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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5일 금요일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 흰꼬리수리의 힘겨운 삶

2015년 1월 4일... 총성이 울려 퍼지고 한 생명이 하늘에서 힘없이 추락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날개가 있는 것도 얼마든지 추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야생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말이죠.

추락한 생명은 다름아닌 '흰꼬리수리' 였습니다. 흰꼬리수리는 국내에 도래하는 대형 수릿과 조류로, 세계에서 4번째로 크고 무거운 수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년 겨울 강 하구나, 드넓은 호수를 지니고 있는 지역에 도래하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이자 천연기념물 243-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입니다. 일단 성장을 하게 되면 자연생태계에서 Apex predator, 즉 천적이 없는 최상위포식자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역시 위험은 존재합니다. 바로 우리 '인간' 이지요.

당시 태어나 채 1년도 되지 않은 어린 상태였고,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도래했다가 누군가가 무책임하게 쏘아댄 총에 맞은 것이죠. 발견 당시 우측 척골 부근에 총알이 그대로 박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뼈도 부러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날개에 총알이 그대로 밝혀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골절을 확인할 수 있는 방사선 사진


그렇게 흰꼬리수리는 구조센터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후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도 흰꼬리수리가 다시 힘차게 날갯짓하는 모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마, 하늘을 날아다니던 그의 자유를 빼앗은 것이 바로 우리였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흰꼬리수리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 총구가 겨눠지던 혹독한 그날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점차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이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점차 건강을 되찾아갔고, 부러졌던 뼈도 붙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계류장 내에서 비행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흰꼬리수리는 겨울철새 입니다. 주로 러시아 등지에서 번식을 하고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것이죠. 그렇기에 자연으로 돌려보내 생존의 성공확률을 더 높여주기 위해선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계절인 겨울이 되어야 하는데, 구조되어 치료, 재활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기에는 남은 겨울이 너무 짧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흰꼬리수리는 조금 더 확실하게 재활의 과정을 거친 후 다시 돌아오는 겨울에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치료를 받고 회복하여 계류장 내에서 재활훈련을 받고있는 흰꼬리수리


봄, 여름, 가을...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다시 겨울이 돌아왔습니다. 약 11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러야했던 흰꼬리수리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때가 된 것이죠. 모든 신체검사를 끝내고, 인식을 위한 금속가락지와 GPS 위치추적기를 부착했습니다. 추적기를 통해 특정 시간마다 흰꼬리수리가 머물고 있는 지점의 좌표가 수신되어 머물고 있는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한다면 흰꼬리수리가 머물고 있는 현장으로 직접 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니터링 할 수 있고, 적합한 서식환경을 연구하거나, 필요하다면 다시 재구조를 할 수도 있겠지요?

10월 31일. 그렇게 흰꼬리수리는 많은 이의 기쁨과 따뜻한 마음 속에 자연으로의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총에 맞아야했던, 약 1년 이라는 시간을 힘겨운 재활과 싸워야 했던 아픈 기억일랑 접어두고 이제는 편히 살아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저 날갯짓에 함께 날려보내주었습니다.

약 11개월의 시간 동안 학수고대했을 자연으로의 방생 순간



흰꼬리수리가 자연으로 돌아간 후 그가 머물고 있는 좌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며, 특이사항이나 위험성 등을 점검했습니다. 떠나보냈다고 저희의 책임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2주일에 1번 정도는 현장으로 나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니터링도 실시하였습니다.

GPS 추적장치를 통해 흰꼬리수리의 이동경로, 머문 환경 등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방생장소 부근에서 약 3일간 머물던 흰꼬리수리는 이후 더 북상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흰꼬리수리는 어류, 조류, 포유류 등 다양한 먹이를 사냥하지만, 죽어있는 먹잇감 등도 곧 잘 먹는 기회포식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현장에 나가봤더니 비에 쫄딱 젖으면서까지 로드킬 된 고라니를 먹고 있기도 했으니까요.

방생 후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을 기록한 사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안정화되면서 이제 조금은 마음을 놓을 찰나, 저희는 또 다시 비보를 접해야만 했습니다. 저희가 부착한 금속가락지와 GPS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고 있는, 그 흰꼬리수리가 구조되어 다시 저희한테 왔다는 것을요.
또 다시 누군가가 쏘아댄 총에 맞았는지, 전깃줄에 부딪혔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크게 달라질 것 없는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를 두 번 다치게 한 것 모두 우리의 책임이라는 점이죠. 상황은 이전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상처도 더 심했고 예후도 좋지 못했습니다.

총에 맞았던 우측날개의 상완골이 부러져있는 모습 


긴박하게 수술을 진행했고, 뼈의 위치를 맞춘 후 핀을 삽입해 정복하였지만 뼛조각이 유실된 문제 등으로 그 예후를 짐작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경우 오른쪽 날개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 역시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날개를 절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상 비행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우측 날개 정복 수술을 받고 있는 흰꼬리수리 


결국 흰꼬리수리는 또 다시 구조센터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1년여 간을 고생하고, 참아가면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겨우 100일 정도 살았을 뿐 입니다. 태어난 지 2년도 되지 않은 이 생명이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번에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 마저도 굉장히 요원하다는 것 이겠지요...
만약 다시는 하늘을 날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요? 평균 수명이 약 25년 정도인 흰꼬리수리입니다. 채 1년도 자연에서 살지 못하고, 남은 모든 기간을 자연을 그리워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지요.

야생에서의 삶도 생존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척박함 그 자체일 것 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쫓기고 쫓고, 경쟁하고 인내하며 살아야함은 분명하겠지요. 우리가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아도 이미 벼랑 끝에 몰려있는 그들의 삶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총구를 겨누고, 덫을 놓고, 쫓아내고 있지요. 

날개가 있건 없건,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굉장히 많은 생명을 추락시킬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다 추락하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을 추락시킬까요? 이제는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줘야하지 않을까요?


모든 생명이 다 추락하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을 추락시킬 건가요?
이제는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줘야하지 않을까요?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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