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야생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말이죠.
추락한 생명은 다름아닌 '흰꼬리수리' 였습니다. 흰꼬리수리는 국내에 도래하는 대형 수릿과 조류로, 세계에서 4번째로 크고 무거운 수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년 겨울 강 하구나, 드넓은 호수를 지니고 있는 지역에 도래하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이자 천연기념물 243-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입니다. 일단 성장을 하게 되면 자연생태계에서 Apex predator, 즉 천적이 없는 최상위포식자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역시 위험은 존재합니다. 바로 우리 '인간' 이지요.
당시 태어나 채 1년도 되지 않은 어린 상태였고,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도래했다가 누군가가 무책임하게 쏘아댄 총에 맞은 것이죠. 발견 당시 우측 척골 부근에 총알이 그대로 박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뼈도 부러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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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에 총알이 그대로 밝혀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골절을 확인할 수 있는 방사선 사진 |
그렇게 흰꼬리수리는 구조센터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후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도 흰꼬리수리가 다시 힘차게 날갯짓하는 모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마, 하늘을 날아다니던 그의 자유를 빼앗은 것이 바로 우리였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흰꼬리수리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 총구가 겨눠지던 혹독한 그날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점차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이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점차 건강을 되찾아갔고, 부러졌던 뼈도 붙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계류장 내에서 비행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흰꼬리수리는 겨울철새 입니다. 주로 러시아 등지에서 번식을 하고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것이죠. 그렇기에 자연으로 돌려보내 생존의 성공확률을 더 높여주기 위해선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계절인 겨울이 되어야 하는데, 구조되어 치료, 재활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기에는 남은 겨울이 너무 짧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흰꼬리수리는 조금 더 확실하게 재활의 과정을 거친 후 다시 돌아오는 겨울에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 치료를 받고 회복하여 계류장 내에서 재활훈련을 받고있는 흰꼬리수리 |
봄, 여름, 가을...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다시 겨울이 돌아왔습니다. 약 11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러야했던 흰꼬리수리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때가 된 것이죠. 모든 신체검사를 끝내고, 인식을 위한 금속가락지와 GPS 위치추적기를 부착했습니다. 추적기를 통해 특정 시간마다 흰꼬리수리가 머물고 있는 지점의 좌표가 수신되어 머물고 있는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한다면 흰꼬리수리가 머물고 있는 현장으로 직접 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니터링 할 수 있고, 적합한 서식환경을 연구하거나, 필요하다면 다시 재구조를 할 수도 있겠지요?
10월 31일. 그렇게 흰꼬리수리는 많은 이의 기쁨과 따뜻한 마음 속에 자연으로의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총에 맞아야했던, 약 1년 이라는 시간을 힘겨운 재활과 싸워야 했던 아픈 기억일랑 접어두고 이제는 편히 살아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저 날갯짓에 함께 날려보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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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1개월의 시간 동안 학수고대했을 자연으로의 방생 순간 |
흰꼬리수리가 자연으로 돌아간 후 그가 머물고 있는 좌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며, 특이사항이나 위험성 등을 점검했습니다. 떠나보냈다고 저희의 책임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2주일에 1번 정도는 현장으로 나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니터링도 실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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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S 추적장치를 통해 흰꼬리수리의 이동경로, 머문 환경 등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
방생장소 부근에서 약 3일간 머물던 흰꼬리수리는 이후 더 북상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흰꼬리수리는 어류, 조류, 포유류 등 다양한 먹이를 사냥하지만, 죽어있는 먹잇감 등도 곧 잘 먹는 기회포식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현장에 나가봤더니 비에 쫄딱 젖으면서까지 로드킬 된 고라니를 먹고 있기도 했으니까요.
| 방생 후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을 기록한 사진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안정화되면서 이제 조금은 마음을 놓을 찰나, 저희는 또 다시 비보를 접해야만 했습니다. 저희가 부착한 금속가락지와 GPS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고 있는, 그 흰꼬리수리가 구조되어 다시 저희한테 왔다는 것을요.
또 다시 누군가가 쏘아댄 총에 맞았는지, 전깃줄에 부딪혔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크게 달라질 것 없는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를 두 번 다치게 한 것 모두 우리의 책임이라는 점이죠. 상황은 이전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상처도 더 심했고 예후도 좋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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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에 맞았던 우측날개의 상완골이 부러져있는 모습 |
긴박하게 수술을 진행했고, 뼈의 위치를 맞춘 후 핀을 삽입해 정복하였지만 뼛조각이 유실된 문제 등으로 그 예후를 짐작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경우 오른쪽 날개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 역시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날개를 절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상 비행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 우측 날개 정복 수술을 받고 있는 흰꼬리수리 |
결국 흰꼬리수리는 또 다시 구조센터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1년여 간을 고생하고, 참아가면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겨우 100일 정도 살았을 뿐 입니다. 태어난 지 2년도 되지 않은 이 생명이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번에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 마저도 굉장히 요원하다는 것 이겠지요...
만약 다시는 하늘을 날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요? 평균 수명이 약 25년 정도인 흰꼬리수리입니다. 채 1년도 자연에서 살지 못하고, 남은 모든 기간을 자연을 그리워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지요.
야생에서의 삶도 생존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척박함 그 자체일 것 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쫓기고 쫓고, 경쟁하고 인내하며 살아야함은 분명하겠지요. 우리가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아도 이미 벼랑 끝에 몰려있는 그들의 삶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총구를 겨누고, 덫을 놓고, 쫓아내고 있지요.
날개가 있건 없건,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굉장히 많은 생명을 추락시킬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다 추락하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을 추락시킬까요? 이제는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줘야하지 않을까요?
| 모든 생명이 다 추락하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을 추락시킬 건가요? 이제는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줘야하지 않을까요? |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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