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밭그물 |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보니, 저 멀리 밭그물에 무언가 얽힌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천연기념물 제323-4호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에 지정된 법정보호종 맹금류 '새매'였다. 녀석은 거꾸로 매달린 채 입을 벌리고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법정보호종 새매가 밭그물에 몸이 얽힌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다. |
밭그물에 걸린 새매를 구조하는 모습
녀석을 구조한 후 주변을 살펴보았다. 밭그물은 약 100m가 조금 넘을만한 길이로 과수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거리의 그물에서 법정보호종 맹금류 3구, 까치/물까치를 비롯한 참새목 조류 6구, 그렇게 총 9구의 사체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작 100m의 밭그물을 딱 한 번 관찰했을 뿐인데, 살아있는 새매까지 총 10마리의 새가 걸려 있는걸로 보아 잠재적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이 이와 같은 피해를 겪을지 예상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해당그물은 너무 얇아 시안성이 좋지 않았다. 사람에게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물며 그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새들에겐 몸이 엉키고 나서야 장애물이 있었다고 인식할 정도가 아닐까.
또 다른 새매는 이미 명을 달리한 상황이었다. |
그물에 걸린 채 죽은 새들의 모습은 처참하기를 넘어서 섬뜩했다. 이미 명을 다한 새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넘어서 사체를 먹기 위해 접근할지 모를 또 다른 야생동물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실제로 그랬을 수 있다. 과수를 먹기 위해 접근한 참색목 조류가 먼저 그물에 걸려 피해를 입고, 이후 이 새들을 먹이원으로 생각한 상위 포식자가 접근했다가 미처 그물을 파악하지 못하고 엉켜버렸을 수 있다는 합리적 추측도 가능하다.
또한, 사체가 소비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할지 모를 질병의 전파까지도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사체는 자칫, 또 다른 2차 사고를 야기할지 모른다. |
밭그물은 기본적으로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아 농작물, 과수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설치한다. 하지만 해당 과수원에 설치된 밭그물은 사실상 그 명목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된 듯 한 모습으로 그물 곳곳이 찢어지거나 말려 올라가 침입 방지의 역할이 사실상 불가해보였다. 오히려 폐그물처럼 너저분하게 널려있어 불특정 다수의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과수피해를 우려하는 농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법정보호종의 야생동물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생물이 무차별적 피해를 겪고 있다면, 또 관리/감독의 소홀이나 더 이상 과수원을 운영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설치 목적과 역할이 유명무실하다면, 이 밭그물은 제거함이 마땅하다.
밭그물의 하단부가 거의 다 말려 올라가 사실 상 효용성이 없는 상태이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농작물 피해를 우려해 설치한 시설물에 대해 철거나 보수, 교체를 지도/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게 몇몇 관련부서의 입장이다. 사실상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폐그물이지만, 그마저도 철거를 권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물의 사용 및 선택에 부분적 제한을 마련하거나,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점검 혹은 신고에 따라 적어도 폐밭그물의 철거나 수거를 진행할 수 있다면, 농민들에게 관련 내용을 주기적으로 교육해 권고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현재로서는 농민들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물의 두께를 굵은 것으로 사용해 시안성을 높여 야생동물이 쉽게 그물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거나 부드러운 재질을 이용해 신체가 걸리더라도 조금은 더 쉽게 빠져나가고, 신체에 손상이 덜 가해지도록 배려하는 것. 그리고 밭그물의 필요가 없어지면 깨끗하게 철거해 불필요한 희생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이다.
밭그물의 설치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야생동물로 인해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 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이동권, 생존권 만큼이나 중요하게 헤아려야한다. 밭그물을 설치한 농민을 탓하기 보다는 동물의 접근을 보다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를 불러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밭그물의 설치가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지, 자신의 농작물과 과수에 피해를 끼치는 야생동물을 죽여 없애고 분풀이를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피해를 겪는 농민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구조한 새매의 몸 구석구석에서 그물을 어렵게 풀어낼 수 있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피해 당사자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농작물의 생산자와 야생동물의 갈등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농작물을 소비하는 우리와도 결코 뗄 수 없는 문제다. 피해를 겪는 농장에 대한 예방책 지원,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에 걸맞는 투명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먹을 농작물의 가격이 다소 상승할 수밖에 없다면, 이를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심을 우리는 갖춰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되어왔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들에게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들이 행한 것이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야생동물이 사람들의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단지 그들은 그들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길... |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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