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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9일 월요일

우리나라의 야생동물 '너구리'를 파헤쳐봅니다.

(이번에는 너구리에 대해서 폭넓게 알아보도록 하죠. 주된 자료는 위키피디아를 기본으로 하여 핀란드의 너구리 연구자인 Kaarina Kauhala 등이 연구한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일반 설명

너구리의 명칭

너구리의 학명은 Nyctereutes procyonoides입니다. 속명의 뜻은 라틴어로 Nukt- 는 밤을 뜻하고 ereutes는 방랑자를 뜻하죠. 즉 밤에 돌아다니는 방랑자인 셈입니다. 종명의 pro는 -전 혹은 '작은'을 뜻하며 cyon은 개를 뜻합니다. 현대 라틴어에서는 prokuon을 라쿤(raccoon, Procyon lotor)으로 지칭하기도 한답니다. 라쿤과 너구리는 매우 유사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동물들입니다. 결국 너구리의 학명에 뜻하는 것은 '밤에 돌아다니는 작은 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너구리의 모습. 다리가 무척 짧다.
북미의 라쿤 혹은 북미너구리다. 이름으로 인한 혼동은 생김새에서 기인한 바도 있다. 
꼬리에 줄무늬가 있고 콧잔등이가 검으며, 특히 발가락은 모두 다섯개다.


너구리는 1속 1종으로만 남은 매우 독특한 동물이지요. 이 속(genus)에 한 종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너구리속은  약 9백만년 전에 출현했고 당시 다른 종도 존재했지만 대부분 홍적세(Pleistocene)를 넘기지 못하고 3백 4십만년 전부터 7십 8만년 전에 멸종을 했고 지금은 너구리만 남은 것입니다.

외국 자료를 보면 사냥이나 모피교역과 도시화, 유기동물들과 질병의 문제로 그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개체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너구리의 수렵을 허용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서의 주된 위협요인은 질병과 도로교통사고로 보입니다.


너구리의 형태

야산에서 발견된 너구리의 두개골, 개와는 다르게 두개골 중앙의 시상릉이 잘 발달해있다.


너구리의 두개골은 게잡이여우와 같은 남미산 여우류와 매우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두 종은 혈연적으로 거의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두개골은 작지만 단단하며, 약간 장방형입니다. 광대뼈인 권골궁(zygomatic arch)은 좁은 편이죠. 시상릉이라고, 두개골의 가장 위에 솟은 일종의 돌기가 매우 잘 발달해있습니다. 잡식성인 것은 반영하는 듯 송곳니와 열육치(carnassials)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고, 어금니는 평편하며, 상대적으로 긴 장관이 발달해 있답니다(다른 개과동물에 비해 1.5-2배 정도 김). 몸통은 긴 편이며, 이에 비해 다리는 짧아 잘 뛰지 못합니다. 총 길이는 45-71cm 정도이며, 꼬리는 몸체의 1/3 정도도 안되게 12-18cm 정도 길며, 뒷발의 발목관절 정도까지 내려오지만 땅에 끌지는 못합니다.

귀는 짧고 털에서 살짝 돌출된 정도이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체중은 계절에 따라 다른데 3월에는 3kg 정도였는데 8, 9월 정도에는 수컷의 경우 6.5-7kg에 이르기도 하며 어떤 개체들은 9-10kg을 넘기도 합니다. 일본과 러시아에서 수집된 표본들의 경우 중국에서 연구된 개체들보다 더 크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물론 사육장에서 잘못 관리하면 12kg이 넘어갈 정도로 피하지방이 축적되기도 합니다.


겨울털은 조밀한 속털과 더불어 120mm에 이를 만큼 길고 거칠며 두꺼운 겉털로 이루어집니다. 겨울털은 −25°C까지 내려가는 기후를 견디는데 필요합니다. 겉털(보호털)은 갈색 혹은 회갈색의 색이 들어있고, 끝은 검은색을 띱니다. 일반적으로 꼬리의 끝은 몸통보다 짙은 검은색으로 끝납니다. 어깨부위에서 앞다리로 검은색이 흘러 내려가며 가슴과 앞다리, 뒷다리는 윤기나는 검은색 털이 나 있습니다. 주둥이에는 짧은 털이 나 있으며 눈 쪽으로 갈수록 길고 많아집니다. 눈 아랫주위와 뺨에는 검은색 털이 나 있습니다. 여름털은 더 짧고 밝아집니다. 센터에서 관찰한 결과 5월에서 6월 사이에 솜털이 빠지더군요.

너구리와 오소리의 차이

흔히 너구리와 오소리, 라쿤을 혼동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라쿤이 살지 않으니 오소리와 차이점만 간략하게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풀숲의 너구리
굴 밖으로 나오는 오소리. 굴파기 귀재다.

 
오소리는 학명이 Meles leucurus라고 하여 족제비과에 속하는 녀석입니다. 개와는 매우 다른 동물이죠. 영화에 나오는 울버린과 친척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족제비과 동물은 수달, 족제비, 쇠족제비, 담비와 오소리가 있습니다. 이중 오소리가 가장 너구리와 유사한 셈이죠. 
형태적으로 보자면 오소리의 발가락은 앞뒤 모두 5개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너구리는 모두 4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딛죠.  
오소리의 앞발톱은 나름 길어서 굴을 파는데 혹은 먹이를 찾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하지만 너구리 발톱은 일반적인 개 정도의 수준입니다. 
오소리의 발바닥은 사람처럼 흰색에 가깝습니다만, 너구리의 발바닥은 검은색이죠. 물론 코도 오소리는 살구색에 가깝지만 너구리는 검습니다. 

너구리의 겉털의 끝은 검은색인데 비해 오소리의 겉털 끝은 흰색이니 이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너구리의 귀도 큰 편은 아니지만 오소리보다는 큰 편입니다. 오소리의 귀는 매우 작습니다. 

이 정도의 정보만 있어도 오소리와 너구리를 크게 혼동할 리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오소리는 주로 산간지역에 주로 서식하고 너구리는 산에서부터 저지대까지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어 사람들의 눈에 더 자주 띄는 것은 너구리겠죠. 

윗쪽이 오소리의 뒷발이며, 아랫쪽은 너구리의 뒷발이다. 
발볼의 색도 크게 차이가 나지만, 발가락의 수도 오소리는 5개, 너구리는 4개다.
꼬리 겉털의 색 차이를 볼 수 있다. 윗쪽이 너구리, 아래가 오소리다. 
너구리의 겉털은 갈색이거나 검은색이지만, 오소리의 겉털은 흰색이 많다.


너구리의 습성

번식과 발달

교미철은 지역에 따라 이른 2월부터 4월까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너구리 새끼들이 신고되는 양상을 보면 대개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에 분만을 하는 것 같습니다. 너구리의 임신기간은 61-70일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판단해보면 2월, 3월이 주된 교미기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너구리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고, 가을 경에 쌍을 맺는답니다. 그럼 겨울을 같이 보내겠군요.하지만 사육 상태에 있는 수컷 너구리의 경우 4-5마리의 암컷과 관계를 유지한 것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양다리가 아닌 문어다리입니다. 짝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 간의 경쟁이 있는데, 이때는 짧게 다툼을 하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는 않는답니다. 짝짓기는 밤과 새벽에 이루어지며 평균 6-9분 정도랍니다. 19금이 되어버렸군요.


암컷의 발정은 몇 시간에서 6일까지 지속되며 5번 이상의 짝짓기가 그 기간에 이루어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임신이 되었더라도 20-24일 후에 다시 발정을 한답니다. 그래서 새끼들을 많이 낳는 것일까요? 60-70일에 이르는 평균 임신기간과 4-5월에 분만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8-10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지만 경우에 따라 15-16마리까지도 보고된 바 있답니다. 어마어마하죠? 우리나라에서도 10마리 넘게 낳는 사례도 종종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개과에서는 가장 많은 분만수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초임의 경우 임신 경험이 있는 개체에 비해 새끼를 적게 납니다.
수컷들은 새끼들을 키우는데 매우 활동적인 역할을 수행하죠. 이러한 수컷의 중요한 역할이 잘 드러난 사례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1928년 임신한 암컷 너구리만 야생에 풀었을 때 매우 제한적인 성공-실패겠죠-을 했지만, 1929년부터 1960년대까지 쌍으로 풀었을 때 매우 성공적이었고, 현재 유럽의 곳곳에 너구리들이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모피생산을 위한 너구리의 유럽 도입이 어떤 좋은 결과를 낳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끼들을 돌봄에 있어 수컷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어린 너구리가 구조되었다. 눈도 뜨지 못한 체 발견되었다.
때에 따라 10마리에 가까운 어린 개체들이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한다.


태어날 때 새끼의 체중은 60-110g 정도로 태어나며 눈은 못 뜨고, 짧고 조밀하며 부드러운 짙은 갈색털이 나 있습니다. 9-10일 만에 눈을 뜨고 그 후 14-16일에 이가 돋기 시작합니다. 다시 10일 정도 지나면 겉털이 나기 시작하는데 엉덩이와 어깨에서 시작합니다. 약 2주 정도가 더 지나면 눈 주위를 제외하고 색이 밝은 털이 나기 시작합니다. 포유기간(젖먹이는 기간)은 45-60일 정도가 됩니다. 생후 3주부터 1개월이 지나면 잡아온 먹이를 먹기 시작합니다만 이때에도 젖을 빨기는 합니다.약 4.5개월 정도(핀란드 연구에 따르면 5-7개월 정도가 소요된답니다) 지나게 되면 완전히 성장하는 단계로 접어들며, 어미로부터 독립하는 시기는 8월 말에서 10월 초입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린 개체들의 방랑 거리가 이때 굉장히 멀어지고 직선적으로 변해간답니다. 10월 경에는 거의 성체 크기로 자란 새끼들의 경우 짝을 찾기 시작하고 성 성숙은 8-10개월령이 되면 일어납니다. 수명의 경우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6-7년생이 야생에서 확인된 바 있으며, 사육 개체는 11년까지 생존한 바 있답니다.

동면

너구리는 개과동물들 중 동면을 하는 유일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겨울까지 피하지방을 18-23%, 복강지방을 3-5%까지 축적합니다. 이 정도 수준까지 체지방을 축적하지 못한 경우 겨울철에는 죽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겨울 동면시기에는 체내 대사율을 25%까지 떨어뜨리기도 한다는군요. 하지만 러시아의 우수리지방과 같은 곳은 겨울폭풍이 오는 시기에만 잠깐 동면을 한다고도 합니다. 겨울철에 적설량이 15-20cm까지 쌓이면 신체활동을 줄이고, 굴에서 150-200m 정도까지만 움직인다고 하는군요. 먹이가 더 풍부해지고  암컷의 발정이 시작될 무렵인 2월부터 활동성이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동면하는 개체가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위의 자료가 연구된 핀란드보다는 위도가 한참 낮아서 겨울철의 추위가 심하지도 않고, 적설량도 많지 않아 너구리의 활동을 제약할 조건이 그리 심하지 않고, 식물성 먹이가 다소 줄기는 할 터이지만, 여전히 먹이 구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한국의 너구리는 짧은 시간을 굴에서 쉬는 기간을 제외하고서는 동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먹이

너구리는 곤충부터, 설치류, 식충류, 양서파충류와 조류, 어류, 갑각류와 사체 등까지 먹는 잡식성이지요. 이러한 동물을 기회적 일반섭식종(opportunistic generalist)이라고 합니다. 기회가 닥치는 대로 아무 거나 잘 먹는다는 것이죠. 계절적으로 출현하는 먹이에 따라 주 먹이는 계속 바뀔 수 있답니다. 즉 환경적응력이 좋은 종인 셈이죠. 설치류들 중에서는 습지에 사는 너구리의 경우 밭쥐류(vole)가 중요 먹이종이지만 러시아의 Astrakhan 과 같은 평지에서는 저빌 등이 중요 먹이종이 된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등줄쥐가 매우 중요한 종입니다. 개구리는 너구리가 가장 잘 먹는 먹이 중 하나입니다. 러시아의 Voronezh에서는 일반적으로 먹는 양서류가 무당개구리임에 반하여 우크라이나에서는 European spadefoot toad를 주로 먹습니다.  너구리는 피부에서 독을 분비하는 두꺼비도 먹을 수가 있는데, 이는 침을 많이 분비하여 독을 희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국립생물자원관의 이정현 박사님의 관찰에 따르면 추적 중이던 두꺼비를 너구리가 포식했는데, 몸의 상반신은 남기는 습성을 보였답니다. 즉 목에 위치한 독샘의 존재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경험이 풍부한 너구리가 아니었는가 싶다는 의견입니다. 너구리는 또한 물새류와 참새류 혹은 소형 이주조류들도 포식합니다. 너구리가 이입된 지역에서는 멧닭이나 들꿩과 같은 조류를 포식하고, 우수리지역에서는 꿩을 잡아먹은 많은 사례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물가로 나온 물고기도 먹고 고립된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도 잡아먹습니다. 산란기에는 물고기를 거의 못 잡지만 봄철 해빙기에는 곧잘 물고기를 잡습니다. 남부서식지에 사는 너구리는 어린 거북류와 알도 먹습니다. 너구리가 잡아먹는 식충류에는 땃쥐류를 비롯하여 고슴도치와 두더지까지 포함됩니다. 우수리지역에서는 큰 두더지가 중요한 먹이자원이 될 만큼 중요하다네요.

먹이식물은 매우 다양한데, 구근류로부터 뿌리 줄기, 귀리, 수수, 옥수수, 견과류, 과일, 딸기, 포도, 멜론, 수박, 호박과 토마토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일본에서는 과실을 따먹기 위해 나무를 오르내리는 너구리가 관찰된 바도 있답니다.
계절적으로 식단을 바꾸기도 하는데, 늦가을과 겨울에는 거의 설치류나 사체에 의존하며 봄에는 과일과 곤충, 양서류를 많이 먹습니다. 여름에는 몇몇 설치류와 더불어 어린 조류와 과일, 곡류와 채소 등을 먹습니다.

가을철 잣이 많이 열리자 잣을 껍질째 깨서 먹은 배설물. 너구리는 은행도 먹는다.


너구리는 먹이를 먹은 후 배설할 때 공동화장실(분장)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민가 주변의 너구리 분장에 있는 똥을 살펴보면,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가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고춧가루랄지, 조기 머리뼈, 구운 오징어 심지어 비닐장갑 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을에는 은행을 먹기도 하는데 은행의 과육은 먹고 은행알은 그대로 배설한 배설물 덩어리들도 발견됩니다. 거미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위 안에 거미만 가득 찬 개체도 확인된 바 있죠. 일단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어두는 습성이라 위 안에 동일 먹이물질이 한 가득 들어있는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미꾸라지를 물속에서 잡아먹고 있는 너구리입니다.


소통

다른 개체들과 함께 소통을 위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공동화장실은 그 지역에 있는 다른 개체들이 함께 사용하는 명확한 장소이죠. 연구에 따르면 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각 가족 구성원은 물론 외부침입자들 간의 정보를 소통하는 목적으로 이용한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과정은 주로 후각적인 감각을 통해 동일종 내부에서 각 개체를 인식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답니다.

너구리가 일반적으로 만드는 공동화장실. 
반복적으로 배설하기 때문에 오래된 배설물까지 볼 수 있다.


여우처럼 짖지는 않습니다. 대신 끙끙대는 신음소리 같은 소리도 내지요. 다양한 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매우 특징적인 소리는 없습니다. 다만 공격하거나 방어를 할 때는 매우 날카로운 "꺅-"하는 괴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으르렁대기도 하지만 심하게 소리가 크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후각/시각적 소통 외에도 다양한 자세를 통한 소통의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꼬리의 위치를 통해 우월성이나 발정의 준비 여부에 대해 나타내기도 하죠. 직접적인 접촉은 주로 부모 자식간, 부부간에서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 됩니다.



너구리의 행동권

연구에 따르면 최소볼록다각형법(Minimum Convex Polygon, 이하 MCP : 동물의 행동권 분석 방법)으로 분석을 해보니 100%로 분석할 때 평균 암컷의 경우 0.58±0.23, 수컷은 0.98±0.65㎢ 정도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95% MCP를 적용했을 경우 수컷이 평균 0.63±0.69㎢, 암컷이 0.42±0.32㎢로서 차이가 많이 줄었습니다. 또한 암수 쌍이 함께 무선 추적된 두 쌍의 행동권은 95% MCP를 적용했을 경우 암수가 0.26㎢와 0.28㎢, 0.36㎢와 0.36㎢로서 같거나 차이가 매우 적었으며, 4계절 모두 짝을 지어 함께 지냈답니다(최태영 외 2006).

행동권

보통 암수 한쌍은 같은 행동권을 나누어 쓰고, 활동할 때도 가깝게 붙어 다닌다. 행동권이 서로 겹치는 이웃 너구리들과도 독특한 행동권 방어행위는 관찰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영토권 주장이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행동권은 다양하지만 0.028에서 2㎢(2.8-200ha) 수준이라고 한다. 일본너구리의 개체당 행동권은 111 ± 16.9 ha (95% kernel estimate) 혹은 160 ± 34.5ha (95% maximum convex polygon (MCP)) 정도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면적으로 따져 보고된 바에 따르면 일본너구리는 ha당 0.46-0.86 개체가 서식하며 유럽의 경우 ha당 0.0014에서 0.048가 서식한다고 하니 유럽 너구리의 밀도가 상당히 떨어지고 일본은 북적대며 산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유럽에서 너구리가 아직 충분하게 퍼지지 않은 영향이련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아종간의 차이이기도 하거니와 각 서식지 환경적 차이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하여 핀란드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균 9.5㎢를 사용하고 85%의 집중성을 가진 중심구역은 3.4㎢에 달했다고 합니다(Home range of the raccoon dog (Nyctereutes procyonoides) in southern Finland). 물론 핀란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춥다는 점을 고려한다다고 하더라도 이는 매우 넓은 수치입니다. 독일에서 연구된 바에 따르면 가을철의 경우 ㎢e당 3.4마리가 서식한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여우에 비해선 개방된 지역을 싫어하고, 울폐된 공간을 선호한다고 하는군요. 이는 사냥의 습성과 채식전략에 있어서 외형적인 차이와 먹이선호도의 차이 등으로 인해 여우와는 서식간섭이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일부 너구리는 이동거리가 20km를 넘어가기도 한다. 항상 멀리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20km 직경)


도입된 지역


모피 생산 증대를 위해 구소련을 통해 동유럽으로 이주된 너구리는 그 폭발적인 적응력과 식성, 번식능력과 동면능력 때문에 급격하게 퍼져나갔고, 광견병과 같은 질병의 주요 숙주로서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며, 먹이경쟁을 통해 여우같은 토종 포유동물과의 경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8/Raccoon_Dog_area.png






















1928-1958년 동안 모피생산과 개량을 위해 구소련의 76개 지역에 약 10,000여 마리의 N. p. ussuriensis 아종이 도입된 바 있습니다. 연해주의 일부 섬에 너구리를 이주시킨 것이 가장 처음 일인 듯 싶습니다. 1934년까지 너구리는 알타이, the northern Caucasus, 아르메니아, 키르키지아, Tatarstan, Kalinin, Penza와 Orenburg 지역 등 동부 유럽과 중앙아시아쪽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듬해 Leningradsky, Murmansk, Novosibirsk와 Bashkortostan으로도 도입이 되었지요. 하지만 Irkutsk, Novosibirsk, Trans-Baikaliya와 Altai 지역에서는 혹독한 추외와 먹잇감의 부족으로 인해 거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Caucasus의 산악지대와 중앙아시아, Moldova지역에서도 거의 생존이 어려웠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틱국가들과 동부유럽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국가 특히 Kalinin, Novgorod, Pskov와 Smolensk지역에서는 성공적이었고 중앙러시아에 해당하는 Moscow, Yaroslavl, Vologda, Gorkiy, Vladimir, Ryazan Oblasts 지역과 black soil belt로 알려진 Voronezh, Tambov, 그리고 Kursk, Volga 남부지역, 북부 Caucasus, Dagestan에서도 이주사업이 무척 성공하였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Poltava, Kherson 그리고 Lugansk지역에 가장 많은 너구리가 정착하게 되었다네요.
1948년, 35마리의 너구리가 라트비아로 도입되었고 이 개체군은 급격하게 성장하여 1960에는 공식적으로 4,210마리의 너구리가 잡히기도 했답니다.

이제 너구리는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 매우 흔한 동물이 되었고  세르비아, 프랑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덴마크 정부는 2015년도까지 번식 개체군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답니다. 핀란드에서는 너구리가 이주한 이후 영역을 확장시키는 속도를 보았더니 연간 약 40km 정도의 속도로 넓혀 나가더랍니다. 현재 여우보다 더 높은 밀도를 나타내는 지역도 있다는군요.
핀란드에서 연구된 바에 따르면 밀도회복율도 매우 뛰어난데, 1970-71년 수렵기에 818마리가 잡혔는데 그로부터 20년 후인 1990-91년 수렵기에는 약 75,000마리가 포획되었답니다. 놀랄만한 정착인 셈이죠.


개체군의 변동

너구리 연구가 많이 진행된 곳이 핀란드와 일본입니다. 개체군의 변동이라고 하면 동물수의 변동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동은 일반적으로 출산과 폐사, 다른 곳에서부터의 이입와 이출에 따라 결정됩니다. 출산과 이입은 먹이환경조건이 개선되면 늘어나는 것이고, 폐사와 이출은 먹이환경과 더불어 질병, 수확(수렵), 자연적 혹은 인위적 재난 (지속적인 서식지의 파괴나 도로의 건설 등)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핀란드 자료를 살펴보면 가을과실(핀란드에서는 주로 bilberry와 lingonberry)이 영향을 미친답니다. 들쥐의 수도 영향을 주는데 과실이 적게 열리는 북부권이 남부권에 비해 들쥐의 수가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들쥐보다는 열매나 과실이 너구리의 개체군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먹이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겠군요. 특히 밤이나 도토리, 은행 등과 같이 지방이 상대적으로 많은 열매들은 너구리들이 월동하는데 중요한 먹이식물 자원일겁니다. 가을에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어린 너구리들에게 겨울은 무서운 계절임은 틀림없고 이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가을과실이 매우 중요한 개체군 조절인자가 될 것입니다.


일본너구리 아종

일본너구리 아종은 우수리 아종에 비해 더 작은 송곳니와 두개골, 체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일본너구리 아종은 너구리와는 다른 종으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염색체 수와 행동습성, 체중의 차이를 들 수가 있다네요.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일본너구리 아종은 매우 다른 고립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염색체는 38개에 불과합니다. 이는 대륙에 위치한 또 다른 아종들과는 차이는 보이는데 대륙 아종들의 염색체 수는 54개 이며 유전적 차이는 한국과 일본 차이가 2.4%였지만, 같은 대륙에 속하는 한국-러시아 0.4%, 한국-중국 0.6%, 한국-베트남 0.6%의 수치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이 아닌 다른 지역의 너구리들과 일본너구리 아종을 비교해보아도 러시아-일본 2.4%, 중국-일본 2.5%, 베트남-일본 2.3% 수준으로 매우 다르게 나타난 셈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너구리를 별개종으로 구분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개과동물 전문가그룹에서는 2001년 9월 이 의견을 기각한 바 있습니다만 계속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쨌건 너구리는 한반도 혹은 사할린을 거쳐서 약 18,000-12,000년 전에 일본으로 유입되었고, 아시아 대륙에 비해 좀더 온난한 기후에서, 특히 겨울철 먹이확보가 용이한 측면이 있어 좀더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즉 지금도 일본너구리는 '다른 종'으로 분화(speciation)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조절인자

포식자

해외에서는 늑대가 주된 포식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너구리는 달리는 속도가 느리고, 굴을 파기는 하지만 이러한 특징들은 모두 늑대가 동시에 가지는 특징이어서 잡히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일부 다른 지역에서는 여우가 새끼 너구리를 잡아먹는다는 보고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늑대든 여우든 모두 사라진 동물들이어서 당분간은 이런 문제가 없겠습니다. 다만 수리부엉이는 충분히 어린 너구리들을 먹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돌아다니는 유기견 중 극도로 야생화된 야견은 너구리를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수렵철에는 사냥개들이 너구리를 재미삼아 죽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골에서는 풀어키우는 진도개가 수시로 너구리를 물고 오는 걸 보신 분들도 많습니다.

진도개가 잡은 너구리. 
( 출처 : 대한민국 국견협회 )


로드킬

우리나라에서의 연구자료는 부족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로드킬에 의해 희생되는 중형포유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연간 110,000-370,000마리 정도가 도로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보고된 바 있으니 우리나라의 너구리 개체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인임은 분명할 듯 합니다.

도로가에서 너구리의 사체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질병과 기생충


너구리에게 제일 중요한 질병은 아마도 개선충증, 개홍역과 광견병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선충증(Scabies, Sarcoptic mange)은 Sarcoptes scabiei)가 원인체이고 감염된 동물과 접촉할 경우 사람에게도 발병 가능합니다. 굴 생활을 하는 너구리는 식구동물들에게 전면적으로 퍼질 가능성이 높고 건강한 개체라도 감염이 될 수 있습니다. 귀와 겨드랑이, 복부, 다리에서 시작되며 털이 심하게 빠지고 심한 가려움증, 표피박리, 만성피부염 등을 유발하고 체중감소도 일으키지요. 너무 피부병변이 심하므로 어떤 사람들은 너구리 에이즈라고도 부른답니다. 2차적 세균이나 진균감염을 일으키면 농포를 형성하는 등 난치성으로 전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감염되지만 생활사를 이어갈 수 없어서 증식하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없어지지만 한동안 가려움으로 고생을 좀 합니다. 우리나라 너구리에서 많이 보이며 특히 겨울철에 그 발생이 두드러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 보고에 의하면 일본의 너구리 폐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겨울은 너구리가 살아남기 가장 힘든 계절인만큼 몸의 면역능력이 떨어져 더욱 잘 발생할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선충에 감염이 되면 온몸의 털이 빠지고, 심각한 2차 세균감염과 저영양증, 저체온증에 빠져 폐사하게 된다. 조기에 발견한다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다.
개선충, Sarcoptic Mange, Sarcoptes scaibei 암컷 성체다


개홍역(Canine distemper)은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식육류 동물에서 넓게 발생하는데, 개를 비롯하여, 너구리, 여우, 늑대, 사자, 호랑이, 하이에나와 족제비 및 수달까지도 감염되는 질병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개홍역이라는 이름은 식육류홍역(Carnivore distemper)으로 질병이름을 바꾸자는 의견까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종합예방접종에 포함된 질병인데, 바이러스 질병이지요. 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초기 3~6일간은 체온이 올라가고 이 시기에는 눈꼽과 콧물이 많이 나오며 다소 침울해지고 식욕을 잃게 됩니다. 2차적인 세균감염에 의해 소화기계와 호흡기계에서 문제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기침과 콧물을 시작으로 기관지염이 발생하고 이것이 진행되면 폐렴이 되기도 합니다. 설사 등이 나타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문제가 완전히 진행되기 전에는 야생너구리에서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바이러스 증식이 신경계에서 나타나는 경우 발작과 침울을 동반한 근육경직이 나타나며 많은 경우 경련, 마비, 근진전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개홍역에 걸리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니 반드시 간이키트검사 등을 통해서 안전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광견병(Rabies)은 우리나라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너구리에게는 그냥 몇몇 동물이 감염되어 폐사하는 것이므로 너구리 개체군에 큰 영향을 직접적으로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개, 기타 가축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중보건 예방 상 매우 중요한 질병이며, 이 질병의 통제를 위해서는 먹이백신(미끼백신)을 사용함과 동시에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지역의 너구리를 대량 살처분하는 경우도 해외에서는 보고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2012년과 2013년에는 경기도 시화호에서도 광견병이 발생하였고, 너구리에서 광견병이 확인된 바 있어 우리나라에서 광견병 퇴치사업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견병에 걸린 너구리로 추정되는 개체의 침으로 감사한 결과 양성으로 판정되었다.

2006-2015년까지 유럽에서 너구리에 의해 발생한 광견병 사례. 광견병의 통제에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이처럼 야생동물의 도입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 밖에도 8종의 흡충류, 17종의 선충류, Echinococcus 를 포함한 7종의 조충류에 감염된다고 기록되어 있고 Chaetopsylla trichosa, C. globiceps, Paraceras melis, Ctenocephalides felis, C. canis Pulex irritans를 포함한 벼룩 종류와  Dermacentor pictus, Ixodes ricinus, I. persulcatus, I. crenulatus and Acarus siro를 포함한 진드기가 기록된 바 있답니다. 특히 유럽으로 도입된 너구리 개체군을 통해 아시아 진드기매개성뇌수막염(Asian tick-borne meningoencephalitis virus)가 퍼진 사례도 있다는군요.


사람과의 관계

너구리를 인간이 활용하고 있는 가장 잘 알려진 방식이 바로 모피일 것입니다.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너구리가 퍼져나가고 있는 이유도 모피생산량 증대를 위해 구소련이 동아시아 동물인 너구리를 강제로 동유럽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피는 현대 사회에서 동물권과 관련된 이슈와 맞물려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모피의 질을 좋게 한다는 의도로 살아있는 너구리에게서 껍질을 벗기는 중국 농장의 동영상이 공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겨울 최고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라쿤털은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의 모자가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많은 동물보호단체에서도 라쿤털의 문제를 지적하였고, EBS 하나뿐인 지구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다룬 바 있습니다(http://home.ebs.co.kr/hana/replay/4/list?vodSort=NEW&courseId=BP0PAPF0000000022&stepId=01BP0PAPF0000000022&searchCondition=shwLectNmSrch&searchKeyword=%EC%95%8C%ED%8C%8C%EC%B9%B4&searchStartDt=&searchEndDt=&x=0&y=0). 하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라쿤털이 아닌 너구리털이 분명했습니다. 특히 길고 검은 겉털은 너구리의 특징이지요. 중국에서 매우 대량으로 사육하여 생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생산이지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아비규환입니다. 심지어 살아있는 상태로 피부를 벗겨내기도 합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기 힘든 이유입니다. 
만약 영상을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의 누리집을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rPNUCbRco0

그냥 집에 걸린 외투에도 너구리는 남아있습니다.




출처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Raccoon_dog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867219/Inside-Chinese-fur-farms-breed-raccoon-dogs-tiny-cages-skin-alive-make-luxury-coats-sold-West.html
http://www.humanesociety.org/news/press_releases/2008/03/raccoon_dog_fur_misrepresented_031908.html?referrer=https://en.wikipedia.org/

국립생태원 김영준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힘들어서 즐거워요!" 지루함 날려버린 동물 행동풍부화

    '동물 행동풍부화'라고 들어보셨나요? 이는 어쩔 수 없이 제한된 사육 상태에 있어야만 하는 동물들의 정해진 행동 규칙을 깨뜨리고, 야생에서 가질 수 있는 습성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행동풍부화는 왜 필요할까요?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자연환경에 비해 무척이나 단순한 환경에서 지내다보니 무료하고 답답할 수밖에요. 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서히 야생성이나 사회성도 결여되고 있을 겁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행동풍부화인 것이죠. 특히나 행동풍부화는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동물들이 흔히 보이는 정형행동을 줄이고, 운동량이 부족한 동물에겐 운동을 유도할 수 있기도 합니다.

    제한된 사육 상태에 머무는 동물은 어쩔 수 없이
    단순한 환경에서 무료하고 답답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행동풍부화인 셈이죠.


    이러한 행동풍부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동물이 머물고 있는 장소의 환경을 바꿔주고, 보다 다양한 먹이를 여러 방법으로 제공합니다. 사회성이 있는 동물의 경우 사회적 교류를 일으킬 수 있게 하거나 다양한 자극을 통해 감각을 만족시킴으로써 목적을 달성하죠.

    다양한 먹이를 제공하거나 기존과 다른 방법으로 먹이를 급여하는 방법
    머물고 있던 장소에 풀을 제공해주었더니 자연스럽게 숨는 법을 익히는 새끼 너구리 
    서로가 지나치게 공격성을 띄지 않는다면 다수의 동물이나 다양한 종이 함께 머무는 것 역시 풍부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야생성과 사회성을 유지하는데 특히 도움이 되지요.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면 각각의 동물 특성에 적합하고, 흥미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어야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전성이지요. 행동풍부화를 위해 제공해주었던 환경의 변화나 물품으로 인해 동물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제공 전 꼭 안전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구조센터에 머물고 있는 동물들은 어떤 행동풍부화를 하고 있을까요?

    우선, '벌매'는 야생에서 벌집을 습격에 그 안의 작은 구멍 속에 있는 애벌레를 주로 꺼내먹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습성을 고려했을 때 작은 구멍 속에 먹이를 넣어준다면 보다 자기 습성에 맞게 먹이를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있는 공 안에 먹이를 넣어주었더니 역시나 신나게 빼먹네요.

    구멍이 뚫려있는 공 안에 먹이를 넣어주었더니 신나게 빼먹습니다.


    다음은 '올빼미' 입니다. 올빼미는 주로 설치류를 사냥하는 야행성 맹금류 입니다. 센터에 머물다보니 사냥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그 과정에서 충족할 수 있는 야생성을 유지할 수 없지요. 그래서 쥐의 모양으로 인형을 만들어주었더니 마치 사냥을 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며 한참을 인형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쥐 모양으로 인형을 만들어주었더니 사냥에 대한 본능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너구리'에게는 다양한 방법으로 먹이를 주고 있습니다. 식물줄기를 이리저리 엮어 그 안에 먹이를 넣어 주었더니 먹이를 먹기 위해 식물줄기와 온종일 씨름을 하더라고요. 특히나 행동풍부화 물품을 만들 때에는 이렇게 자연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하면 효과도 더 좋고 안전성도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식물줄기 안에 숨겨진 먹이를 먹기 위해 애쓰고 있는 너구리 


    '독수리'는 물어뜯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로 마구 물어뜯어도 되는 이것저것을 넣어주는데요! 삼줄을 돌돌 말아 공처럼 만들어 주었더니 신나게 뜯고 또 뜯습니다. 특히나 한쪽 날개를 잃어 날 수 없는 독수리 '광주'는 계류장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며 자연환경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여러 가지 감각을 느끼기도 합니다.

    삼줄을 돌돌 말아 공처럼 만들어 주었더니
    어느새 이렇게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끔 신나게 뜯어놓았네요. 
    산책을 하면서 풀, 나무, 흙 등 여러 자연환경을
    자신의 감각으로 느끼고 있는 독수리의 모습


    이처럼 행동풍부화를 제공하는 것은 머무는 동물의 복지를 충족시키고 성공적인 자연복귀를 위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구조센터에서는 계류 동물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할 수 있는 여러 환경이나 물품을 항상 고민하고 있지만, 아쉽고 부족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계속해서 고민해야겠죠? 여러분도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먹이가 들어있는 굴림 통을 힘차게 굴리는 너구리의 모습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6년 2월 25일 목요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겨울나기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굉장히 뚜렷한 나라입니다. 봄에는 포근하고, 여름에는 덥고, 가을에는 서늘하며, 겨울은 춥습니다. 물론 지구온난화의 영향 등으로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진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각 계절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갈 정도로 각 계절의 특징이 뚜렷하죠. 아마 야생동물도 마찬가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다를 겁니다. 그렇다면,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물들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우선 겨울이 오기 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를 '월동준비' 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겨우내 사용할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해야하고, 동물들에게 해줘야할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것은 역시 '추위' 와 '눈' 이겠지요. 구조센터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바로 추위와 눈입니다. 다친 야생동물의 경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야생동물보다 추위를 버티는 능력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 자칫 치명적인 결과가 생길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해야 합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외부로 노출되는 부분을 깃털 속에 꽁꽁 묻어둔 채 잠을 청하는 황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첫 번째 방법!! 바로 은신처나 바닥재를 제공하는 것 입니다. 사실 은신처나 바닥재는 겨울 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제공해주는 것 입니다. 그러나 특히 겨울에는 조금 더 따뜻할 수 있는 재질로 바꿔주거나 자주 교체를 해주는 등 더 신경을 써야하죠.

    겨울에 머무는 포유류들에게는 낙엽이 굉장히 많이 필요합니다. 계류장 내에 낙엽을 깔아놓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을 줄여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연환경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야생동물에게 익숙하고 안전하니까요.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센터 직원들은 낙엽을 마구 긁어모아옵니다. 잘 보관해두고 겨우내 요긴하게 사용하지요. 낙엽 이외에 두꺼운 담요 등을  추위를 피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겨우내 포유류 계류장의 바닥재로 사용할 낙엽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정도면 충~분히 겨울을 잘 보낼 수 있겠지요?


    또 직접적으로 열을 제공해 추위를 줄여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열등이나 온열기 등을 계류장에 제공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추위를 줄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이야말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열'은 화상을 입을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죠. 계류장 내에 열등을 설치할 때에는 동물의 몸에 직접적으로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놓아줘야하고 특정한 위치에만 제공해 동물이 열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합니다. 너무 더우면 열등이 없는 시원한 곳에 가서 체온을 내리고, 다시 추워지면 스스로 열등 근처로 다가오게끔 말이죠.

    추위에 약한 벌매가 열등 아래에 머물면서 체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열등을 제공해준다면 필히 계류장 내의 온도와 습도를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열등으로 인해 온도가 너무 높아지지는 않았는지, 너무 건조해지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해야하죠. 만약 너무 건조하다싶으면 물이 담긴 접시나 물에 적신 수건 등을 계류장 내에 놓아 조절해줄 수 있습니다.

    온/습도계를 통해 주기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관리해야 합니다.


    추위와 함께 겨울을 무섭게 만드는 것은 역시 '눈' 입니다. 눈이 흩날리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일단 쌓이기 시작하면 이보다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특히 야생동물에게는 눈이 큰 위협이 되기도 하니까요.  자연생태계에서 눈이 내리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맞지만 구조센터에게 눈은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닙니다.


    일단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계류장의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충남센터의 경우 계류장 천장이 그물망으로 되어있는데, 눈이 쌓이면 너무 무거운 나머지 그물이 아래로 축 처저버립니다. 심하면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지요. 그럼 계류장에 머물고 있던 동물이 눈에 깔리거나 그물에 엉키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눈의 양을 확인하고 천장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늦은 밤에도 쉽사리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복히 내려앉은 눈이 지붕위에 쌓이고 쌓여 그 무게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저 눈을 열심히 치워야 합니다. 열심히...


    천장에 눈이 쌓이는 문제 외에도 눈 자체가 계류장 전체를 덮어버리면 그곳에 머무는 동물들이 힘겨울 수 있습니다. 때문에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하지요. 충남센터의 경우 계류장 천장 중 일부는 완전히 덮여있어 눈이나 비가와도 맞지 않고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간이 없다면 몸이 젖어 체온이 떨어질 수 있으니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류장의 일부분에는 눈이 들이치지 않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동물이 눈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도 필요하고요.


    물론 겨울이 구조센터의 동물들을 힘겹게만 만드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눈이 내리면 동물들에게도 특별하고 신선한 자극이 되니까요. 어떤 동물은 눈 위에 신나게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 놀기도하고, 또 어떤 동물은 눈을 먹어보거나 헤집어 놓은 등 기존과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왜 우리 사람도 그렇잖아요. 눈이 오면 괜시레 차가울걸 알면서도 만져보고 싶고, 발자국도 남겨보고 싶고...
    
    너구리가 눈 속에 코를 파묻은 채 냄새를 맡았더니 코 주위에 눈이 묻었네요. 
    야행성인 삵은 보통 낮에는 은신처에 몸을 숨기고, 밤이 되면 나와 활동합니다.
    하지만 눈이 오니 낮에도 나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눈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구조센터에 머무는 동물에게 겨울은 춥고 고달플 것 입니다. 가뜩이나 상처입고 아픈데 추위가 몰아치니 말이죠. 그건 야생에 살아가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이 척박한 환경에 가뜩이나 살아가기 어려운데 몰아치는 추위가 그들을 몰아세울 테니까요. 하지만 그들 역시 꿋꿋하게 이 겨울을 견뎌내고 힘차게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 올 테고, 조금 더 지나면 무더운 여름이오겠죠. 그러면 언제그랬냐는듯 또 다시 겨울을 기다리겠죠? 마치 우리 처럼요.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역시... 눈은 적당히 오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

    

    2016년 2월 24일 수요일

    안락사 선택을 내려야하는 상황,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가?

    모든 생명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번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은 신이 아닌 이상 스스로가 판단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선택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최소한의 후회만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신중에 신중을 가한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구조센터에서 내리는 선택 중 가장 어려운 것을 꼽자면 역시 안락사라고 생각합니다.
     
    안락사는 생존의 가능성이 아주 낮은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 정의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안락사이기도 하지요. 생명을 결정짓는 부분이니만큼 안락사를 찬성하는 이, 반대하는 이,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의 논쟁 역시도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이나 안락사는 많은 이에게 여겨짐에 있어 복잡하고 민감한 부분이기도하죠.

    왼쪽 날개에 큰 상처를 입은 괭이갈매기.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신경손상으로 인해 날개를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어찌해야할까요...


    현재까지는 사람보다는 동물에 한해서만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안락사는 특히나 야생동물에 있어 조금 더 넓은 영역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데요, 생존의 가능성이 아주 낮은 것 외에,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상태는 아니더라도 자연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한 영구적 장애를 갖게 되는 동물 역시 안락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데 안락사를 한다니 너무한 것 아니냐고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구조센터와 같은 기관에서 안락사는 생각보다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안락사가 그들의 생명을 다룸과 동시에 복지역시도 고려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구적 장애를 지녀 자연으로 돌려보내지는 못하지만 무턱대고 안락사를 금지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첫 번째로, 사람이 동물을 보호한다는 것에 따르는 물리적인 한계에 따른 문제가 있습니다.
    머무는 계류장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산이나 바다, 너른 들판을 가져다 넣을 수 없으니까요. 먹고 싶은 각종 먹이와 따사로운 햇빛, 시원한 바람 역시도 야생에서 누릴 수 있는 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들이 자연에서 누리는 수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이죠. 특히나 이런 영구장애를 지닌 동물의 대부분은 머무는 동안 계속해서 치료나 처치 등 사람의 간섭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에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처럼 사방이 벽이나 철망 등으로 둘러싸인 계류장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권리나 복지를 저하시키는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처럼 사방이 벽이나 철망 등으로 둘러싸인 계류장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권리나 복지를 저하시키는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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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안락사하지 않는 동물을 돌봄으로써 발생하는 또 다른 기회의 상실이 있습니다.
    안락사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센터는 수많은 동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모든 계류공간이 포화상태가 되면 정작 피해를 받는 이는 앞으로 구조되어 치료와 재활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야생동물입니다. 공간과 시간, 인력과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동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동물 개별에게 투자되는 부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다른 야생동물의 성공적인 치료와 재활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지요. 그렇기에 안락사의 시행은 조금 더 생존 및 방생에 대한 가능성이 높은 동물을 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혹시 여기서 의문을 가지시지는 않았나요? 공간과 시간,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면 그러한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또 다른 기관이나 개인에게 분양해 돌봄을 받게 해주면 되지 않겠냐는 의문이요.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센터 역시 혹시나 가능하다면 영구장애를 지닌 동물을 보다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동물을 장기간 보호할 수 있는 다른 기관(동물원 등)에 보내서 자연환경 보다는 부족하지만 남은 생을 지낼 수 있게끔 조치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분명한 한계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야생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기관은 이미 동물이 포화상태입니다. 보내려고 해도 보낼 곳이 없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그곳의 환경이나 적극성, 동물에 대한 적절한 사육 방법 등을 지니지 못한 채 공간만 가지고 있는 곳이라면 보낼 수 없습니다. 이는 기관이 아닌 일반인에게 보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일반인은 야생동물에게 필요한 환경을 갖추어줄 여건이 되지 않으며 전문지식 역시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안락사하는 것이 안타까워 아무 곳에, 아무한테나 보내면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는 누가 책임져야할까요? 특히나 개인의 경우 사육하다가 유기하는 문제, 야생동물을 분양받아 악용하는 문제 역시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어차피 안락사할거라면, 장애가 있더라도 자연으로 돌려보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혹여나 장애를 지닌 채로도 자연에 적응해 잘 살아갈 수 있는 일말의 희망도 있을 수 있다고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도 무조건 완벽함 그 자체인 동물만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아니니까요. 날개가 조금 처지더라도, 시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충분한 관찰을 통해 야생적응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돌려보낼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에는 이미 충분한 검사와 관찰을 통해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한 이후입니다. 그런 동물이 무조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너무나 적은 것 역시 사실이니까요.

    결국 안락사 판정이 내려져 고통을 줄이기 위해 호흡마취 과정에 있는 괭이갈매기

     
    구조센터에서의 안락사가 분명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나름의 긍정적 의미도 지니고 있지만, 정작 안락사의 결정을 내리고 시행하는 직원들에게도 가벼운 문제는 아닙니다. 안락사를 고민하는 순간부터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과 불편함이라는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지막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어찌 보면 구조센터에서 내리는 수많은 선택 중 가장 어렵고 가슴 아픈 선택의 순간이죠. 안락사를 진행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한 생명의 촛불을 끌 수 있는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주어저도 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개체의 안락사 판정은 정말로 적절한 결정이었는가? 어쩌면... 안락사는 위태롭고 고단했던 삶을 편안히 마칠 수 있는,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권리이지 않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 정답은 따로 있습니다. 안락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치명적인 사고를 겪은 이 동물들이 생겨나지 않을 공존의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죠.

    어쩌면... 안락사는 위태롭고 고단했던 삶을 편안히 마칠 수 있는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성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김봉균