연속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되어왔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들에게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들이 행한 것이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야생동물이 사람들의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단지 그들은 그들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단순히 눈에 많이 보인다고해서 괜찮을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한다과거에 우리와 부대끼며 살아왔던 동물들이 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다우리의 편견시선왜곡이 그 원인이었을 수 있다 
만약 동의한다면, 이쯤에서 다시 기억하자. 고라니는 전 세계적인 멸종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콘크리트 농수로에 빠져 서서히 굶어가는 녀석을 보며, 농작물이나 축내는 나쁜놈을 뭐하러 구조 하냐는 말이 얼마나 가시 돋친 말인지를.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