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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7일 화요일

부러지고, 치이고, 구르고, 빠지고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삶의 무게

어느 한적한 도로에 고라니가 차에 치인 채 쓰러져있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다친 고라니가 계속 도로 위에 머물 경우, 다른 차량에 의한 추가적인 충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죠. 신고자에게 적어도 고라니를 갓길로 옮겨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녀석을 포획할 도구를 챙겨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신고자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고라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약간의 혈흔을 발견할 수 있었고, 적어도 고라니가 차에 치어 얼마 전까지 이곳에 있었을 거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어디에도 고라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아픈 몸을 이끌고서 어딘가로 이동했거나, 도착하기 전 또 다른 누군가가 고라니를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전자와 같은 이유를 고려해 주변에 고라니가 있는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도로 양쪽에는 작은 건물들과 농토가 곳곳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의심되는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고라니를 찾을 수 없었고, 심지어 흔적조차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마지막 남은 곳은 경사가 급해 위험할 수 있어 접근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보통의 고라니라면 뛰어넘기에 그리 높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차량에 치인 상태로 이 펜스를 넘어가긴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던 곳이었습니다. 

도로 옆 펜스 너머에 있는 농수로. 설마 고라니가 펜스를 뛰어넘어 저곳으로 갔을까요?


고라니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펜스를 넘어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경사를 따라 내려가니 농경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 부근에는 작은 수로가 존재했습니다. 무심코 수로를 살피는데, 아니나 다를까요... 수로 바닥에 고라니의 발자국이 떡하니 찍혀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수로 바닥에 찍혀있는 고라니의 발자국


이 고라니 발자국이 정말 우리가 찾던 녀석의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녀석의 것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만약 녀석이 맞다면 포획해 상태를 살피고, 필요하다면 구조센터로 데려가 치료를 해야 했죠. 수로 내부로 이어지는 발자국을 따라 들어가기로 합니다.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과정은 무엇보다 구조자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그만큼 중요한 것은 고라니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겠죠.


수로 내부의 구조가 어떨지는 들어가기 전엔 알 수 없습니다. 갑자기 물이 깊어질 수도 있고, 어두운 곳이니 내부의 구조물로 인한 사고 역시도 조심해야 하죠. 장화를 신고, 라이트를 들고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갑니다.

고라니의 발자국을 따라 수로 내부로 계속해서 들어갑니다.
부디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한참을 들어가자 인기척이 들려왔습니다. 라이트를 비춰보니 저 멀리에 고라니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녀석을 추적한 결과, 다행히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죠. 사고를 겪고, 낯선 환경에 놓여 예민해졌을 녀석을 포획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많이 지쳤는지 녀석은 그다지 힘껏 저항하지 못했고, 결국 포획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어두운 곳까지 다친 몸을 이끌고 힘겹게 와야 했던 녀석이 딱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수로 내에 갇혀있던 고라니를 포획하는 현장 영상입니다.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시죠!


아마 이러했을 겁니다. 차에 치이는 사고를 겪은 고라니는 불행 중 다행인지 충돌 자체가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현장을 제대로 벗어나는 것 까지는 어려웠겠죠. 도로 옆 펜스를 넘은 후 불시착하면서 경사로를 데구르르 굴러갔을 것 입니다. 그러다가 수로에 떨어졌고, 빠져나오기 위해 헤메던 중 자신도 모르게 더 깊이 들어가 어두운 곳에 갇혀버린 것이죠.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고라니가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녀석의 상태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오른쪽 뒷다리에 골절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다리의 골절은 차량충돌 사고를 겪은 최근이 아닌 조금 더 오래전에 생긴 상처였습니다. 살아가다가 어떠한 사고를 겪어 사실상 다리를 잃은 상황이었고, 세 다리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았는지 꽤나 수척하고 마른 상태였습니다.

다리를 다친 것도 서러운데... 또 차에 치이고, 경사로를 구르고, 수로에 빠지고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무엇보다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도 꼭 도로를 건너야만 했는지, 그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여실히 느껴져 안타까웠습니다. 

오늘의 사고 이전에 이미 오른쪽 뒷다리를 잃는 사고를 겪었던 고라니였습니다.


고라니는 조금 더 안정을 취한 후, 며칠 뒤 오래 전 부러진 다리를 제거하는 적출수술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고라니가 세 다리로 나마 다시금 힘차게 일어나 박차고 나가는 모습을 또 다시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보다 오늘 하루를 고단히 보냈을 고라니에게 많은 응원을 부탁드릴게요!!

어두웠던 터널을 지나 온 고라니의 삶에도 빛이 비추길 응원해주세요!!!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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