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아파트 단지 내 위치해있는 공원 산책로 바로 옆에 야생동물인 너구리가 덫에 걸려있었습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덫(창애)에 앞 다리가 걸린 채 시름하던 너구리의 모습. 덫에 걸리면 빠져나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
너구리가 덫에 걸려있다는 사실도 경악스러웠지만, 더욱 끔찍했던 건 이곳이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해있다는 것 입니다. 주변에는 여러 아파트 단지와 학교, 관공서, 큰 규모의 유치원도 자리해있었습니다. 심지어 바로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할 놀이터도 위치해있었죠. 만약 어린아이가 산책로 근처의 풀밭에서 놀다가 이 덫에 걸리기라도 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누가 왜 이런 덫을, 어디에 얼마나 더 설치했는지 파악할 수 없어 그 위험성은 계속해서 존재하는 상황이었죠. 특히나 아파트단지의 공원과 같은 불특정 다수가 자유로이 이용하는 장소였기에 그 위험성은 더욱 높을 수밖에요.
덫이 설치되어있는 위치는 어린이들도 충분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
바로 옆에는 놀이터가, 불과 200m 근처에는 큰 규모의 유치원이 위치해있습니다. |
특히나 이러한 덫은 누구나 쉽게 구매해 설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용의 소지 또한 높은 상황입니다. 사람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창애가 '쥐덫' 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판매되고 있으니까요.
추운 겨울, 굶주림에 지친 너구리가 사람의 거주지 주변까지 와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고, 북어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덫 근처에 다가왔을 겁니다. 그리고 덫에 걸리고 말았죠. |
보통 동물이 이러한 덫에 걸렸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더 큰 상처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발버둥 치면 칠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치료는 어려워지죠. 또 빼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빨이 부러지거나 빠지는 2차적인 상처를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상처부위에 감염까지 발생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에 치닫기도 하죠.
덫(창애)에 걸려 다리가 절단된 너구리의 모습 |
하지만 무척이나 다행스럽게도 이 너구리는 상당히 온전한 상태였습니다. 발가락의 일부만이 덫에 걸려있었고, 크게 발버둥치거나 물어뜯지 않아 상처도 심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너구리는 덫에 걸리면 빠져나가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다가 더 큰 상처를 얻곤 하는데 이 너구리는 그렇지 않은 것이 꽤나 의아했습니다. 구조 이후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니 좌측 발가락에 약간의 폐쇄골절이 있었고 피부 괴사가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이 역시도 기존에 덫에 걸린 다른 개체들과 비교한다면 천만다행인 수준이었죠.
덫에 걸렸던 부위의 검사와 치료를 진행하는 모습 |
좌측 발가락뼈에 골절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누가, 왜 아파트 단지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덫을 설치해놓았을까요?
이런 곳에서 야생동물을 밀렵하고자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 최근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유기동물이나 길고양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거나, 혐오하는 마음에 상해를 입힐 목적으로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 같습니다.
최근 뉴스만 봐도 독극물을 넣은 먹이를 이용해 길 위의 생명을 죽이거나 길고양이에게 화살을 쏘기도 하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명 '캣맘'이 폭행을 당하는 등의 '동물혐오'에 따른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가 덫이 설치되어있던 장소입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에 설치된 덫은 그 누구에게나 크나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위험이 되고 있었습니다. |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지금 너무도 끔찍한 생각을 지닌 누군가와 같은 시간, 장소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셈입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아닐 텐데 말이죠.
두려움에 사로잡힌 구조 당시의 너구리 |
아무리 덫에 걸린 것 치곤 상처가 심하지 않다고 해도 골절이 존재했기에 치료하는 과정은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렇게 너구리는 야생동물구조센터에 머물게 되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너구리는 이미 뱃속에 새 생명까지 품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점점 몸은 불어만 갔습니다. 분만 전까지 치료가 완벽하게 끝난다면 좋으련만,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의 시기는 속절없이 다가왔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 너구리의 모습입니다. |
결국 너구리는 이 곳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소중한 4마리의 새 생명을 출산했습니다. 이곳이 아닌, 그들의 삶에 있어 가장 적합한 야생에서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 너구리는 새끼를 낳자마자 여느 어미처럼 품어주고 보듬어주느라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미 너구리가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눈도 채 뜨지 못한 새끼너구리들과 함께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서로에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새끼 너구리들이 조금 더 자라 자연에 적응하기 수월해질 때 쯤 돌려보내주기로 하였죠.
어느 정도 자란 네 마리의 새끼 너구리입니다. 그래도 아직 많이 어린 상태죠. |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어미 너구리는 최선을 다해 새끼들을 길러냈고, 덕분에 새끼 너구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눈도 못뜨고 꼬물거리던 녀석들이 이제는 장난도 치고 사람을 보면 경계를 하는 늠름한 모습도 보여주었지요.
더불어 어미의 다리도 말끔히 나아졌습니다. 다행히 뼈도 잘 붙고 상처도 잘 아물었어요.
이 말인 즉, 너구리들이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다리의 상처가 다 아물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요?! |
방생에 앞서 숨겨진 먹이를 스스로 잘 찾아먹는가를 평가하기 위해 먹이를 땅에 묻어주었습니다. 과연 스스로 잘 찾아 먹었을까요? 아주 훌륭하게 잘 찾아먹더군요!
열심히 땅을 파 먹이를 찾아 먹는 새끼 너구리 |
야행성인 너구리의 성공적인 방생을 위해 날이 어두워진 후 방생을 진행했습니다.
어미가 구조센터에 들어온 지 약 5개월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계절도 변하고, 오가는 동물들도 많이 변해갔어요. 그 시간동안 가장 변한 것이 있다면 역시 이 너구리일 것 입니다. 혼자였던 삶이 다섯으로 늘어났으니까요. 그만큼 삶의 무게도 늘어났겠지만 지금까지 여러 난관을 잘 거쳐 왔기에 앞으로도 서로 의지하면서 잘 이겨낼 수 있겠죠!!
물론, 그들이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으려면 우리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나에게 다소 불편하다고 해서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생명경시가 지금과 같이 완연하다면 그들의 삶은 결코 나아질 수 없겠죠.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이타심, 공존을 위한 배려와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또 다시 사람이라는 덫에 걸려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또 다시 사람이라는 덫에 걸려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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