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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3일 일요일

야생동물과의 공존, 그 어려운 딜레마에 대하여

삵이 덫에 걸렸다. 그것도 ‘창애’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덫에 말이다.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에 해당해 보호받아야 하는 삵이 왜 이런 덫에 걸리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양잇과 야생동물 '삵'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사람이 덫이나 총을 이용해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경우는 대게 이러하다. 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얻기 위해, 근거 없는 보신문화로 야생동물을 섭취하기 위해, 연구/전시/사육의 목적이 있을 경우, 사냥을 취미로 삼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동물을 혐오하기 때문에가 그 이유일 수 있겠다. 그리고 하나 더, 동물이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피해를 끼치거나 생명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삵이 덫에 걸린 곳은 어느 양계 농가였다. 요 며칠 녀석이 양계장에 침입해 닭을 물어갔다. 물어간 한, 두 마리 닭이 피해의 전부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일반적으로 양계농가는 닭을 좁은 공간에서 집단으로 밀집사육 한다. 삵이나 수리부엉이 같은 포식자가 닭을 노리고 양계장에 들어오면 놀란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폐사하거나 포식자를 피해 무리지어 다니다가 넘어져 밟히거나 서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폐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닭을 사육하는 농장 주인에게는 꽤나 큰 경제적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침입자로 인해 폐사한 양계장의 닭

크고, 작은 피해가 반복되자 농장 주인은 침입하는 녀석을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덫을 구매해 양계장에 드나드는 길목에 설치해두었고, 삵은 이 덫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걸리게 된 것이다. 자신과 닭에게 피해를 주는 삵을 잡는데 성공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전에 막상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녀석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구조센터에 구조를 요청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삵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덫에 걸린 뒷다리는 잘려나가기 직전이었고 상처부위엔 파리가 들끓으며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덫에 걸린 뒤 풀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다치게 되었는지 오른쪽 눈이 심하게 부어있기도 했다. 덫을 제거하고 녀석을 구조하기 위해 다가갔지만 녀석은 무척이나 예민해진 상태였다. 사람에 의해 덫에 걸렸으니 사람이 그리도 두려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덫에 걸린 삵의 모습. 다리가 거의 절단되기 직전임을 확인할 수 있다.





녀석을 포획하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던 정작 덫을 설치했던 양계장 주인분의 표정에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마치 자신이 덫을 설치한 걸 후회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럴 수밖에,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생명체를 지켜보는 것이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양계장 주인의 선택을 쉽사리 비난하는 건 문제가 있다. 우리는 양계장 주인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애지중지 기른 닭들이 예기치 못하게 죽어나갈 때의 심정이 오죽 화나고 안타까웠을까? 특히나 그에겐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과 방법이 잘못되었다.

검사와 치료를 위해 마취 중인 삵의 모습

 
서로를 가해질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없었을까?
 
포식자가 양계장에 침입하는 것이 확인된 시점에서 가장 우선 시 해야 하는 것은 침입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양계장을 보수하거나 외벽을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침입하는 동물을 포획해 처리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시간이 지나 또 다른 동물이 양계장에 나타나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나아가 만약 포획을 시도한다면, 덫의 선택에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창애는 동물이 덫의 일부분을 밟으면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부분이 콱! 하고 맞물려 동물의 신체를 물게 되는 구조를 지녔다. 이 덫에 동물이 걸리게 되면 피부와 근육의 손상, 골절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신경이 손상되거나 절단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결국 다리는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덫의 종류는 다양하다. 창애나 올무처럼 신체 일부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덫이 있는 반면, 포획 틀과 같이 조금은 더 안전하게 잡을 수 있는 덫도 있다. 만약 이러한 덫을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안전하게 포획해서 양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삵에게 살기 적합한 환경을 찾아 풀어주어 서로가 받는 피해를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덫'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바로 이 '창애'일 것이다

결국 삵은 다리를 절단해야했다. 덫이 너무 깊게 파고들어 이미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구조센터에 머물면서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오랫동안 평가받아야 했다. 그렇게 약 3개월이 흘러 삵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비록 다리를 잃었지만, 녀석이 쌓던 삶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양계장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이다.

동물이 사용할 수 없는 신체를 지니고 있는 것은 큰 위험부담이 될 수 있다.
추가적인 감염의 위험과 장애를 극복하는 보정기구 등의 사용이 제한적이기 때문 


야생동물이 왜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경우가 양계장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유해 야생동물로 알려진 고라니나 멧돼지, 까치와 같은 동물들이 밭에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라니나 멧돼지의 경우 이동을 하는 도중에 저도 모르게 도심이나 민가에 진입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후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수많은 사람과 무섭게 내달리는 자동차, 소음, 불빛에 의해 놀라 극도의 흥분상태가 된다. 흥분하니 난폭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고, 덩달아 사람들도 놀라거나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난폭함은 사실 그들에겐 살고 싶다는 표현이자 절박한 저항의 수단이다.
그 때문일까? 이런 유해 야생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피해만 끼치고, 난폭하기 까지 한 동물이라고. 때문에 무분별하게 잡아 없애고, 어떠한 가학적 처치를 가해도 상관없는 존재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해도 아무렴 상관없는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밀렵으로 올무에 걸려있는 멧돼지를 구조하기 위해 마취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출처 : 김영준)


그렇다고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생존권 만큼이나 중요하게 헤아려야한다. 동물의 접근을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만을 불러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물들이 꺼려하는 초음파를 발생시키거나 포식자의 소리, 배설물을 농장 부근에 뿌려두는 방법, 전기 목책, 폭음탄 등 이미 시행되고 있는 예방의 방법도 다양하다. 물론 필요하다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직접 포획하는 방법도 사용해야 하겠지만, 사전에 피해의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예방의 노력을 우선적으로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정성껏 기른 농작물이 야생동물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피해 당사자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농작물의 생산자와 야생동물의 갈등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농작물을 소비하는 우리와도 뗄 수 없는 문제이다. 피해를 겪는 농장에 대한 예방책 지원,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에 걸맞은 투명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먹을 농작물의 가격이 다소 상승할 수밖에 없다면, 이를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심도 갖춰야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되어왔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들에게 양계장이나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들이 행한 것이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야생동물이 사람들의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단지 그들은 그들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 본문에서 다룬  삵의 이야기는 2012년에 발생한 사례입니다.

2015년 9월 20일 일요일

당신의 개, 고양이는 어떠한가요...? 아니, 당신은 어떠한가요?

야생동물구조센터로 들어오는 동물들의 구조 원인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로드킬, 충돌, 중독, 밀렵, 미아, 납치, 감염, 등 수많은 요인들이 야생동물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많은 분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구조 원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어느 수리부엉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새 생명이 피어나는 시기에 어린 수리부엉이 한 개체가 어미를 잃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새끼 동물과 다를 바 없는 '미아'라는 원인입니다. 미아가 되어 구조되는 새끼 동물들은 신체적 문제까지는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허나 이 수리부엉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평상시 한쪽 날개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왼쪽 눈의 동공이 풀려있었으며 약간씩 고개가 흔들거리는(신경손상 의심) 상태였습니다. 구조 당시 몸에는 상처가 존재했습니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깊게 파여 있는 상처... 과연 무엇이 수리부엉이에게 상처를 입혔을까요?
 
(수리부엉이 '코리' 입니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찾으셨나요?)
 
 
혹시 눈치 채신 분이 있으실까요? 수리부엉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은 다름 아닌 '개' 였습니다. 그것도 사람이 기르는 '반려견'이 말이죠. 사고 당시의 수리부엉이는 아직 비행을 할 수 없는 새끼였고, 개의 갑작스러운 접근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치료가 끝난 후에도 손상된 신경의 문제와 심각한 시력저하로 인해 비행을 온전히 할 수 없는 장애를 지니게 되었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아가 되어 떠돌다가 개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했는지, 개에게 물린 후 도태되었는지의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습니다. 허나 확실한 건 개의 본능과 호기심이 한 생명의 평생을 바꿔놓았다는 점입니다.
 
(박새를 잡은 고양이, 고양이에게 죽임을 당한 박새... 
필자가 느끼기엔 둘 다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야생에서 살아가는 개나 길고양이들에 의해서 공격당했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생명체를 먹고 살아가기 위해, 즉 생존을 위해 행하여진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품에서 길러지는 반려견, 반려묘에 의해서도 많은 야생동물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개와, 고양이의 잘못일까요?
개나 고양이가 다른 생명체를 보고 호기심이나 사냥 본능을 갖는다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본능과 호기심을 제어시켜주지 않는 '사람' 에 있습니다.
 
상황1) 반려견을 산책을 시키던 사람이 인적 드문 넓은 초지를 발견했습니다. 넓은 초지에서 자신의 변려견이 마음껏 뛰어 놀기를 바라며 목줄을 풀어줍니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의 반려견이 어디론가 맹렬히 돌진합니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순진하고 착한 줄만 알았던 당신의 반려견 입에는 새 한마리가 물려있습니다.
상황2) 당신이 기르는 반려묘는 집안, 마당, 주변 골목까지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당신의 고양이는 밖을 쏘다니다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작은 새 한 마리를 물고 왔습니다.
상황 1+2)이를 목격한 당신들은 자신의 무신경함 덕분에 또 다른 생명이 생을 마감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애꿎은 반려동물을 혼내거나 그 모습을 사진 찍어 SNS에 올리고 많은 사람들과 그 상황을 기념하며 즐거워합니다.
 
위의 상황1, 상황2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기르는 개가 사냥에 성공했다며 신기해하거나, 고양이가 새를 물어와 자신에게 선물해 줬다며 기뻐했습니다. 자신의 무관심과 부주의로 인해 생명을 잃은 야생동물은 안중에도 없는 걸까요?
 
(야생 오리를 공격하려고 다가가고 있는 반려묘의 모습입니다.)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것 역시 어쩔 수 없는 본능이고, 먹이사슬이나 약육강식의 법칙에 해당하니 괜찮은 것 아니냐 라고요. 이 이야기가 반려동물에게도 해당되는 걸까요? 먹이사슬과 약육강식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라고 해서 무조건 성립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생태계 내에서 서로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의 개체군을 조절하는데 영향을 주고 오랜 기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생태계에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동물들의 사이에서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가정집에서 사료를 먹다가 밖에 나와 간혹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닌, 생태계교란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평생 아껴주고 보호해준다면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반려동물을 보호해주는 것 외에도 당신의 반려동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다수에 대한 배려와 그에 따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이웃주민에게도, 산책길에 만나는 다른 반려동물에게도, 야생동물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입니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다닐 때 목줄을 해야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기르는 반려동물이 다른 사람을 물거나 공격하게 되면 절대 안 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이 아닌 야생동물을 공격하는 것도 안 된다는 건 모르실까요?
 
(산책하던 개에게 공격당한 야생동물의 모습입니다. 
무심코 풀어주었던 목줄이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Wild Bird Fund, Inc.)
 
 
당신의 개, 고양이는 어떠한가요...? 먹지도 않을 야생동물을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공격하거나 괴롭히지는 않나요? 아니, 당신은 어떠한가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시지는 않았나요? 그 동안 그러셨다면 이제는 다시 생각해주세요.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건 당신의 반려동물이 아닌 당신이라는 것을.
 
(당신의 소중한 반려동물의 삶만큼 야생동물들의 삶도 소중합니다.)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