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보면 뼈는 한 생명의 마지막 흔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흔적엔 그 생명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법의학에서 뼈는 굉장히 중요한 증거다. 한 사람의 생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뼈는 연령, 성별은 물론 지병, 직업, 가정환경에서 생활패턴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저명한 법인류학자이자 골격 전문가인 'Clyde Collins Snow'는 이렇게 말했다.
'뼈는 당신에게 말을 할 수 있다. 난해하게 들릴지 모르나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이번 글에선 뼈의 말을 들어 주인을 찾아보려 한다. 그 뼈가 독수리가 게워낸 토사물일지라도..
1월 13일 서산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구조됐다. 17-019 독수리의 방사선 사진에선 요골(radius), 척골(ulna)에서 골절과 탈구가 발견됐고 소낭과 소화기관에 한 가득 차있는 먹이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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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절된 요골(위)과 탈구된 척골(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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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낭에 무언가 가득 차있고(왼쪽) 소화 중인 새의 날개뼈(오른쪽)를 볼 수 있다. |
마취하는 과정에서 동물이 구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낭에 가득 찬 먹이를 꺼내야 했다. 소낭에 자극을 줬더니 삼킨 먹이들을 게워냈고 마취가 끝난 뒤 한 차례 더 게워냈다. 처음 신고 당시 중독이 의심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토사물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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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4일 중독으로 인해 구조된 '매'의 펠렛을 관찰한 결과 참새 크기의 조류의 골격과 볍씨가 나왔다. 이런 경우, 농약이 뿌려진 볍시를 먹고 폐사한 소형 조류를 매가 먹어 2차 중독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진흙더미 같던 토사물을 세척하니 낙엽, 나뭇가지와 수많은 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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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뼈의 주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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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훼손된 경추(목뼈), 경추의 크기를 측정해 뼈의 주인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오른쪽)큰기러기의 방사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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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훼손된 대퇴골(넙다리뼈), 원으로 표시한 부분이 대퇴골의 머리로 고관절(엉덩관절)을 이루는 부분이다.
(오른쪽)가마우지의 고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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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훼손된 흉추측 늑골(갈비뼈)
(오른쪽)조류의 늑골은 흉추(등뼈)에 붙은 흉추측 늑골(청록색)과 흉골(가슴뼈)에 붙은 흉골측 늑골(주황색)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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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흉골(가슴뼈), 위에서 관찰한 뼈들은 대부분의 새가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주인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이 뼈는 다르다. 길게 발달한 흉골을 보자마자 물새류 중 몇 종이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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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수리부엉이의 방사선 사진, (오른쪽)큰회색머리아비의 방사선 사진
물새류 중 아비류, 논병아리류, 오리류, 기러기류, 고니류는 일반적인 새에 비해 흉골이 길게 발달했다.
뼈 주인의 후보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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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파란색 원)와 설골(사각형), 기관(주황색 원)의 모습이다. 조류는 혀 내부에도 뼈를 가지고 있다.
사진에서 혀의 모양은 결정적인 단서다. 혀의 가장자리에 돌기가 나있는 형태는 오리, 기러기, 고니가 포함된 오리과 조류의 혀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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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가 큰 먹이를 잘 삼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날개뼈를 통째로 삼킬 줄은 몰랐다.
위의 뼈는 오른쪽 날개뼈로 척골(자뼈), 요골(노뼈), 완전골(손등뼈), 지골(손가락뼈)을 볼 수 있다.
날개뼈의 길이를 측정해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척골 : 159.1mm, 요골 : 150.2mm, 완전골 : 95.0mm |
오리과 중 개체수가 많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많이 구조되는 4종을 후보로 정했다.
그 중, 평균 길이가 비슷한 '큰기러기'가 가장 유력한 후보다.
이제 남은 내용물을 관찰해 '큰기러기'가 뼈의 주인인지 확인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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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의 형태나 크기로 보아 날개나 꼬리깃이 아닌 몸통깃으로 보인다. 깃의 색은 변색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갈색에 가깝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큰기러기'의 깃 또한 전체적으로 갈색의 깃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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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뼛조각들은 두개골을 이루는 뼈들이다. |
큰기러기 입장에선 기가 차겠다. 축하해줄 일도 아니지만.. 아무튼 뼈의 주인, 큰기러기 |
독수리는 토사물의 냄새로 보나, 활력성으로 보나 중독된 개체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AI 비상사태인 요즘 외상이나 특별한 증상 없이 구조되는 조류는 구조센터를 잔뜩 긴장하게 만든다. 겉잡을 수 없는 AI로 인해 농가도 야생동물도 힘겨운 나날이다.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랄 뿐이고 조금이라도 추가 피해가 없길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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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9 독수리도 17-009 매도 잘 견뎌내고 있다. AI 문제야 그저 바랄 뿐이지만 이 녀석들이 돌아가는 건 우리의 몫이다. |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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