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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0일 금요일

뼈의 말에 귀 기울이다


한 생명이 생을 다해 한 줌 흙이 되고 남는 것은 뼛조각뿐이다.
이걸 보면 뼈는 한 생명의 마지막 흔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흔적엔 그 생명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법의학에서 뼈는 굉장히 중요한 증거다. 한 사람의 생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뼈는 연령, 성별은 물론 지병, 직업, 가정환경에서 생활패턴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저명한 법인류학자이자 골격 전문가인 'Clyde Collins Snow'는 이렇게 말했다.
'뼈는 당신에게 말을 할 수 있다. 난해하게 들릴지 모르나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이번 글에선 뼈의 말을 들어 주인을 찾아보려 한다. 그 뼈가 독수리가 게워낸 토사물일지라도..

1월 13일 서산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구조됐다. 17-019 독수리의 방사선 사진에선 요골(radius), 척골(ulna)에서 골절과 탈구가 발견됐고 소낭과 소화기관에 한 가득 차있는 먹이도 볼 수 있었다.

골절된 요골(위)과 탈구된 척골(아래)

소낭에 무언가 가득 차있고(왼쪽) 소화 중인 새의 날개뼈(오른쪽)를 볼 수 있다.

마취하는 과정에서 동물이 구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낭에 가득 찬 먹이를 꺼내야 했다. 소낭에 자극을 줬더니 삼킨 먹이들을 게워냈고 마취가 끝난 뒤 한 차례 더 게워냈다. 처음 신고 당시 중독이 의심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토사물을 관찰했다. 

지난 1월 4일 중독으로 인해 구조된 '매'의 펠렛을 관찰한 결과 참새 크기의 조류의 골격과 볍씨가 나왔다. 이런 경우, 농약이 뿌려진 볍시를 먹고 폐사한 소형 조류를 매가 먹어 2차 중독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진흙더미 같던 토사물을 세척하니 낙엽, 나뭇가지와 수많은 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뼈의 주인은?

(왼쪽)훼손된 경추(목뼈), 경추의 크기를 측정해 뼈의 주인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오른쪽)큰기러기의 방사선 사진

(왼쪽)훼손된 대퇴골(넙다리뼈), 원으로 표시한 부분이 대퇴골의 머리로 고관절(엉덩관절)을 이루는 부분이다.

(오른쪽)가마우지의 고관절

(왼쪽)훼손된 흉추측 늑골(갈비뼈)

(오른쪽)조류의 늑골은 흉추(등뼈)에 붙은 흉추측 늑골(청록색)과 흉골(가슴뼈)에 붙은 흉골측 늑골(주황색)로 이뤄져 있다.

훼손된 흉골(가슴뼈), 위에서 관찰한 뼈들은 대부분의 새가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주인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이 뼈는 다르다. 길게 발달한 흉골을 보자마자 물새류 중 몇 종이 떠올랐다.

(왼쪽)수리부엉이의 방사선 사진, (오른쪽)큰회색머리아비의 방사선 사진
물새류 중 아비류, 논병아리류, 오리류, 기러기류, 고니류는 일반적인 새에 비해 흉골이 길게 발달했다.
뼈 주인의 후보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혀(파란색 원)와 설골(사각형), 기관(주황색 원)의 모습이다. 조류는 혀 내부에도 뼈를 가지고 있다.
사진에서 혀의 모양은 결정적인 단서다. 혀의 가장자리에 돌기가 나있는 형태는 오리, 기러기, 고니가 포함된 오리과 조류의 혀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수리가 큰 먹이를 잘 삼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날개뼈를 통째로 삼킬 줄은 몰랐다.

위의 뼈는 오른쪽 날개뼈로 척골(자뼈), 요골(노뼈), 완전골(손등뼈), 지골(손가락뼈)을 볼 수 있다.
날개뼈의 길이를 측정해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척골 : 159.1mm, 요골 : 150.2mm, 완전골 : 95.0mm
 오리과 중 개체수가 많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많이 구조되는 4종을 후보로 정했다.
그 중, 평균 길이가 비슷한 '큰기러기'가 가장 유력한 후보다.
이제 남은 내용물을 관찰해 '큰기러기'가 뼈의 주인인지 확인해 볼 것이다.

깃의 형태나 크기로 보아 날개나 꼬리깃이 아닌 몸통깃으로 보인다.
깃의 색은 변색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갈색에 가깝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큰기러기'의 깃 또한 전체적으로 갈색의 깃을 가진다.

위의 뼛조각들은 두개골을 이루는 뼈들이다.
큰기러기 두개골, (왼쪽)방형골(quadrate), (오른쪽)익상돌기(pterygoid)
뼛조각의 크기를 큰기러기 두개골과 비교한 결과 아주 작은 차이 밖에 나지 않았기에 뼈의 주인은 '큰기러기'인 것으로 판단했다. '큰기러기'의 경우 오리과 중 크기면에서 혼동할 만한 종이 없다. 뼈의 주인이 '큰기러기'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면에서 큰기러기와 흡사한 큰부리큰기러기를 제외한 얘기다.)
큰기러기 입장에선 기가 차겠다. 축하해줄 일도 아니지만..
아무튼 뼈의 주인, 큰기러기

독수리는 토사물의 냄새로 보나, 활력성으로 보나 중독된 개체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AI 비상사태인 요즘 외상이나 특별한 증상 없이 구조되는 조류는 구조센터를 잔뜩 긴장하게 만든다. 겉잡을 수 없는 AI로 인해 농가도 야생동물도 힘겨운 나날이다.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랄 뿐이고 조금이라도 추가 피해가 없길 또 바랄 뿐이다.

17-019 독수리도 17-009 매도 잘 견뎌내고 있다.
AI 문제야 그저 바랄 뿐이지만 이 녀석들이 돌아가는 건 우리의 몫이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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