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를 물어다 교훈을 준 주인공 '제비' 이다. |
제비는 특이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보통의 야생동물이라면 자신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사람의 거주지 가까이에 살아가기를 꺼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제비는 완전히 정반대로 우리와 가까이, 그것도 놀랄 정도로 아주 가까이에서 살아간다.
이처럼 특이한 제비의 습성은 번식기에 두드러진다. 과거에 비해 제비가 많이 줄어들었다곤 하지만 전통시장이나 시골집 처마 밑의 제비둥지를 오늘날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거주지에 녀석들도 떡하니 거주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둥지 아래서 소란스레 떠들고 돌아다녀도 녀석들은 무던하게 새끼를 길러낸다.제비가 사람의 거주지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이라는 존재도 자신에겐 위협이 되는 천적일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다소 낮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댓가로 보다 더 위험한 다른 천적의 접근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다른 야생동물이 제비를 포식하기 위해 사람의 거주지 주변에 머물기에는 그 위험부담이 몹시 클 수밖에 없다.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제비는 하늘이나 습지, 수면 위를 날아다니며 날벌레를 잡아먹는다. 사람의 거주지 주변과 농경지가 즐비한 시골에는 이러한 날벌레가 많아 먹이자원 확보의 이점도 있을 것이다.
제비는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
하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제비에게 큰 위험이 드리운 것은 분명하다. 도시화, 산업화를 거치면서 주택의 구조와 토지를 이용하는 방식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멋들어지게 늘어진 처마를 지닌 과거의 주택은 네모반듯한 아파트와 빌딩으로 변해갔다. 또, 둥지를 짓기 위해 물어 나르던 진흙과 물 웅덩이, 습지는 어느새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였다. 이제 도심에서 제비를 만나기란, 우연을 기대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함께 살아가길 원하던 제비의 바람은 우리의 급속하고, 일방적인 변화로 빛바래가지만, 그래도 제비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길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시골집과 전통시장의 처마에 녀석들의 삶이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제비 역시 그리 순탄한 삶을 살아간다 말하긴 어렵다. 거주지와 농경지 부근의 날벌레를 잡아먹는 습성에 농약에 쉽게 노출되곤 한다. 축적된 농약에 중독을 겪거나 번식 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왕왕 관찰된다. 또, 이따금씩 함께 살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에 의해 번식에 실패하는 경우도 쉽게 목격된다.
둥지 안에 이물질을 넣어 번식을 방해하기도 한다. |
대게 이러하다. 자신이 살아가는 거주지에 녀석들의 배설물이나 흔적이 남는 것이 불편하거나 지저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둥지를 짓는 제비를 내쫓거나 방해하기도 하고, 애써 지어놓은 둥지를 임의로 떼어내기도 한다. 제비가 둥지를 틀면 대게 4~5개의 알을 낳는다. 부화한 새끼는 약 3주 정도가 지나면 둥지를 떠나는데, 여름 내 한 둥지에서 2번의 번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만약 그렇다면, 최대 2달 정도 부근에서 제비가 머문다는 뜻이 된다.
누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제비의 둥지를 떼어냈다. 그 안에는 다섯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
제비가 머물면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둥지 아래로 떨어지면서 쌓이는 배설물을 보는 것이 불편할 수 있고, 녀석들이 물고 온 먹이의 흔적이나 빠진 깃털 등이 주변에서 관찰되는 것 역시 불편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제비의 번식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역시 안타깝지만, 그러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비의 둥지 아래 배설물 받침대를 설치한 모습 쉽고도 어려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다. |
하지만 아무래도 아쉽다. 제비의 존재 자체가 싫고,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번식을 방해하는 것 말고도 제비로 인해 내가 받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다른 방법을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는데 말이다. 배설물이 떨어지는 것이 싫다면, 둥지 아래에 받침대를 놓아 바닥에 쌓이는 것을 막은 후 번식이 끝나면 받침대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제비가 남기는 흔적이 수백 번 진흙과 지푸라기를 물어 날라 겨우 작디작은 둥지를 만들어 새끼를 길러내는 제비의 노력보다 더 중요히 고려해야 할 사항일까?
제비는 수백 번 진흙과 지푸라기를 날라다 작디작은 둥지를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중한 생명이 탄생한다. |
물론, 필자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다수가 제비를 위하며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둥지에서 새끼가 떨어지거나, 둥지 자체가 무너져 내려 위기에 처한 제비 가족을 도와달라는 연락도 수차례 받았다.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가 만난 이들은 진심으로 제비를 걱정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새끼가 떨어진 것이라면, 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외상이나 자세이상 등이 없는지 충분히 관찰한 후 이상이 있다면 구조센터로, 이상이 없다면 다시 둥지로 넣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대게의 제비 둥지는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위치하기에 주변에서 쉽게 구하거나 빌릴 수 있는 사다리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둥지로 복귀시킬 수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테라스에 있던 제비의 둥지가 무너졌다. 재빨리 새끼들을 구조해 바구니에 넣어 주었다. 덕분에 새끼들은 흩어져 사라지지도, 천적에게 공격당하지도, 어미를 잃지도 않았다. |
가끔, 둥지 자체가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다치지 않았더라도, 둥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가 어려울 거라 단정 짓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둥지를 새로 달아주면 된다.
야생동물에 대해 널리 알려진 정보 중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새끼 동물을 사람이 만지면, 냄새가 배어 어미가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거짓에 가깝다. 특히나 둥지에서 떨어져 사람이 다시 올려주는 것 정도의 접촉이라면 어미가 새끼를 돌보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물론, 떨어진 후 시간이 오래 흘렀다면 어미가 이미 번식을 포기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류는 둥지의 변화 정도로 번식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위치가 심하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훼손된 둥지를 교체해주는 것 정도로 번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마음씨 좋은 카페 사장님 덕분에 제비 가족이 다시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아마도 박씨를 물어다주지 않을까? 행복이 그득 담긴 박씨 말이다. |
제비가 가장 선호하는 진흙을 이용해, 마치 그들이 만든 것처럼 정교하게 둥지를 만들어줄 필요는 없다. 우리 주변에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바구니나, 플라스틱 용기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어 둥지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면 상관없다. 둥지가 있던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비슷한 위치에 준비한 용기를 붙인 후 새끼를 넣어두면 끝이다. 그 전에 빗물이 고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용기 바닥에 배수 구멍을 작게 내주는 것이 좋고, 그 위에 적당한 수준으로 수건, 낙엽, 진흙 등의 바닥재를 깔아주면 보온이나 완충, 미끄러짐 방지에 효과적이다. 너무 무거워서 다시 떨어질 위험이 있거나, 내구성이 너무 약한 용기와 너무 깊거나 재질이 지나치게 미끄러워 새끼들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용기는 피하는 것이 좋다. 물론 교체된 둥지에서도 어미가 계속해서 새끼를 돌보는지 확인은 필수로 해야 한다.
사람이 새끼를 만졌어도, 낯설은 둥지가 생겨났어도 어미는 새끼를 쉬이 버리지 않는다. |
전래동화에서 등장한 제비는 우리에게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 중 하나를 일깨워줬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나와 다른 존재를 배려하며 살아가자는 교훈 말이다. 이제는 그 가치를 사소한 것이라도 나부터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그리고 그 가치를 실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 집, 가게 처마 밑에 제비의 배설물이 쌓이는 것을 이해하고, 떨어진 새끼 제비를 둥지에 올려주고, 둥지가 떨어졌다면 바구니나 그릇을 이용해 둥지를 만들어주는 노력 역시 소중한 가치의 실천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함께 살아가자고 내민 제비의 손을 잡아줄 따뜻한 마음,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함께 살아가자고 내민 제비의 손을 잡아줄 따뜻한 마음이 늘었났으면 좋겠다. |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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