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Raccoon dog, Nyctereutes procyonoides)는 식육목 개과에 속하는 종으로 우리나라 전역의 깊지 않은 산림이나 관목림, 하천과 같은 곳에 분포하며 주로 다른 동물(오소리 같은)이 만들어 놓은 굴을 이용하거나 바위틈 사이에 살지만 스스로 굴을 파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민가나 도심지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주로 야행성 동물이지만 낮에도 종종 활동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하죠.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고 가을에 짝을 맺습니다. 교미 시기는 1~3월이며 임신 기간은 59~64일 정도로 알려져 있고 보통 5월 전후로 4~8마리(평균 6~7마리)의 새끼들을 출산합니다. 너구리는 개과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동면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개체, 영양 상태, 지역 등에 따라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겨울 날씨가 그리 춥지 않고 한겨울에도 너구리 구조가 흔치 않은 것으로 봐서 잠깐 굴에서 쉬는 기간을 제외하고는 동면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로 좋아하는 먹이는 개구리로 알려져 있지만 설치류, 파충류, 어류, 조류, 곤충, 연체동물, 다양한 과일 등 거의 가리는 것이 없는 잡식성이자 대식가로도 유명하죠.
너구리가 가축에게 광견병을 전파시키는 주요 매개체로 알려지면서 미국, 핀란드, 일본 등에서는 여우, 늑대와 더불어 너구리에 대한 생태 연구와 조사를 통해 광견병 관리계획을 세우고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너구리에 대한 생태 조사나 광견병 미끼 백신의 효능과 같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러한 너구리들이 어떤 원인으로 구조가 되는지, 그리고 치료와 재활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접수된 너구리들을 대상으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그림은 2011년 1월~2013년 12월까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접수된 너구리의 원인을 분석한 그래프입니다. 3년간 총 219마리의 너구리가 접수되었는데 그 중 30%가 넘는 68마리가 개선충에 감염된 상태였습니다.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는 전신 탈모와 피부의 과도 각피화, 결합 조직의 증식이 생기면서 피부는 대단히 비후되어 마치 소보로 빵과 같은 형태를 보입니다. 치료를 받지 못하면 세균의 2차 감염과 쇠약, 악액질로 이어져 결국 죽게 되죠. 이러한 모습 때문에 어떤 신고자는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인 줄 모르고 새로운 종(new species)의 야생동물을 발견했다고 하시는 분도 간혹 계십니다.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 모습 |
ICU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는 너구리들.
모두 개선충에 감염된 상태다.... |
개선충 감염에 뒤를 이어 미아와 차량과의 충돌로 인한 구조가 각각 40마리, 39마리로 전체 접수된 너구리의 약 36%(각 18%) 정도를 차지합니다.
해마다 5월이면 전국의 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너구리 새끼들이 입원실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부모 너구리가 개선충에 걸려서 함께 있는 새끼들에게까지 전파되어 구조되는 경우, 맨홀이나 배수로에 빠진 채 발견되는 경우, 과수원이나 하우스 주변에서 혹은 등산 중에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 등 새끼들이 구조되는 사연은 정말 다양하죠. 이 중에 가장 센터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은 일반인이 너구리 새끼들을 발견한 경우 안타까운 마음에 건강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구조가 아닌 ‘납치 또는 유괴’를 하게 된다는데 있습니다. 새끼 너구리들이 들어오면 스스로 먹이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인공포유를 하며 강아지 새끼를 보살피는 것처럼 관리해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에게 익숙해지게 되면 후에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해결책으로, 대리모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암컷 너구리와 함께 사육하여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해줄 수는 있죠.
인공 포유중인 새끼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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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로 인해 구조된 한배의 새끼 너구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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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로드킬(road kills)입니다. 차가 다니고 도로가 존재하는 한 야생동물의 로드킬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며 너구리 역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나마 환경부나 지자체에서 단절된 야생동식물의 생태적 흐름을 지속시키고자 생태 통로 조성과 같은 다양한 보호 계획들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지만 야생동물 보호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입니다.
차에 치어 도로 위에서 숨을 거둔 너구리 |
앞다리가 골절되어 수술은 받은 너구리 |
창애, 올무와 같은 밀렵꾼들이 설치해 놓은 덫에 걸려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이 먼저 발견하여 다행히 구조가 되기도 합니다. 올무에 걸린 상태에서 빨리 발견되어 구조된다면 예후가 좋은 편이지만, 오랫동안 올무에 걸린 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칠수록 그 올가미는 더 깊이 조여들어 살을 파고 들어가 심각한 상태로 이어지게 되죠. 창애라는 덫에 다리가 걸리게 되면 뼈와 근육, 신경, 혈관 등이 모두 손상되어 절단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개홍역(CDV, canine distemper virus)도 구조되는 너구리들 중 매년 평균 5마리 정도에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너구리 구조 시에는 CDV간이 키트 검사를 통해 감염여부를 확인해서 다른 동물에게 전파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개홍역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된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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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창애)에 걸려서 다행이 구조되었으나 다친 다리를 절단해야만 하는 상황 |
외국의 경우 사냥이나 늑대, 여우와 같은 너구리의 천적 등으로 인해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너구리의 수렵이 허가되어 있지 않고 천적이 될 만한 중대형 포유류도 거의 없어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너구리의 주된 위협요인은 질병과 교통사고로 볼 수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너구리의 뛰어난 적응력과 번식능력 그리고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접수되는 구조 건수로 추정해 볼 때 전국적으로 안정적인 밀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누가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야생동물이 과거에 멸종위기에 처해질 줄 알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