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인류가 출현한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늘어난 인구에 맞춰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농경지 역시도 광범위하게 확보해야했죠. 이 과정에서 서식지 침범, 농약 사용 등의 피해가 야생동물에게 고스란히 향하고 있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농경지 부근에는 어김없이 농수로가 존재합니다.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농사를 짓는데 있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구조물이지만, 이것이 야생동물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죠. 실제로 많은 야생동물이 농수로에 빠진 뒤 빠져나오지 못하고 고립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무려 3마리의 고라니가 농수로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진 출처 : SBS 뉴스)
현재의 농수로는 대부분 콘크리트로 건설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평탄한 바닥에 양쪽으로 우뚝 솟은 수직의 벽이 자리하고 있는 직사각형의 형태를 지닙니다. 각각의 목적에 따라 높이나 넓이, 길이 등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성인의 키보다 높은 경우도 쉽게 볼 수 있고, 농경지의 규모에 따라 수십km에 이르는 길이로 건설되어 있기도 하죠.
농수로에 가장 흔히 고립된 채 발견되는 동물은 '고라니'입니다. 이러한 농수로에 고립되면 여간해선 빠져나오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제 아무리 높은 점프를 할 수 있는 고라니에게도 2m에 달하는 높이를 뛰어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특히나 농수로는 폭이 좁아 도움닫기를 하기에도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뛰어넘어 나올 수 없다면 입구나 수문 등 외부와 이어지는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농수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야생동물에겐 이 역시도 쉽지 않겠지요. 심지어 이런 탈출구가 없는 농수로도 많고,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수문은 굳게 잠긴 채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어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는 셈인데,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구조를 받는다면 다행이겠지만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아마 서서히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농수로의 문제는 포유동물의 고립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양서, 파충류를 비롯한 동물의 이동을 막아 생태계를 단절시키는 부작용을 보이기도 하죠. 콘크리트 수로의 가파른 벽면은 다 자란 양서류에게도 넘어가기 힘든 장애물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수로 내의 고여 있는 물에 산란한 개구리의 알이나 올챙이는 정상적인 서식지와 다르게 비가 오면 무척이나 쉽게 쓸려 내려가는 문제도 있습니다.
양서, 파충류에게도 콘크리트 농수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덫과 같다. (사진 출처 : 네이버카페 '한국의 양서파충류' 솔이아빠님 게시글)
농수로에 고립된 고라니를 구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스스로 나갈 수 있게끔 탈출구가 있는 위치까지 몰아가던가, 그럴 수 없다면 포획해 밖으로 끄집어내는 방법입니다. 포획을 해야 하는 경우엔녀석을 쫓아 구석으로 몰아간 뒤, 여러 명이서 그물 등을 이용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포획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리가 진흙과 물에 잠기는 상황에서, 흥분해 도망가는 고라니를 쫓아간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매우 힘든 과정이지요. 게다가 자칫 놓치게 되면, 또 다시 수km를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때문에 부득이한 상황에서는 블로우건(마취총)을 이용해 마취를 시킨 후 포획해 구조하기도 합니다.
몰아서 나가게끔 유도해야 할까... 아니면 포획해야할까... ?
둘 다 너무 어렵고, 힘들겠지만...
이렇게 구조된 고라니는 추락 중 발생한 외상이나 골절 등이 있는지, 고립된 지 오래 되어서 심각한 기아, 탈수 증세를 보이지는 않는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합니다. 이상이 없다면 현장에서 바로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겠지만, 만약 이상이 있다면 구조센터로 데려가 충분한 치료를 진행하게 됩니다.
콘크리트 농수로가 지닌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흙 농수로 역시 콘크리트로 바꿔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흙 농수로의 경우 지하로 스며드는 물의 손실량이 높고, 바닥에 자라나는 수초로 인해 유속이 느려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죠. 하지만 이 역시 의문이 남습니다. 지하로 스며드는 물을 전부 다 손실되는 것이라고 단정 지어도 되는 것일지, 이러한 물 중 대다수의 양은 지하수로 흘러들어가 결국 다시 사용이 가능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 말이죠.
생태계를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설되는 콘크리트 농수로의 피해는 야생동물만의 것이 아닙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어린이의 경우에도 자칫 농수로에 떨어져 다치거나 고립될 가능성이 분명 존재합니다. 물론 농수로를 왜 천편일률적으로 이렇게 건설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해가 지속적으로 관찰이 되고 있다면 이제는 고민을 해봐야겠죠.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하면 줄여나갈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피해를 예방하고, 줄이기 위해선 농수로의 높이를 너무 높지 않게 하거나, 수로 곳곳에 외부로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나 탈출구를 일정한 거리마다 의무적으로 건설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을 포함한 공존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물론 그 과정에서 동물의 생태적 특성이나 2차 사고의 위험성 등에 대한 고민을 필히 수반해야 합니다. 배려라는 것은 누구 하나만 잘 살게 해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함, 즉 공존을 위한 시작이겠지요.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을 위한 공존의 대안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진 출처 : SBS 뉴스)
(이번에는 너구리에 대해서 폭넓게 알아보도록 하죠. 주된 자료는 위키피디아를 기본으로 하여 핀란드의 너구리 연구자인 Kaarina Kauhala 등이 연구한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일반 설명 너구리의 명칭 너구리의 학명은 Nyctereutes procyonoides입니다. 속명의 뜻은 라틴어로 Nukt- 는 밤을 뜻하고 ereutes는 방랑자를 뜻하죠. 즉 밤에 돌아다니는 방랑자인 셈입니다. 종명의 pro는 -전 혹은 '작은'을 뜻하며 cyon은 개를 뜻합니다. 현대 라틴어에서는 prokuon을 라쿤(raccoon, Procyon lotor)으로 지칭하기도 한답니다. 라쿤과 너구리는 매우 유사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동물들입니다. 결국 너구리의 학명에 뜻하는 것은 '밤에 돌아다니는 작은 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너구리의 모습. 다리가 무척 짧다.
북미의 라쿤 혹은 북미너구리다. 이름으로 인한 혼동은 생김새에서 기인한 바도 있다. 꼬리에 줄무늬가 있고 콧잔등이가 검으며, 특히 발가락은 모두 다섯개다.
너구리는 1속 1종으로만 남은 매우 독특한 동물이지요. 이 속(genus)에 한 종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너구리속은 약 9백만년 전에 출현했고 당시 다른 종도 존재했지만 대부분 홍적세(Pleistocene)를 넘기지 못하고 3백 4십만년 전부터 7십 8만년 전에 멸종을 했고 지금은 너구리만 남은 것입니다. 외국 자료를 보면 사냥이나 모피교역과 도시화, 유기동물들과 질병의 문제로 그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개체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너구리의 수렵을 허용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서의 주된 위협요인은 질병과 도로교통사고로 보입니다. 너구리의 형태
야산에서 발견된 너구리의 두개골, 개와는 다르게 두개골 중앙의 시상릉이 잘 발달해있다.
너구리의 두개골은 게잡이여우와 같은 남미산 여우류와 매우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두 종은 혈연적으로 거의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두개골은 작지만 단단하며, 약간 장방형입니다. 광대뼈인 권골궁(zygomatic arch)은 좁은 편이죠. 시상릉이라고, 두개골의 가장 위에 솟은 일종의 돌기가 매우 잘 발달해있습니다. 잡식성인 것은 반영하는 듯 송곳니와 열육치(carnassials)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고, 어금니는 평편하며, 상대적으로 긴 장관이 발달해 있답니다(다른 개과동물에 비해 1.5-2배 정도 김). 몸통은 긴 편이며, 이에 비해 다리는 짧아 잘 뛰지 못합니다. 총 길이는 45-71cm 정도이며, 꼬리는 몸체의 1/3 정도도 안되게 12-18cm 정도 길며, 뒷발의 발목관절 정도까지 내려오지만 땅에 끌지는 못합니다. 귀는 짧고 털에서 살짝 돌출된 정도이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체중은 계절에 따라 다른데 3월에는 3kg 정도였는데 8, 9월 정도에는 수컷의 경우 6.5-7kg에 이르기도 하며 어떤 개체들은 9-10kg을 넘기도 합니다. 일본과 러시아에서 수집된 표본들의 경우 중국에서 연구된 개체들보다 더 크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물론 사육장에서 잘못 관리하면 12kg이 넘어갈 정도로 피하지방이 축적되기도 합니다.
겨울털은 조밀한 속털과 더불어 120mm에 이를 만큼 길고 거칠며 두꺼운 겉털로 이루어집니다. 겨울털은 −25°C까지 내려가는 기후를 견디는데 필요합니다. 겉털(보호털)은 갈색 혹은 회갈색의 색이 들어있고, 끝은 검은색을 띱니다. 일반적으로 꼬리의 끝은 몸통보다 짙은 검은색으로 끝납니다. 어깨부위에서 앞다리로 검은색이 흘러 내려가며 가슴과 앞다리, 뒷다리는 윤기나는 검은색 털이 나 있습니다. 주둥이에는 짧은 털이 나 있으며 눈 쪽으로 갈수록 길고 많아집니다. 눈 아랫주위와 뺨에는 검은색 털이 나 있습니다. 여름털은 더 짧고 밝아집니다. 센터에서 관찰한 결과 5월에서 6월 사이에 솜털이 빠지더군요.
오소리는 학명이 Meles leucurus라고 하여 족제비과에 속하는 녀석입니다. 개와는 매우 다른 동물이죠. 영화에 나오는 울버린과 친척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족제비과 동물은 수달, 족제비, 쇠족제비, 담비와 오소리가 있습니다. 이중 오소리가 가장 너구리와 유사한 셈이죠. 형태적으로 보자면 오소리의 발가락은 앞뒤 모두 5개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너구리는 모두 4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딛죠. 오소리의 앞발톱은 나름 길어서 굴을 파는데 혹은 먹이를 찾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하지만 너구리 발톱은 일반적인 개 정도의 수준입니다. 오소리의 발바닥은 사람처럼 흰색에 가깝습니다만, 너구리의 발바닥은 검은색이죠. 물론 코도 오소리는 살구색에 가깝지만 너구리는 검습니다. 너구리의 겉털의 끝은 검은색인데 비해 오소리의 겉털 끝은 흰색이니 이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너구리의 귀도 큰 편은 아니지만 오소리보다는 큰 편입니다. 오소리의 귀는 매우 작습니다.
이 정도의 정보만 있어도 오소리와 너구리를 크게 혼동할 리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오소리는 주로 산간지역에 주로 서식하고 너구리는 산에서부터 저지대까지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어 사람들의 눈에 더 자주 띄는 것은 너구리겠죠.
윗쪽이 오소리의 뒷발이며, 아랫쪽은 너구리의 뒷발이다. 발볼의 색도 크게 차이가 나지만, 발가락의 수도 오소리는 5개, 너구리는 4개다.
꼬리 겉털의 색 차이를 볼 수 있다. 윗쪽이 너구리, 아래가 오소리다. 너구리의 겉털은 갈색이거나 검은색이지만, 오소리의 겉털은 흰색이 많다.
너구리의 습성 번식과 발달 교미철은 지역에 따라 이른 2월부터 4월까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너구리 새끼들이 신고되는 양상을 보면 대개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에 분만을 하는 것 같습니다. 너구리의 임신기간은 61-70일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판단해보면 2월, 3월이 주된 교미기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너구리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고, 가을 경에 쌍을 맺는답니다. 그럼 겨울을 같이 보내겠군요.하지만 사육 상태에 있는 수컷 너구리의 경우 4-5마리의 암컷과 관계를 유지한 것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양다리가 아닌 문어다리입니다. 짝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 간의 경쟁이 있는데, 이때는 짧게 다툼을 하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는 않는답니다. 짝짓기는 밤과 새벽에 이루어지며 평균 6-9분 정도랍니다. 19금이 되어버렸군요.
암컷의 발정은 몇 시간에서 6일까지 지속되며 5번 이상의 짝짓기가 그 기간에 이루어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임신이 되었더라도 20-24일 후에 다시 발정을 한답니다. 그래서 새끼들을 많이 낳는 것일까요? 60-70일에 이르는 평균 임신기간과 4-5월에 분만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8-10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지만 경우에 따라 15-16마리까지도 보고된 바 있답니다. 어마어마하죠? 우리나라에서도 10마리 넘게 낳는 사례도 종종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개과에서는 가장 많은 분만수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초임의 경우 임신 경험이 있는 개체에 비해 새끼를 적게 납니다. 수컷들은 새끼들을 키우는데 매우 활동적인 역할을 수행하죠. 이러한 수컷의 중요한 역할이 잘 드러난 사례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1928년 임신한 암컷 너구리만 야생에 풀었을 때 매우 제한적인 성공-실패겠죠-을 했지만, 1929년부터 1960년대까지 쌍으로 풀었을 때 매우 성공적이었고, 현재 유럽의 곳곳에 너구리들이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모피생산을 위한 너구리의 유럽 도입이 어떤 좋은 결과를 낳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끼들을 돌봄에 있어 수컷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어린 너구리가 구조되었다. 눈도 뜨지 못한 체 발견되었다. 때에 따라 10마리에 가까운 어린 개체들이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한다.
태어날 때 새끼의 체중은 60-110g 정도로 태어나며 눈은 못 뜨고, 짧고 조밀하며 부드러운 짙은 갈색털이 나 있습니다. 9-10일 만에 눈을 뜨고 그 후 14-16일에 이가 돋기 시작합니다. 다시 10일 정도 지나면 겉털이 나기 시작하는데 엉덩이와 어깨에서 시작합니다. 약 2주 정도가 더 지나면 눈 주위를 제외하고 색이 밝은 털이 나기 시작합니다. 포유기간(젖먹이는 기간)은 45-60일 정도가 됩니다. 생후 3주부터 1개월이 지나면 잡아온 먹이를 먹기 시작합니다만 이때에도 젖을 빨기는 합니다.약 4.5개월 정도(핀란드 연구에 따르면 5-7개월 정도가 소요된답니다) 지나게 되면 완전히 성장하는 단계로 접어들며, 어미로부터 독립하는 시기는 8월 말에서 10월 초입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린 개체들의 방랑 거리가 이때 굉장히 멀어지고 직선적으로 변해간답니다. 10월 경에는 거의 성체 크기로 자란 새끼들의 경우 짝을 찾기 시작하고 성 성숙은 8-10개월령이 되면 일어납니다. 수명의 경우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6-7년생이 야생에서 확인된 바 있으며, 사육 개체는 11년까지 생존한 바 있답니다.
동면 너구리는 개과동물들 중 동면을 하는 유일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겨울까지 피하지방을 18-23%, 복강지방을 3-5%까지 축적합니다. 이 정도 수준까지 체지방을 축적하지 못한 경우 겨울철에는 죽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겨울 동면시기에는 체내 대사율을 25%까지 떨어뜨리기도 한다는군요. 하지만 러시아의 우수리지방과 같은 곳은 겨울폭풍이 오는 시기에만 잠깐 동면을 한다고도 합니다. 겨울철에 적설량이 15-20cm까지 쌓이면 신체활동을 줄이고, 굴에서 150-200m 정도까지만 움직인다고 하는군요. 먹이가 더 풍부해지고 암컷의 발정이 시작될 무렵인 2월부터 활동성이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동면하는 개체가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위의 자료가 연구된 핀란드보다는 위도가 한참 낮아서 겨울철의 추위가 심하지도 않고, 적설량도 많지 않아 너구리의 활동을 제약할 조건이 그리 심하지 않고, 식물성 먹이가 다소 줄기는 할 터이지만, 여전히 먹이 구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한국의 너구리는 짧은 시간을 굴에서 쉬는 기간을 제외하고서는 동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먹이 너구리는 곤충부터, 설치류, 식충류, 양서파충류와 조류, 어류, 갑각류와 사체 등까지 먹는 잡식성이지요. 이러한 동물을 기회적 일반섭식종(opportunistic generalist)이라고 합니다. 기회가 닥치는 대로 아무 거나 잘 먹는다는 것이죠. 계절적으로 출현하는 먹이에 따라 주 먹이는 계속 바뀔 수 있답니다. 즉 환경적응력이 좋은 종인 셈이죠. 설치류들 중에서는 습지에 사는 너구리의 경우 밭쥐류(vole)가 중요 먹이종이지만 러시아의 Astrakhan 과 같은 평지에서는 저빌 등이 중요 먹이종이 된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등줄쥐가 매우 중요한 종입니다. 개구리는 너구리가 가장 잘 먹는 먹이 중 하나입니다. 러시아의 Voronezh에서는 일반적으로 먹는 양서류가 무당개구리임에 반하여 우크라이나에서는 European spadefoot toad를 주로 먹습니다. 너구리는 피부에서 독을 분비하는 두꺼비도 먹을 수가 있는데, 이는 침을 많이 분비하여 독을 희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국립생물자원관의 이정현 박사님의 관찰에 따르면 추적 중이던 두꺼비를 너구리가 포식했는데, 몸의 상반신은 남기는 습성을 보였답니다. 즉 목에 위치한 독샘의 존재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경험이 풍부한 너구리가 아니었는가 싶다는 의견입니다. 너구리는 또한 물새류와 참새류 혹은 소형 이주조류들도 포식합니다. 너구리가 이입된 지역에서는 멧닭이나 들꿩과 같은 조류를 포식하고, 우수리지역에서는 꿩을 잡아먹은 많은 사례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물가로 나온 물고기도 먹고 고립된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도 잡아먹습니다. 산란기에는 물고기를 거의 못 잡지만 봄철 해빙기에는 곧잘 물고기를 잡습니다. 남부서식지에 사는 너구리는 어린 거북류와 알도 먹습니다. 너구리가 잡아먹는 식충류에는 땃쥐류를 비롯하여 고슴도치와 두더지까지 포함됩니다. 우수리지역에서는 큰 두더지가 중요한 먹이자원이 될 만큼 중요하다네요. 먹이식물은 매우 다양한데, 구근류로부터 뿌리 줄기, 귀리, 수수, 옥수수, 견과류, 과일, 딸기, 포도, 멜론, 수박, 호박과 토마토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일본에서는 과실을 따먹기 위해 나무를 오르내리는 너구리가 관찰된 바도 있답니다. 계절적으로 식단을 바꾸기도 하는데, 늦가을과 겨울에는 거의 설치류나 사체에 의존하며 봄에는 과일과 곤충, 양서류를 많이 먹습니다. 여름에는 몇몇 설치류와 더불어 어린 조류와 과일, 곡류와 채소 등을 먹습니다.
가을철 잣이 많이 열리자 잣을 껍질째 깨서 먹은 배설물. 너구리는 은행도 먹는다.
너구리는 먹이를 먹은 후 배설할 때 공동화장실(분장)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민가 주변의 너구리 분장에 있는 똥을 살펴보면,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가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고춧가루랄지, 조기 머리뼈, 구운 오징어 심지어 비닐장갑 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을에는 은행을 먹기도 하는데 은행의 과육은 먹고 은행알은 그대로 배설한 배설물 덩어리들도 발견됩니다. 거미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위 안에 거미만 가득 찬 개체도 확인된 바 있죠. 일단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어두는 습성이라 위 안에 동일 먹이물질이 한 가득 들어있는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미꾸라지를 물속에서 잡아먹고 있는 너구리입니다.
소통 다른 개체들과 함께 소통을 위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공동화장실은 그 지역에 있는 다른 개체들이 함께 사용하는 명확한 장소이죠. 연구에 따르면 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각 가족 구성원은 물론 외부침입자들 간의 정보를 소통하는 목적으로 이용한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과정은 주로 후각적인 감각을 통해 동일종 내부에서 각 개체를 인식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답니다.
너구리가 일반적으로 만드는 공동화장실. 반복적으로 배설하기 때문에 오래된 배설물까지 볼 수 있다.
여우처럼 짖지는 않습니다. 대신 끙끙대는 신음소리 같은 소리도 내지요. 다양한 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매우 특징적인 소리는 없습니다. 다만 공격하거나 방어를 할 때는 매우 날카로운 "꺅-"하는 괴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으르렁대기도 하지만 심하게 소리가 크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후각/시각적 소통 외에도 다양한 자세를 통한 소통의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꼬리의 위치를 통해 우월성이나 발정의 준비 여부에 대해 나타내기도 하죠. 직접적인 접촉은 주로 부모 자식간, 부부간에서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 됩니다.
너구리의 행동권 연구에 따르면 최소볼록다각형법(Minimum Convex Polygon, 이하 MCP : 동물의 행동권 분석 방법)으로 분석을 해보니 100%로 분석할 때 평균 암컷의 경우 0.58±0.23㎢, 수컷은 0.98±0.65㎢ 정도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95% MCP를 적용했을 경우 수컷이 평균 0.63±0.69㎢, 암컷이 0.42±0.32㎢로서 차이가 많이 줄었습니다. 또한 암수 쌍이 함께 무선 추적된 두 쌍의 행동권은 95% MCP를 적용했을 경우 암수가 0.26㎢와 0.28㎢, 0.36㎢와 0.36㎢로서 같거나 차이가 매우 적었으며, 4계절 모두 짝을 지어 함께 지냈답니다(최태영 외 2006).
행동권 보통 암수 한쌍은 같은 행동권을 나누어 쓰고, 활동할 때도 가깝게 붙어 다닌다. 행동권이 서로 겹치는 이웃 너구리들과도 독특한 행동권 방어행위는 관찰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영토권 주장이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행동권은 다양하지만 0.028에서 2㎢(2.8-200ha) 수준이라고 한다. 일본너구리의 개체당 행동권은 111 ± 16.9 ha (95% kernel estimate) 혹은 160 ± 34.5ha (95% maximum convex polygon (MCP)) 정도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면적으로 따져 보고된 바에 따르면 일본너구리는 ha당 0.46-0.86 개체가 서식하며 유럽의 경우 ha당 0.0014에서 0.048가 서식한다고 하니 유럽 너구리의 밀도가 상당히 떨어지고 일본은 북적대며 산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유럽에서 너구리가 아직 충분하게 퍼지지 않은 영향이련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아종간의 차이이기도 하거니와 각 서식지 환경적 차이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하여 핀란드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균 9.5㎢를 사용하고 85%의 집중성을 가진 중심구역은 3.4㎢에 달했다고 합니다(Home range of the raccoon dog (Nyctereutes procyonoides) in southern Finland). 물론 핀란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춥다는 점을 고려한다다고 하더라도 이는 매우 넓은 수치입니다. 독일에서 연구된 바에 따르면 가을철의 경우 ㎢e당 3.4마리가 서식한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여우에 비해선 개방된 지역을 싫어하고, 울폐된 공간을 선호한다고 하는군요. 이는 사냥의 습성과 채식전략에 있어서 외형적인 차이와 먹이선호도의 차이 등으로 인해 여우와는 서식간섭이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일부 너구리는 이동거리가 20km를 넘어가기도 한다. 항상 멀리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20km 직경)
도입된 지역
모피 생산 증대를 위해 구소련을 통해 동유럽으로 이주된 너구리는 그 폭발적인 적응력과 식성, 번식능력과 동면능력 때문에 급격하게 퍼져나갔고, 광견병과 같은 질병의 주요 숙주로서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며, 먹이경쟁을 통해 여우같은 토종 포유동물과의 경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28-1958년 동안 모피생산과 개량을 위해 구소련의 76개 지역에 약 10,000여 마리의 N. p. ussuriensis 아종이 도입된 바 있습니다. 연해주의 일부 섬에 너구리를 이주시킨 것이 가장 처음 일인 듯 싶습니다. 1934년까지 너구리는 알타이, the northern Caucasus, 아르메니아, 키르키지아, Tatarstan, Kalinin, Penza와 Orenburg 지역 등 동부 유럽과 중앙아시아쪽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듬해 Leningradsky, Murmansk, Novosibirsk와 Bashkortostan으로도 도입이 되었지요. 하지만 Irkutsk, Novosibirsk, Trans-Baikaliya와 Altai 지역에서는 혹독한 추외와 먹잇감의 부족으로 인해 거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Caucasus의 산악지대와 중앙아시아, Moldova지역에서도 거의 생존이 어려웠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틱국가들과 동부유럽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국가 특히 Kalinin, Novgorod, Pskov와 Smolensk지역에서는 성공적이었고 중앙러시아에 해당하는 Moscow, Yaroslavl, Vologda, Gorkiy, Vladimir, Ryazan Oblasts 지역과 black soil belt로 알려진 Voronezh, Tambov, 그리고 Kursk, Volga 남부지역, 북부 Caucasus, Dagestan에서도 이주사업이 무척 성공하였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Poltava, Kherson 그리고 Lugansk지역에 가장 많은 너구리가 정착하게 되었다네요.
1948년, 35마리의 너구리가 라트비아로 도입되었고 이 개체군은 급격하게 성장하여 1960에는 공식적으로 4,210마리의 너구리가 잡히기도 했답니다.
이제 너구리는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 매우 흔한 동물이 되었고 세르비아, 프랑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덴마크 정부는 2015년도까지 번식 개체군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답니다. 핀란드에서는 너구리가 이주한 이후 영역을 확장시키는 속도를 보았더니 연간 약 40km 정도의 속도로 넓혀 나가더랍니다. 현재 여우보다 더 높은 밀도를 나타내는 지역도 있다는군요. 핀란드에서 연구된 바에 따르면 밀도회복율도 매우 뛰어난데, 1970-71년 수렵기에 818마리가 잡혔는데 그로부터 20년 후인 1990-91년 수렵기에는 약 75,000마리가 포획되었답니다. 놀랄만한 정착인 셈이죠.
개체군의 변동
너구리 연구가 많이 진행된 곳이 핀란드와 일본입니다. 개체군의 변동이라고 하면 동물수의 변동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동은 일반적으로 출산과 폐사, 다른 곳에서부터의 이입와 이출에 따라 결정됩니다. 출산과 이입은 먹이환경조건이 개선되면 늘어나는 것이고, 폐사와 이출은 먹이환경과 더불어 질병, 수확(수렵), 자연적 혹은 인위적 재난 (지속적인 서식지의 파괴나 도로의 건설 등)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핀란드 자료를 살펴보면 가을과실(핀란드에서는 주로 bilberry와 lingonberry)이 영향을 미친답니다. 들쥐의 수도 영향을 주는데 과실이 적게 열리는 북부권이 남부권에 비해 들쥐의 수가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들쥐보다는 열매나 과실이 너구리의 개체군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먹이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겠군요. 특히 밤이나 도토리, 은행 등과 같이 지방이 상대적으로 많은 열매들은 너구리들이 월동하는데 중요한 먹이식물 자원일겁니다. 가을에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어린 너구리들에게 겨울은 무서운 계절임은 틀림없고 이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가을과실이 매우 중요한 개체군 조절인자가 될 것입니다.
일본너구리 아종
일본너구리 아종은 우수리 아종에 비해 더 작은 송곳니와 두개골, 체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일본너구리 아종은 너구리와는 다른 종으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염색체 수와 행동습성, 체중의 차이를 들 수가 있다네요.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일본너구리 아종은 매우 다른 고립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염색체는 38개에 불과합니다. 이는 대륙에 위치한 또 다른 아종들과는 차이는 보이는데 대륙 아종들의 염색체 수는 54개 이며 유전적 차이는 한국과 일본 차이가 2.4%였지만, 같은 대륙에 속하는 한국-러시아 0.4%, 한국-중국 0.6%, 한국-베트남 0.6%의 수치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이 아닌 다른 지역의 너구리들과 일본너구리 아종을 비교해보아도 러시아-일본 2.4%, 중국-일본 2.5%, 베트남-일본 2.3% 수준으로 매우 다르게 나타난 셈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너구리를 별개종으로 구분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개과동물 전문가그룹에서는 2001년 9월 이 의견을 기각한 바 있습니다만 계속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쨌건 너구리는 한반도 혹은 사할린을 거쳐서 약 18,000-12,000년 전에 일본으로 유입되었고, 아시아 대륙에 비해 좀더 온난한 기후에서, 특히 겨울철 먹이확보가 용이한 측면이 있어 좀더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즉 지금도 일본너구리는 '다른 종'으로 분화(speciation)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조절인자 포식자
해외에서는 늑대가 주된 포식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너구리는 달리는 속도가 느리고, 굴을 파기는 하지만 이러한 특징들은 모두 늑대가 동시에 가지는 특징이어서 잡히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일부 다른 지역에서는 여우가 새끼 너구리를 잡아먹는다는 보고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늑대든 여우든 모두 사라진 동물들이어서 당분간은 이런 문제가 없겠습니다. 다만 수리부엉이는 충분히 어린 너구리들을 먹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돌아다니는 유기견 중 극도로 야생화된 야견은 너구리를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수렵철에는 사냥개들이 너구리를 재미삼아 죽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골에서는 풀어키우는 진도개가 수시로 너구리를 물고 오는 걸 보신 분들도 많습니다.
진도개가 잡은 너구리.
( 출처 : 대한민국 국견협회 )
로드킬
우리나라에서의 연구자료는 부족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로드킬에 의해 희생되는 중형포유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연간 110,000-370,000마리 정도가 도로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보고된 바 있으니 우리나라의 너구리 개체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인임은 분명할 듯 합니다.
도로가에서 너구리의 사체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질병과 기생충 너구리에게 제일 중요한 질병은 아마도 개선충증, 개홍역과 광견병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선충증(Scabies, Sarcoptic mange)은 Sarcoptes scabiei)가 원인체이고 감염된 동물과 접촉할 경우 사람에게도 발병 가능합니다. 굴 생활을 하는 너구리는 식구동물들에게 전면적으로 퍼질 가능성이 높고 건강한 개체라도 감염이 될 수 있습니다. 귀와 겨드랑이, 복부, 다리에서 시작되며 털이 심하게 빠지고 심한 가려움증, 표피박리, 만성피부염 등을 유발하고 체중감소도 일으키지요. 너무 피부병변이 심하므로 어떤 사람들은 너구리 에이즈라고도 부른답니다. 2차적 세균이나 진균감염을 일으키면 농포를 형성하는 등 난치성으로 전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감염되지만 생활사를 이어갈 수 없어서 증식하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없어지지만 한동안 가려움으로 고생을 좀 합니다. 우리나라 너구리에서 많이 보이며 특히 겨울철에 그 발생이 두드러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 보고에 의하면 일본의 너구리 폐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겨울은 너구리가 살아남기 가장 힘든 계절인만큼 몸의 면역능력이 떨어져 더욱 잘 발생할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선충에 감염이 되면 온몸의 털이 빠지고, 심각한 2차 세균감염과 저영양증, 저체온증에 빠져 폐사하게 된다. 조기에 발견한다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다.
개선충, Sarcoptic Mange, Sarcoptes scaibei 암컷 성체다
개홍역(Canine distemper)은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식육류 동물에서 넓게 발생하는데, 개를 비롯하여, 너구리, 여우, 늑대, 사자, 호랑이, 하이에나와 족제비 및 수달까지도 감염되는 질병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개홍역이라는 이름은 식육류홍역(Carnivore distemper)으로 질병이름을 바꾸자는 의견까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종합예방접종에 포함된 질병인데, 바이러스 질병이지요. 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초기 3~6일간은 체온이 올라가고 이 시기에는 눈꼽과 콧물이 많이 나오며 다소 침울해지고 식욕을 잃게 됩니다. 2차적인 세균감염에 의해 소화기계와 호흡기계에서 문제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기침과 콧물을 시작으로 기관지염이 발생하고 이것이 진행되면 폐렴이 되기도 합니다. 설사 등이 나타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문제가 완전히 진행되기 전에는 야생너구리에서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바이러스 증식이 신경계에서 나타나는 경우 발작과 침울을 동반한 근육경직이 나타나며 많은 경우 경련, 마비, 근진전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개홍역에 걸리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니 반드시 간이키트검사 등을 통해서 안전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광견병(Rabies)은 우리나라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너구리에게는 그냥 몇몇 동물이 감염되어 폐사하는 것이므로 너구리 개체군에 큰 영향을 직접적으로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개, 기타 가축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중보건 예방 상 매우 중요한 질병이며, 이 질병의 통제를 위해서는 먹이백신(미끼백신)을 사용함과 동시에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지역의 너구리를 대량 살처분하는 경우도 해외에서는 보고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2012년과 2013년에는 경기도 시화호에서도 광견병이 발생하였고, 너구리에서 광견병이 확인된 바 있어 우리나라에서 광견병 퇴치사업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견병에 걸린 너구리로 추정되는 개체의 침으로 감사한 결과 양성으로 판정되었다.
2006-2015년까지 유럽에서 너구리에 의해 발생한 광견병 사례. 광견병의 통제에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이처럼 야생동물의 도입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굉장히 뚜렷한 나라입니다. 봄에는 포근하고, 여름에는 덥고, 가을에는 서늘하며, 겨울은 춥습니다. 물론 지구온난화의 영향 등으로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진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각 계절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갈 정도로 각 계절의 특징이 뚜렷하죠. 아마 야생동물도 마찬가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다를 겁니다. 그렇다면,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물들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우선 겨울이 오기 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를 '월동준비' 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겨우내 사용할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해야하고, 동물들에게 해줘야할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것은 역시 '추위' 와 '눈' 이겠지요. 구조센터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바로 추위와 눈입니다. 다친 야생동물의 경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야생동물보다 추위를 버티는 능력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 자칫 치명적인 결과가 생길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해야 합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외부로 노출되는 부분을 깃털 속에 꽁꽁 묻어둔 채 잠을 청하는 황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첫 번째 방법!! 바로 은신처나 바닥재를 제공하는 것 입니다. 사실 은신처나 바닥재는 겨울 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제공해주는 것 입니다. 그러나 특히 겨울에는 조금 더 따뜻할 수 있는 재질로 바꿔주거나 자주 교체를 해주는 등 더 신경을 써야하죠.
겨울에 머무는 포유류들에게는 낙엽이 굉장히 많이 필요합니다. 계류장 내에 낙엽을 깔아놓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을 줄여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연환경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야생동물에게 익숙하고 안전하니까요.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센터 직원들은 낙엽을 마구 긁어모아옵니다. 잘 보관해두고 겨우내 요긴하게 사용하지요. 낙엽 이외에 두꺼운 담요 등을 추위를 피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겨우내 포유류 계류장의 바닥재로 사용할 낙엽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정도면 충~분히 겨울을 잘 보낼 수 있겠지요?
또 직접적으로 열을 제공해 추위를 줄여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열등이나 온열기 등을 계류장에 제공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추위를 줄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이야말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열'은 화상을 입을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죠. 계류장 내에 열등을 설치할 때에는 동물의 몸에 직접적으로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놓아줘야하고 특정한 위치에만 제공해 동물이 열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합니다. 너무 더우면 열등이 없는 시원한 곳에 가서 체온을 내리고, 다시 추워지면 스스로 열등 근처로 다가오게끔 말이죠.
추위에 약한 벌매가 열등 아래에 머물면서 체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열등을 제공해준다면 필히 계류장 내의 온도와 습도를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열등으로 인해 온도가 너무 높아지지는 않았는지, 너무 건조해지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해야하죠. 만약 너무 건조하다싶으면 물이 담긴 접시나 물에 적신 수건 등을 계류장 내에 놓아 조절해줄 수 있습니다.
온/습도계를 통해 주기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관리해야 합니다.
추위와 함께 겨울을 무섭게 만드는 것은 역시 '눈' 입니다. 눈이 흩날리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일단 쌓이기 시작하면 이보다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특히 야생동물에게는 눈이 큰 위협이 되기도 하니까요. 자연생태계에서 눈이 내리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맞지만 구조센터에게 눈은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닙니다.
일단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계류장의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충남센터의 경우 계류장 천장이 그물망으로 되어있는데, 눈이 쌓이면 너무 무거운 나머지 그물이 아래로 축 처저버립니다. 심하면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지요. 그럼 계류장에 머물고 있던 동물이 눈에 깔리거나 그물에 엉키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눈의 양을 확인하고 천장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늦은 밤에도 쉽사리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복히 내려앉은 눈이 지붕위에 쌓이고 쌓여 그 무게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저 눈을 열심히 치워야 합니다. 열심히...
천장에 눈이 쌓이는 문제 외에도 눈 자체가 계류장 전체를 덮어버리면 그곳에 머무는 동물들이 힘겨울 수 있습니다. 때문에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하지요. 충남센터의 경우 계류장 천장 중 일부는 완전히 덮여있어 눈이나 비가와도 맞지 않고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간이 없다면 몸이 젖어 체온이 떨어질 수 있으니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류장의 일부분에는 눈이 들이치지 않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동물이 눈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도 필요하고요.
물론 겨울이 구조센터의 동물들을 힘겹게만 만드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눈이 내리면 동물들에게도 특별하고 신선한 자극이 되니까요. 어떤 동물은 눈 위에 신나게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 놀기도하고, 또 어떤 동물은 눈을 먹어보거나 헤집어 놓은 등 기존과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왜 우리 사람도 그렇잖아요. 눈이 오면 괜시레 차가울걸 알면서도 만져보고 싶고, 발자국도 남겨보고 싶고...
너구리가 눈 속에 코를 파묻은 채 냄새를 맡았더니 코 주위에 눈이 묻었네요.
야행성인 삵은 보통 낮에는 은신처에 몸을 숨기고, 밤이 되면 나와 활동합니다. 하지만 눈이 오니 낮에도 나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눈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구조센터에 머무는 동물에게 겨울은 춥고 고달플 것 입니다. 가뜩이나 상처입고 아픈데 추위가 몰아치니 말이죠. 그건 야생에 살아가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이 척박한 환경에 가뜩이나 살아가기 어려운데 몰아치는 추위가 그들을 몰아세울 테니까요. 하지만 그들 역시 꿋꿋하게 이 겨울을 견뎌내고 힘차게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 올 테고, 조금 더 지나면 무더운 여름이오겠죠. 그러면 언제그랬냐는듯 또 다시 겨울을 기다리겠죠? 마치 우리 처럼요.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