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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콘크리트 농수로, 삶과 죽음의 경계로 향하는 길




지구에 인류가 출현한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늘어난 인구에 맞춰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농경지 역시도 광범위하게 확보해야했죠이 과정에서 서식지 침범농약 사용 등의 피해가 야생동물에게 고스란히 향하고 있지만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농경지 부근에는 어김없이 농수로가 존재합니다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농사를 짓는데 있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구조물이지만이것이 야생동물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죠실제로 많은 야생동물이 농수로에 빠진 뒤 빠져나오지 못하고 고립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무려 3마리의 고라니가 농수로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진 출처 : SBS 뉴스)


현재의 농수로는 대부분 콘크리트로 건설되어 있습니다대부분 평탄한 바닥에 양쪽으로 우뚝 솟은 수직의 벽이 자리하고 있는 직사각형의 형태를 지닙니다각각의 목적에 따라 높이나 넓이길이 등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성인의 키보다 높은 경우도 쉽게 볼 수 있고농경지의 규모에 따라 수십km에 이르는 길이로 건설되어 있기도 하죠.

농수로에 가장 흔히 고립된 채 발견되는 동물은 '고라니'입니다. 이러한 농수로에 고립되면 여간해선 빠져나오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제 아무리 높은 점프를 할 수 있는 고라니에게도 2m에 달하는 높이를 뛰어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특히나 농수로는 폭이 좁아 도움닫기를 하기에도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뛰어넘어 나올 수 없다면 입구나 수문 등 외부와 이어지는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데농수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야생동물에겐 이 역시도 쉽지 않겠지요심지어 이런 탈출구가 없는 농수로도 많고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수문은 굳게 잠긴 채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말 그대로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어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는 셈인데,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구조를 받는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아마 서서히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농수로의 문제는 포유동물의 고립에서 그치지 않습니다양서파충류를 비롯한 동물의 이동을 막아 생태계를 단절시키는 부작용을 보이기도 하죠. 콘크리트 수로의 가파른 벽면은 다 자란 양서류에게도 넘어가기 힘든 장애물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수로 내의 고여 있는 물에 산란한 개구리의 알이나 올챙이는 정상적인 서식지와 다르게 비가 오면 무척이나 쉽게 쓸려 내려가는 문제도 있습니다.

양서, 파충류에게도 콘크리트 농수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덫과 같다.
(사진 출처 : 네이버카페 '한국의 양서파충류' 솔이아빠님 게시글)


농수로에 고립된 고라니를 구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스스로 나갈 수 있게끔 탈출구가 있는 위치까지 몰아가던가, 그럴 수 없다면 포획해 밖으로 끄집어내는 방법입니다. 포획을 해야 하는 경우엔 녀석을 쫓아 구석으로 몰아간 뒤, 여러 명이서 그물 등을 이용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포획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리가 진흙과 물에 잠기는 상황에서, 흥분해 도망가는 고라니를 쫓아간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매우 힘든 과정이지요. 게다가 자칫 놓치게 되면, 또 다시 수km를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때문에 부득이한 상황에서는 블로우건(마취총)을 이용해 마취를 시킨 후 포획해 구조하기도 합니다.

몰아서 나가게끔 유도해야 할까... 아니면 포획해야할까... ?
둘 다 너무 어렵고, 힘들겠지만...
  

이렇게 구조된 고라니는 추락 중 발생한 외상이나 골절 등이 있는지, 고립된 지 오래 되어서 심각한 기아, 탈수 증세를 보이지는 않는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합니다. 이상이 없다면 현장에서 바로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겠지만, 만약 이상이 있다면 구조센터로 데려가 충분한 치료를 진행하게 됩니다.
 


콘크리트 농수로가 지닌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흙 농수로 역시 콘크리트로 바꿔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흙 농수로의 경우 지하로 스며드는 물의 손실량이 높고, 바닥에 자라나는 수초로 인해 유속이 느려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죠. 하지만 이 역시 의문이 남습니다. 지하로 스며드는 물을 전부 다 손실되는 것이라고 단정 지어도 되는 것일지, 이러한 물 중 대다수의 양은 지하수로 흘러들어가 결국 다시 사용이 가능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 말이죠.
 
생태계를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설되는 콘크리트 농수로의 피해는 야생동물만의 것이 아닙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어린이의 경우에도 자칫 농수로에 떨어져 다치거나 고립될 가능성이 분명 존재합니다

물론 농수로를 왜 천편일률적으로 이렇게 건설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해가 지속적으로 관찰이 되고 있다면 이제는 고민을 해봐야겠죠.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하면 줄여나갈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피해를 예방하고, 줄이기 위해선 농수로의 높이를 너무 높지 않게 하거나, 수로 곳곳에 외부로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나 탈출구를 일정한 거리마다 의무적으로 건설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을 포함한 공존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물론 그 과정에서 동물의 생태적 특성이나 2차 사고의 위험성 등에 대한 고민을 필히 수반해야 합니다.

배려라는 것은 누구 하나만 잘 살게 해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함, 즉 공존을 위한 시작이겠지요.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을 위한 공존의 대안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진 출처 : SBS 뉴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6년 12월 7일 수요일

2016년 11월 야생동물 구조(치료) 결과 분석

1.종별 개체수 분석.(2016년 11월)



11월에는 총 39마리의 야생동물이 구조되어 접수 되었습니다. 포유류 4종 19개체(48%),조류 14종 19개체(48%), 파충류 1종 1개체(4%)가 접수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구조되어 접수된 동물은 고라니로 13개체 였습니다.

2.구조원인 분석.(2016년 11월)



11월에 구조된 동물들의 사고 원인들도 다양했지만 차량과의 충돌이 10개체(26%)로 많았습니다.

3.구조 지역 현황.(2016년 11월)



11월에는 아산시와 천안시에서 각각 6개체로 가장 많이 구조되어 접수되었습니다.

4.구조 및 치료 결과.(2016년 11월)


11월 한 달 동안 구조되어 충남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접수된 동물은 총 39개체였으며 이중 7개체(18%)가 자연
로 돌아갔으며 12개체(31%)는 현재 치료 및 재활 중에 있습니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 구조센터
진료수의사 장진호

2016년 11월 3일 목요일

새만금 매립공사로 절멸위기 처한 저어새

새의 부리는 참 다양합니다. 전 세계 9,50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진화의 과정에서 나름의 살길을 찾아 여러 방면으로 그 모습을 달리해 왔으며, 특히 서로간의 경쟁을 피하고자 먹이를 찾는 방법을 바꿔왔습니다. 시간대를 달리하거나 먹이 사냥터가 다르거나 혹은 먹이 자체가 다릅니다. 이런 먹이를 집어 들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무기를 찾아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리입니다

다양한 원인으로 구조된 어린 저어새들
(사진 출처 : 김영준)


날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새들은 이빨이나 턱과 같은 무거운 구조물을 머리에 두는 게 불합리하죠. 이 과정에서 부리를 얻고, 이빨은 내려두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뭉툭한 오리부리, 닭처럼 짧지만 뾰족한 부리, 흰꼬리수리처럼 거대하고 날카롭게 날이 선 휜 부리도 있죠. 드문 경우이긴 하나 부리가 위로 휜 경우도 있고 심지어 옆으로 휜 경우도 있습니다. 돌 밑의 먹이를 쉽게 뒤지기 위함입니다. 부리모양이 아예 놀부의 밥주걱처럼 생긴 녀석들도 있습니다. 바로 저어새류입니다. 주걱처럼 생신 부리를 물에 담가 이리저리 저어 먹이를 잡는다고 해서 저어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어로는 부리가 숟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스푼빌(spoonbill)이라고 합니다



저어새류는 전 세계 6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여름철새로 저어새, 겨울철새로 노랑부리저어새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중 저어새는 체중 2kg도 되지 않은 중형 조류로서, 멸종위기1, 천연기념물이며 세계자연보전연맹 지정 절멸위기종으로 지정된 종입니다. 전 세계 약 2,700여 마리만 남은 상태이며, 이중 성체는 고작 1,600여 마리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화도와 인천 송도, 영종도 그리고 새만금 인근의 작은 섬들에 찾아와 4-5월에 번식합니다. 10-11월경에 중국 남부해안, 대만과 홍콩, 베트남 등지까지 이동하여 월동을 하죠. 이렇게 먼 거리를 떠나기 전에 충분히 몸을 불려야 바다를 건너갈 수가 있습니다.

노랑부리저어새와 어린 저어새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김영준)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갈수록 어두워져가고 있습니다. 인천 송도갯벌은 간척사업으로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남동공단 유수지 안의 인공섬에서 매년 100여쌍이 넘게 번식하고 있으나 송도갯벌 매립으로 인해 먹이터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고, 도심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여전히 유수지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건강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태입니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도부터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보툴리즘 중독증으로 올해만 이곳에서 3마리 이상이 폐사했습니다. 2002년 대만에서 발생한 보툴리즘 중독에 의해 73마리(전 세계 개체군의 7%)가 폐사한 바 있어 우리나라에서의 집단폐사문제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어야 합니다

가을하늘을 가로지르는 어린 저어새. 날개깃 끝이 검은게 어린새의 특징
(사진 출처 : 김영준)


한편 전남 영광의 칠산도 인근에서 번식한 개체들은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서 마지막 체력을 보충합니다만 여기도 상황은 크게 어려워져만 갑니다. 전북 군산의 수라갯벌로 알려진 곳에서 벌어지는 새만금산업단지3공구 매립공사입니다. 새만금의 거의 모든 지역은 준설과 매립으로 인해 저어새가 버틸 수 있는 지역이 사라졌습니다. 2012년 자료에 비해 4년 만에 저어새 서식지 80%가 사라졌다는 점은 얼마나 시급한 상황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새만금의 거의 모든 지역은 준설과 매립으로 저어새가 머물 공간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몇몇의 갯벌은 고맙게도 저어새를 품어주고있다.

(사진 출처 : 김영준)


현재 수라갯벌만은 완만한 갯벌이 유지되고 있고 아직도 수심이 낮아 저어새 먹이터로서의 중요한 역할이 남아 있습니다. 군산경제자유구역 새만금산업지구 환경영향평가 환경 관련 사업계획에는 방수제 축조시 환경친화적인산업단지를 조성하도록 명기하고 있으나 멸종위기1급에 지정된 동물마저 쫓아내는 개발산업이 진행된다면 어떤 환경 친화적인 사업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인간 위주의 일방통행 개발방식이라고 한다면 굳이 멸종위기종을 지정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을까요? 조금만 더 그들을 위한 숨통을 틔워주는 아량을 우리는 만들어낼 수 없을까요

멸종이라는 절벽에 내몰리는 저어새와 같이 국제적 이동성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해당 경로국가의 모든 노력이 합쳐져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의 갯벌 보전은 어쩌면 지구적 가치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의 갯벌 보전은 어쩌면,
지구적 가치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


작성자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김영준

2016년 10월 야생동물 구조(치료) 결과 분석

1.종별 개체수 분석.(2016년 10월)



10월에는 총 50마리의 야생동물이 구조되어 접수 되었습니다. 포유류 5종 25개체(50%),조류 15종 25개체(50%)가 접수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구조되어 접수된 동물은 고라니로 14개체 였습니다.

2.구조원인 분석.(2016년 10월)



10월에 구조된 동물들의 사고 원인들도 다양했지만 전선 및 건물과의 충돌, 차량과의 충돌이 각각 15개체(30%)로 많았습니다.

3.구조 지역 현황.(2016년 10월)



10월에는 당진시에서 9개체로 가장 많이 구조되어 접수되었습니다.

4.구조 및 치료 결과.(2016년 10월)



10월 한 달 동안 구조되어 충남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접수된 동물은 총 50개체였으며 이중 4개체(8%)가 자연
로 돌아갔으며 13개체(26%)는 현재 치료 및 재활 중에 있습니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진료수의사 장진호

2016년 10월 23일 일요일

야생동물과의 공존, 그 어려운 딜레마에 대하여

삵이 덫에 걸렸다. 그것도 창애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덫에 말이다.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에 해당해 보호받아야 하는 삵이 왜 이런 덫에 걸리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양잇과 야생동물 '삵'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람이 덫이나 총을 이용해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경우는 대게 이러하다. 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얻기 위해, 근거 없는 보신문화로 야생동물을 섭취하기 위해, 연구/전시/사육의 목적이 있을 경우, 사냥을 취미로 삼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동물을 혐오하기 때문에가 그 이유일 수 있겠다. 그리고 하나 더, 동물이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피해를 끼치거나 생명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삵이 덫에 걸린 곳은 어느 양계 농가였다. 요 며칠 녀석이 양계장에 침입해 닭을 물어갔다. 물어간 한, 두 마리 닭이 피해의 전부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일반적으로 양계농가는 닭을 좁은 공간에서 집단으로 밀집사육 한다. 삵이나 수리부엉이 같은 포식자가 닭을 노리고 양계장에 들어오면 놀란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폐사하거나 포식자를 피해 무리지어 다니다가 넘어져 밟히거나 서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폐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닭을 사육하는 농장 주인에게는 꽤나 큰 경제적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침입자로 인해 폐사한 양계장의 닭

크고, 작은 피해가 반복되자 농장 주인은 침입하는 녀석을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덫을 구매해 양계장에 드나드는 길목에 설치해두었고, 삵은 이 덫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걸리게 된 것이다. 자신과 닭에게 피해를 주는 삵을 잡는데 성공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전에 막상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녀석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구조센터에 구조를 요청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삵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덫에 걸린 뒷다리는 잘려나가기 직전이었고 상처부위엔 파리가 들끓으며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덫에 걸린 뒤 풀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다치게 되었는지 오른쪽 눈이 심하게 부어있기도 했다. 덫을 제거하고 녀석을 구조하기 위해 다가갔지만 녀석은 무척이나 예민해진 상태였다. 사람에 의해 덫에 걸렸으니 사람이 그리도 두려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덫에 걸린 삵의 모습. 다리가 거의 절단되기 직전임을 확인할 수 있다.





녀석을 포획하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던 정작 덫을 설치했던 양계장 주인분의 표정에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마치 자신이 덫을 설치한 걸 후회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럴 수밖에,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생명체를 지켜보는 것이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양계장 주인의 선택을 쉽사리 비난하는 건 문제가 있다. 우리는 양계장 주인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애지중지 기른 닭들이 예기치 못하게 죽어나갈 때의 심정이 오죽 화나고 안타까웠을까? 특히나 그에겐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과 방법이 잘못되었다.

검사와 치료를 위해 마취 중인 삵의 모습

 
서로를 가해질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없었을까?
 
포식자가 양계장에 침입하는 것이 확인된 시점에서 가장 우선 시 해야 하는 것은 침입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양계장을 보수하거나 외벽을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침입하는 동물을 포획해 처리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시간이 지나 또 다른 동물이 양계장에 나타나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나아가 만약 포획을 시도한다면, 덫의 선택에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창애는 동물이 덫의 일부분을 밟으면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부분이 콱! 하고 맞물려 동물의 신체를 물게 되는 구조를 지녔다. 이 덫에 동물이 걸리게 되면 피부와 근육의 손상, 골절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신경이 손상되거나 절단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결국 다리는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덫의 종류는 다양하다. 창애나 올무처럼 신체 일부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덫이 있는 반면, 포획 틀과 같이 조금은 더 안전하게 잡을 수 있는 덫도 있다. 만약 이러한 덫을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안전하게 포획해서 양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삵에게 살기 적합한 환경을 찾아 풀어주어 서로가 받는 피해를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덫'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바로 이 '창애'일 것이다

결국 삵은 다리를 절단해야했다. 덫이 너무 깊게 파고들어 이미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구조센터에 머물면서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오랫동안 평가받아야 했다. 그렇게 약 3개월이 흘러 삵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비록 다리를 잃었지만, 녀석이 쌓던 삶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양계장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이다.

동물이 사용할 수 없는 신체를 지니고 있는 것은 큰 위험부담이 될 수 있다.
추가적인 감염의 위험과 장애를 극복하는 보정기구 등의 사용이 제한적이기 때문 


야생동물이 왜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경우가 양계장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유해 야생동물로 알려진 고라니나 멧돼지, 까치와 같은 동물들이 밭에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라니나 멧돼지의 경우 이동을 하는 도중에 저도 모르게 도심이나 민가에 진입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후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수많은 사람과 무섭게 내달리는 자동차, 소음, 불빛에 의해 놀라 극도의 흥분상태가 된다. 흥분하니 난폭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고, 덩달아 사람들도 놀라거나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난폭함은 사실 그들에겐 살고 싶다는 표현이자 절박한 저항의 수단이다.
그 때문일까? 이런 유해 야생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피해만 끼치고, 난폭하기 까지 한 동물이라고. 때문에 무분별하게 잡아 없애고, 어떠한 가학적 처치를 가해도 상관없는 존재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해도 아무렴 상관없는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밀렵으로 올무에 걸려있는 멧돼지를 구조하기 위해 마취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출처 : 김영준)


그렇다고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생존권 만큼이나 중요하게 헤아려야한다. 동물의 접근을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만을 불러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물들이 꺼려하는 초음파를 발생시키거나 포식자의 소리, 배설물을 농장 부근에 뿌려두는 방법, 전기 목책, 폭음탄 등 이미 시행되고 있는 예방의 방법도 다양하다. 물론 필요하다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직접 포획하는 방법도 사용해야 하겠지만, 사전에 피해의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예방의 노력을 우선적으로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정성껏 기른 농작물이 야생동물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피해 당사자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농작물의 생산자와 야생동물의 갈등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농작물을 소비하는 우리와도 뗄 수 없는 문제이다. 피해를 겪는 농장에 대한 예방책 지원,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에 걸맞은 투명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먹을 농작물의 가격이 다소 상승할 수밖에 없다면, 이를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심도 갖춰야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되어왔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들에게 양계장이나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들이 행한 것이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야생동물이 사람들의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단지 그들은 그들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 본문에서 다룬  삵의 이야기는 2012년에 발생한 사례입니다.

2016년 10월 7일 금요일

멸종이라는 벼랑 끝, 그 위태로운 이야기

전 세계적으로 아주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이 있다.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냐면, 전 세계에 겨우 수백 마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새가, 우리나라에도 모습을 나타낸다. ‘넓적부리도요라는 새가 그 주인공이다영명은 Spoon-billed Sandpiper, 학명은 Calidris pygmaea속명의 Calidris는 갈색의 얼룩이 있는 물새라는 뜻이고종명의 pygmaea는 작다는 뜻이다. 작은 얼룩물새라는 의미일까실제로 넓적부리도요는 작고 앙증맞은 외모에 넓적한 숟가락 모양의 부리를 지니고 있다.

넓적부리도요의 생김새
(사진 출처 김봉균)


형태
아마 가장 큰 특징은 숟가락처럼 생긴 부리일 것이다. 러시아 북동부에서 번식하며, 동남아에서 겨울을 난다. 우리나라는 이동과정 중 거치는 중간기착지다. 다 큰 새는 14~15정도이며, 번식철에는 머리와 목은 적갈색, 가슴에는 짙은 적갈색의 세로반점이 있다. 배는 흰색, 다리는 검은 색이다. 비번식깃은 붉은색 깃이 거의 빠지고 회갈색으로 변한다. 날개는 9.8~10, 부리는 19~24, 부리 끝 넓이는 10~12, 부척은 19~22, 꽁지깃은 37~38정도다.

넓적부리도요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진
(사진 출처 김봉균)


조류는 계절에 따라 깃갈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아는 원앙 수컷도 비번식기에는 암컷과 비슷한 색과 모양을 가진다. 이렇듯 생태적, 계절적 변이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할 수 있는 일반인들에게 종을 동정하는 것은 좀 더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넓적부리도요의 번식기와 비번식기 차이 비교
(사진 출처 : 좌 - 김봉균 / 우 - Martin J McGill)


분포와 서식지
러시아 캄챠카반도와 추코츠크반도의 연안에서 번식한다. 5월 말에서 6월 초에 러시아에 도달한 후 민물호수 인근의 풀밭에서 6-7월에 번식한다. 19-23일 후 부화하며, 태어난 후 바로 스스로 먹이를 먹는다. 새끼들은 주로 아비새가 돌보고, 어미새는 거의 부화 직후 바로 남쪽으로 떠난다. 20일간 지난 후 어린 새들은 아비새로부터 독립한다. 북한, 한국, 일본과 중국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으로 약 8,000를 이동하며,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 버마, 태국,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 반도와 같은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 월동한다.

넓적부리도요의 세계적 분포와 이동
(사진출처 : http://www.wildlifeextra.com)


먹이활동
머리를 숙이고 앞으로 걸어가며 넓적한 부리를 좌우로 움직여 갯벌에 서식하는 수서곤충을 찾아 먹는다. 도요물떼새는 부리의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 장소에서 먹이를 먹는데 넓적부리도요는 길지 않은 부리로 인해 아주 얕은 물가나 물이 빠진 갯벌에서 주로 먹이활동을 한다.

넓적한 부리를 이용해 독특한 방법으로 먹이를 찾는 넓적부리도요
(사진 출처 김봉균)
 

현 상황
전 세계에 천여 마리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은 번식지의 서식지 소실과 더불어 이동경로 및 월동지의 갯벌 매립과 관련된다. 가장 중요한 이동경로 서식지인 한국의 새만금지역은 이미 물막이 공사가 끝나 치명적인 위협요인이 되었다. 장기 원격추적기술로 확인한 연구 결과 중국, 한국, 북한의 주요 서식지 중 이미 65%가 간척으로 사라졌다. 2010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통 조류사냥꾼에 의한 집중적인 사냥이 감소의 일차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도 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의 최종 완료를 알리는 모습. 이러한 간척사업으로 
넓적부리도요와 갯벌, 습지를 이용하는 동물의 서식지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국농어촌공사)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는 이전에는 위기단계로 평가하였으나 너무 빠르게 개체군이 몰락하고 있어, 2008년부터는 위급(CR, Critically Endangered, - 야생에서 절멸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음)단계로 재조정하였다. 2009-2010년 센서스에서는 120~200 번식쌍(전체 약 500~800개체)만이 남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2002년도 센서스와 비교할 때 88%의 감소를 의미하며 매년 26%의 감소가 발생할 정도로 치명적인 상황이다. 만경강 및 동진강 하구의 새만금 간척사업은 중간경유지를 없앤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으며, 버마에서의 사냥도 매우 심각한 위협요인이다. 월동지에서는 밀렵에 의해 어린 개체들이 죽고 있다. 매년 태어난 새끼들 중 오직 0.6마리만 살아남는 상황이다. 그 결과 남아있는 번식가능 개체군 역시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번식은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대로 방치될 경우 5~15년 이내에 멸종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넓적부리도요의 다리에 유색플래그와 가락지가 붙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넓적부리도요의 생활사, 이동경로 등을 파악해 보호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사진 출처 김봉균)


인공증식 노력
201111월 영국 슬림브리지 인근의 야생조류와 습지 신탁(Wildfowl and Wetlands Trust, WWT)에서는 13마리의 넓적부리도요를 대상으로 한 번식프로그램(Head-Starting)이 시작되었다. 이는 201111월 러시아 북동부의 추콧카 툰드라 지역에서 수집된 알로서 모스크바동물원에서 부화 후 60일까지 보육한 후 영국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야생에서 알을 채집할 경우 어미들은 보통 이차 산란을 실시하므로 매우 효과적인 보전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러시아 추콧카에서도 인공부화 및 육추 후 방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2년 육추된 후 방생한 암컷이 2014년 러시아 번식지에서 산란을 위해 도래한 것이 최초로 확인된 바 있다.

넓적부리도요의 멸종을 막기 위한 번식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사진 출처 : Wildfowl and Wetlands Trust, WWT)


우리나라에서는 충남의 작은 섬에서 그나마 몇 마리가 관찰되고 있다. 새만금 지역과 같은 갯벌지역은 남반구에서 북극 번식지까지 왕복 15,000~20,000를 오가는 도요물떼새들에게 가장 중요한 중간기착지였다. 이동성 조류의 보전을 위해서는 책임을 가져야 하는 국가들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중간 기착지는 고속도로 상의 주유소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주유소가 없다면 결국 도착하지 못하고 고속도로 상에서 차는 멈출 것이다

정말 아쉬운 것은 따로 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런 동물이 매년 우리나라에도 머문다는 사실 역시 까맣게 모른다는 점이다
야생생물의 보전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함이 아니다. 생물과 공존을 해야 하는 후세대를 위한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인 것이다. 도도새가 그러했고, 나그네비둘기가 없어졌던 것처럼 이 작은 새를 또다시 없애서는 안 된다.

멸종이라는 벼랑 끝에 서있는 넓적부리도요
(사진 출처 김봉균)




참고자료
http://www.saving-spoon-billed-sandpiper.com/
https://en.wikipedia.org/wiki/Spoon-billed_sandpiper
http://www.eaaflyway.net/decreasing-waterbi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